“오직 하나님밖에 빌 데 없어 우리가 일시에 기도하오니…”
상태바
“오직 하나님밖에 빌 데 없어 우리가 일시에 기도하오니…”
  • 한규무 교수(광주대,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장)
  • 승인 2025.02.05 17: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특별기획 // 한국기독교 140주년, 한국교회가 기억해야 할 역사 속 한 장면
② 1905년 열린 나라를 위한 기도회들

일제 외교권 강탈 시도에 교파 초월해 ‘위국기도회’
“120년 전처럼 나라를 위한 연합 기도가 절실한 때”
혼란한 시국은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다만 오늘의 시대를 120년 전 조선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은 일제에 의해 국권이 침탈되는 급박하고 참담한 상황은 남남갈등으로 점철된 대한민국의 현실과 명백히 구분된다. 본지는 창간 37주년을 맞이한 2025년이 한국기독교선교 140주년이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춰 한국교회가 기억해야 할 역사 속 한 장면을 교회사 교수들의 시선에서 살펴보았다.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한규무 소장은 1905년 교회 안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위국기도회’를 역사적인 한 장면으로 꼽았다. 신문에 기도문을 싣고 함께 모여 기도하는 것으로 조선의 안위를 구했다. 구할 곳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 기도문 속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국기독교선교 140주년을 맞이한 2025년, 한국교회는 역사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지금까지 교회가 빠르게 성장하는 데 주력했다면 이제는 바르게 성숙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나라를 위한 기도 또한 쉴 수 없으니 신앙의 선배들의 기도에서 답을 찾아보자. 시간 순으로 연재하는 역사학자가 꼽은 교회사의 한 장면은 1905년 ‘위국기도회’다. 
 
1900년 연동교회 담임으로 부임한 게일 목사는 교인의 헌금으로 예배당을 증축하고 1905년 11월 헌당했다. 당시 연동교회 교인 수는 600여명이었다. 사진은 1905년 두번째 교회당에 모인 연합제직회 장면. 1905년 7월 연동교회에서는 나라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위국기도문을 배포하고 나라를 위해 기도했다. 사진출처=연동교회

1905년, 나라는 매우 어지러웠다. 일본이 한국을 ‘보호’해준다는 황당한 명분으로 이른바 ‘을사조약(乙巳條約)’을 우리 정부에 강요했기 때문이다. 나라의 주권인 외교권을 강탈하려는 일제의 시도를 놓고 전국이 들끓었다. 이때 우리 기독교 역사에서, 적어도 자료상으로는 최초로 교파를 초월하여 나라를 위한 연합기도회, 이른바 ‘위국기도회(爲國祈禱會)’가 열린다. 

먼저 1905년 7월 서울의 연동장로교회(현 연동교회)에서는 위국기도문(爲國祈禱文) 1만장을 인쇄하여 배포하고 이를 신문(『황성신문』1905년 7월 25일자)에 알리면서 ‘만왕의 왕, 만유의 주’께 한국의 독립을 지켜달라고 매일 오후 3~4시에 합심하여 기도하자며 전국의 기독교인들에게 호소했다. 이들은 예레미야(如利未耶)·이사야(以士喇)·다니엘(但以利)처럼 나라를 위해 기도하자면서 일본의 ‘보호’가 아닌 하나님의 ‘보호’를 간구했다. 

당시 연동장로교회에는 이상재나 이준과 같은 애국지사들이 여럿 다니고 있었다. 이들은 국민교육회(國民敎育會)를 만들어 구국계몽운동을 펼치고 있었기에 풍전등화와 같은 시국을 지켜보고만 있지 못했던 것이다. 비록 ‘교회’ 차원이었으나 나라를 위한 기도문으로서는 최초로 여겨진다.

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을사조약이 체결이 점점 다가오자 이번에는 상동감리교회(현 상동교회)에서 나라를 위한 기도회가 열렸다. 당시 『대한매일신보』 1905년 11월 12일자 보도에 따르면 11월 10일 상동청년회(尙洞靑年會)에서 ‘회원 천여명’이 모여 기도했다고 한다. 상동청년회는 상동감리교회의 청년단체로서 회장이 담임목사 전덕기였으니 이 기도회는 사실상 상동감리교회에서 주관한 것이었으며, 비록 과장이라 하더라도 ‘천여명’이 모였다는 것은 연합기도회였음을 짐작케 한다. 

그럼에도 마침내 11월 17일 치욕적·망국적인 을사조약이 맺어졌다. 그런데도 연합기도회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이번에는 장로교·감리교·침례교 교인들이 함께 공동기도문을 만들어 신문(『대한매일신보』 1905년 11월 19일자)에 싣고 “유일무이하시고 전지전능하신 조물주 여호와”께 매일 오후 2시와 4시 나라를 위해 기도하자며 호소했다. 이같은 교파 연합 나라를 위한 기도문은 유례를 찾기 힘든 것이었다. 먼저 기도 취지문을 살펴보자.

지금 우리 대한이 고난 중에 있는 형편은 우리 동포가 다 아는 바이어니와 예수를 믿는 형제자매 중에도 혹은 자기가 잘못하여 이 지경에 이른 줄은 깨닫지 못하고 다른 사람만 원망하니 이는 덜 생각함이오 혹은 말하기를 우리의 신령한 나라가 하늘에 있은즉 육신의 나라는 별로 상관없다 하니 이도 덜 생각함이오 혹은 말하기를 이런 고난을 당하여 어찌 가만히 앉아 있으리오 하고 혈기를 참지 못하여 급히 나아가자 하니 이도 덜 생각함인즉 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치 못한 것이라. 그런즉 이 고난에 든 허물이 어디에 있다 하리오. 다른 데 있지 않고 다 하나님을 믿고 구하지 아니하는 데 있나니 대처 우리나라 사람이 사악한 신과 우상[邪神偶像]을 숭배하고 악독한 일만 행하며 하나님의 주신 바 기름진 땅과 광산과 일용만물을 감사한 마음으로 밧아 적당히 쓰지 아니한 까닭인즉 주를 믿는 우리는 구약 때에 선지자 예레미야[耶利未亞]와 이사야[以賽亞]와 다니엘[但以理]의 기도로 이스라엘[以色列]과 유태국이 구원 얻은 것같이 구원 얻기를 기도합시다. 기도시간은 매일 오후 2시와 4시[申時]오. 
1905년 일제가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려는 을사조약 체결을 시도할 때 성도들은 나라를 위한 기도회를 먼저 열었다. 사진은 당시 신문에 게재된 ‘위국기도문’ 

이 기도문을 누가 작성했는지는 알지 못하나, “다른 사람만 원망”하는 것도, “육신의 나라는 별로 상관없다”하는 것도, “혈기를 참지 못하여 급이 나아가자”하는 것도 모두 그릇된 것이라고 책망하며 여기서도 예레미야·이사야·다니엘의 예를 들며 나라를 위해 매일 기도할 것을 요청했다. 이어 기도문을 살펴보자.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이시여. 우리 한국이 죄악으로 침륜(沈淪: 물에 빠짐)에 드렀으매 오직 하나님밖에 빌 데 없어 우리가 일시에 기도하오니 한국을 불쌍히 여기사 예레미야와 이사야와 다니엘의 자기 나라를 위하여 간구함을 들으심같이 한국을 구원하사 전국 인민으로 자기 죄를 회개하고 다 천국 백성이 되어 나라가 하나님의 영원한 보호를 받아 지구상에 독립국이 확실케 하여 주심을 예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정작 일제에 대한 비난은 찾아볼 수 없고 회개와 기도만을 강조하는 다소 막연한 내용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교파를 초월하여 많은 교인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규무 교수
(광주대,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장)

정교의 『대한계년사(大韓季年史)』에 따르면, 전덕기 등 상동청년회 회원들은 을사조약이 맺어진 이후에도 매일 상동감리교회에 ‘수천인’이 모여 하나님께 나라를 위한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그때로부터 120년이 지나 두번째 을사년을 맞은 2025년 지금, 나라가 몹시 어지럽다. 현 시국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다를 수 있지만, 나라를 위한 기도가 절실한 때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과연 그때처럼 교파를 초월해 나라를 위한 연합기도회가 열리거나 공동기도문이 나올 수 있을까. 그때처럼 우리가 하나 되어 기도드릴 수 있는 공통분모는 과연 무엇일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