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한국교회를 이끌어간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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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한국교회를 이끌어간 교회
  • 김태현 기자
  • 승인 2025.02.05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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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 유산을 찾아서 (28) // '최초’ 의미 가득한 정동제일교회(상)

우리는 최초라는 말에 설렌다. 1등이란 말과 동의어쯤으로 여기기 때문이리라. 교회에도 첫 번째는 존재한다. 그중 가장 많은 ‘최초’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교회가 있으니 바로 ‘정동제일교회’다.

정동제일교회는 선교사 건립 교회의 시초, 첫 세례식, 최초의 성찬식, 가장 빠른 파이프 오르간 도입 등 기록을 가지고 있다.

먼저 정동제일교회는 1885년 10월 11일을 창립일로 기념하고 있다. 이날은 아펜젤러 선교사의 사택에서 이 땅 최초의 성찬식이 거행됐던 날이다. 아펜젤러와 언더우드의 집례하에 진행된 성찬식에서 조선인 성도들은 성찬과 함께 자신의 신앙을 간증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며 교회로서의 첫발을 뗐다.

교회가 시작됐지만, 아펜젤러 선교사 사택, 배재학당 등을 옮겨 다니며 예배를 드렸다. 1887년에는 한옥을 ‘벧엘예배당’이라 부르며 사용했다. 이후 1895년 정초식을 거행한 후 1897년 12월 26일 최초의 서양식 예배당을 건설하며 지금까지 정동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건물은 현재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는 19세기 교회 건물이다.

교회 음악에 있어서도 정동제일교회는 최초라는 타이틀과 함께 발전을 선도했다. 1918년 벧엘예배당에 파이프오르간을 설치함으로써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오르간을 도입한 교회가 됐다. 당시 아시아에 3대밖에 없었던 파이프오르간이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오르간은 6.25 전쟁 당시 폭격으로 인해 소실되었다.

또한 1929년에 들어서는 정식으로 네 개 파트를 갖춘 성가대가 조직되어 1931년 국내 최초로 성탄절 칸타타 무대를 열기도 했다. 성가대는 <바위고개>를 작곡한 김인식이나 남자들에게 친숙한 군가 <진짜 사나이>의 작곡자 이흥렬 등 음악가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자가 정동제일교회에서 탄생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아펜젤러가 비극적인 사고로 순직한 후 교회 제2대 목사로 부임했던 탁사(濁斯) 최병헌은 1901년 ‘신학월보’에서 『죄도리』라는 신학 논문을 발표하며 한국인 신학자의 시작으로 인정받았다.

이외에도 최초의 서양식 결혼식과 근대 연극공연, 근대식 토론회 등이 교회에서 진행되는 일도 있었으며 처음으로 여름성경학교를 개최한 곳도 정동제일교회다.

다양한 최초 기록을 쓴 정동제일교회는 대한민국의 근대사와 초기 교회사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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