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면 강산이 달라진다. 100년이면 그야말로 천지개벽이다. 기술의 발전과 인식의 변화, 문화의 확장은 정치·경제 전반은 물론 우리의 일상까지도 뒤바꿔놨다. 교회와 선교도 예외는 아니다. 약 2천년 전 로마가 닦아놓은 길을 따라 전해졌던 복음은 마차와 범선, 기차와 비행기에 몸을 싣더니 이제는 전 세계에 연결된 인터넷망을 타고 단 몇초만에 전달된다.
달라진 세상에서 교회의 모습과 복음을 전하는 방법이 2천년 전과 같을 수는 없다. 국제 로잔운동은 오는 9월 한국에서 열리는 제4차 로잔대회를 앞두고 오늘날 세계 기독교의 현실과 그에 맞는 선교 전략을 고민한 ‘대위임령 현황 보고서(The State of the Great Commission Report)’를 발표했다. 전 세계 최고의 선교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 작성한 보고서는 10가지 질문을 통해 교회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그에 맞춘 대안을 제시한다. 본지는 이번 호부터 10회에 걸쳐 로잔운동이 고민한 10가지 질문의 포장을 풀어 소개한다. <편집자 주>
누가 알았을까. 주일 예배 시간에 서로를 화면으로 마주하게 될 줄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가차 없이 잘라버린 관계의 끈은 온라인에서 랜선을 타고 다시 이어졌다. 세미나와 회의처럼 얼굴을 맞대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대부분의 일들이 온라인으로 대체됐고 시기상조라 여겼던 재택근무가 현실이 됐다. 고작해야 정보를 검색하고 메시지를 주고받고 게임을 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겼던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은 이제 대체할 수 없는 ‘일상’이 됐다. 이제는 이렇게 선언해도 무리가 없으리라. 우리는 지금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다.
제3차 로잔대회가 케이프타운에서 열렸던 2010년으로부터 14년의 시간이 흘렀다. 로잔의 역사 50년에 빗대자면 햇수로는 긴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만 변화의 폭으로 보자면 얘기가 다르다. 어쩌면 1차 로잔대회가 열렸던 1974년부터 케이프타운대회가 열린 2010년까지 일어난 기술의 혁신보다, 2010년부터 2024년 사이 벌어진 변화가 더 극적이라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다. 이제는 ‘디지털 시대의 삶이란 무엇인지’(What is a Digital Life?) 논하지 않고서는 선교의 이정표를 세울 수 없게 됐다.
수단을 넘어 일상이 된 인터넷
해외여행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더라도 당신은 이미 글로벌 시대의 인류다. 유튜브나 구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이용하고 있다면 말이다. 전 세계적으로 약 60%의 지역은 인터넷을 통해 연결돼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북미의 경우 인구 대비 인터넷 사용자의 비율이 약 90%에 육박한다. 유럽과 라틴아메리카는 그보다 조금 낮은 80% 수준으로 파악된다.
인터넷 사용 인구가 늘면서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정보의 양도 급격히 증가했다. 2020년에 약 60제타바이트(ZB) 누적됐던 접근 가능한 데이터 양은 2025년엔 160~180제타바이트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사물 인터넷, 원격 작업, 홈 엔터테인먼트, 모바일 커뮤니케이션 등의 기술이 활발해질수록 데이터 양은 계속해서 급격하게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소셜 미디어는 현대인이 다른 이들과 소통하고 스스로를 나타내기 위해 가장 보편적으로 이용하는 플랫폼이 됐다. 2023년 기준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연령대의 대부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48억명의 인구가 소셜 미디어를 이용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사람들은 하루 평균 2시간 20분 가량을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 머물며 디지털 이웃들과 일상을 나눈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소셜 미디어는 페이스북과 유튜브가 단연 압도적인 가운데 왓츠앱과 인스타그램, 위챗, 틱톡이 그 뒤를 이었다.
디지털 시대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로 ‘탈중앙화’도 있다. 이른바 웹 1.0 시대에는 사용자들이 인터넷으로 일방적인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에 그쳤다면 웹 2.0 시대에는 중앙에서 제공하는 서버 안에서 사용자들이 콘텐츠를 만들고 소통하기 시작했다. 다가온 웹 3.0 시대에서는 데이터와 콘텐츠, 플랫폼과 서버의 운영, 그리고 의사결정에 대한 권리까지 사용자들에게로 넘어온다. 중앙 서버를 필요로 하지 않고 사용자들끼리의 연결로 데이터를 관리하는 블록체인 기술은 웹 3.0 시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탈중앙화 플랫폼이다.
디지털 커뮤니티에서 발견하는 가능성
‘사회적 거리두기’도 인간과 인간 본연의 거리를 벌리지는 못했다. 대면으로 만나지 못하게 된 사람들은 온라인을 통해 더 밀접하게 연결됐다. 코로나 팬데믹은 이전까지는 디지털 커뮤니티에 무관심했거나 필요로 하지 않았던 사람도 디지털 세계로 끌어들였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출석하는 교회 유튜브 채널에 ‘구독’을 누르게 됐다면? 소그룹 단체 채팅방에 참여하거나 ‘밴드’에 가입하게 됐다면? 당신이 바로 디지털 커뮤니티의 활성화를 증명하는 산 증인이다.
다만, 과거 상상하던 모습과는 달리 디지털 커뮤니티가 자유롭고 이상적인 소통의 장을 연 것은 아니다. 소셜 미디어에서 제시하는 알고리즘은 사용자를 관심이 있고 지지할 수 있는 분야에만 더욱 천착하도록 이끌었다. 아무리 스크롤을 내려도 기껏해야 대여섯 카테고리의 영상만이 반복되는 우리의 유튜브 메인 화면이 그 예시다. 비슷한 콘텐츠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사람들은 자신이 동의하는 주장에만 관심이 쏠리는 이른바 ‘확증편향’에 빠질 위험이 높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커뮤니티는 향후 최소 수십년 동안은 인간의 소통이 이뤄질 가장 중요한 플랫폼일 것으로 예측된다. 교회의 고민은 이런 디지털 커뮤니티를 어떻게 복음 전파와 대위임령 성취에 활용할 수 있느냐다. 성경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디지털 미디어를 더 윤리적이고 포용적인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것도 크리스천의 과제 중 하나다.
로잔운동은 교회가 2050년까지 꾸준히 사역자들을 디지털 커뮤니티 전문가로 육성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는 단순히 디지털 미디어를 다루는 기술뿐 아니라 디지털 커뮤니티에서 사람들과 교류하는 에티켓, 트렌드를 따라갈 수 있는 언어를 습득하는 것도 포함한다.
디지털 커뮤니티의 발달이 선교를 가로막는 큰 장벽 중 하나였던 지리적 제한을 뛰어넘게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디지털 커뮤니티가 ‘히키코모리’와 같은 사회적 고립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결국 크리스천의 사명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물리적 커뮤니티와 디지털 커뮤니티 모두에서 하나님 형상을 닮아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는 일일 것이다.
소수가 아닌 모두의 선교를, 웹 3.0
대위임령의 성취는 어떤 한 사람의 힘만으로 이뤄질 수 없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처음부터 일부 몇 사람이 아닌 모든 제자들에게 이 명령을 하달하셨다. 웹 3.0에 이르러서야 인터넷에서 구현된 ‘탈중앙화’라는 속성을 선교는 처음부터 지니고 있었다는 얘기다.
웹 3.0에서 달라진 인터넷 환경은 사용자들이 자신의 데이터를 소유하고 제어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이는 자연히 더 쉽게 디지털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끈다. 단순히 중앙서버가 제공하는 플랫폼 안에서 콘텐츠를 작성하는 것이 한계였던 웹 2.0에서 더 다채로운 방법으로 콘텐츠를 게시하고 배포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 이뤄졌던 혁신이 그랬듯 웹 3.0과 탈중앙화도 일장일단을 가지고 있다. 자기결정권과 프라이버시 확보, 개인의 자유와 주도권 보장이라는 면에서 탈중앙화가 강점을 가지고 있다면, 반대로 의사 결정의 명확성과 효율성에 관해선 중앙집중화에 비해 취약한 것이 사실이다.
어찌 됐건 탈중앙화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면 이에 맞춘 선교 전략을 모색하는 일이 필요하다. 로잔운동은 탈중앙화를 대표하는 산물인 암호화폐를 선교 사역에 활용해볼 것을 조심스레 제안한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한 암호화폐를 이용한다면 수수료의 문제와 보안, 자금 조달의 다양화와 효율성, 투명성에서 강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경 번역에 있어서도 웹 3.0의 강점을 활용할 여지가 많다. 숙련된 번역가와 편집자, 신학자, 교정자로 구성된 팀도 성경을 새로운 언어로 번역하는 일에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족히 소요된다. 하지만 웹 3.0을 통해 전 세계 크리스천들이 번역 작업에 힘을 보태고 여기에 AI 기술까지 더해진다면 성경 번역 작업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질 수 있다.
증강현실 게임을 다음세대 선교와 제자훈련에 활용한 사례도 있다. 게임을 통한 선교와 훈련은 지리적, 시간적 한계를 뛰어넘는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경험을 다음세대들에게 제공한다. 특히 종교적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전할 수 없는 지역에서 더 유용한 수단으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