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면 강산이 달라진다. 100년이면 그야말로 천지개벽이다. 기술의 발전과 인식의 변화, 문화의 확장은 정치·경제 전반은 물론 우리의 일상까지도 뒤바꿔놨다. 교회와 선교도 예외는 아니다. 약 2천년 전 로마가 닦아놓은 길을 따라 전해졌던 복음은 마차와 범선, 기차와 비행기에 몸을 싣더니 이제는 전 세계에 연결된 인터넷망을 타고 단 몇초만에 전달된다.
달라진 세상에서 교회의 모습과 복음을 전하는 방법이 2천년 전과 같을 수는 없다. 국제 로잔운동은 오는 9월 한국에서 열리는 제4차 로잔대회를 앞두고 오늘날 세계 기독교의 현실과 그에 맞는 선교 전략을 고민한 ‘대위임령 현황 보고서(The State of the Great Commission Report)’를 발표했다. 전 세계 최고의 선교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 작성한 보고서는 10가지 질문을 통해 교회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그에 맞춘 대안을 제시한다. 본지는 이번 호부터 10회에 걸쳐 로잔운동이 고민한 10가지 질문의 포장을 풀어 소개한다. <편집자 주>

“낯빛이 좋지 않아 보이시네요.” 거리를 걷다 보면 간혹 기계적인 말투와 표정 없는 얼굴로 말을 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표정을 찡그리며 귀찮다는 듯 발걸음을 재촉한다. 혹시나 관심을 보이는 이들에게 제사가 필요하다는 둥, 굿을 해야 한다는 둥 온갖 이유를 들먹이며 돈을 뜯어 내보려는 심산임을 알기 때문일 테다.
그런데 똑같은 이야기를 진료실에서 의사에게 듣는다면 어떨까. 이야기를 듣자마자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하고 손에 땀이 맺힌다. 그러고는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이유와 해결 방법을 보채듯 물을 것이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문장임에도 말하는 사람이 누군지에 따라 반응이 이렇게나 다르다.
복음은 좋은 소식이다. 이는 이견의 여지가 없는 분명한 진리다. 그러나 누가 그 소식을 전하느냐에 따라 복음의 가치도 평가절하당할 수 있다. 입만 떼면 돈 얘기만 늘어놓고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위법행위도 서슴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예수를 믿으라고 한들 설득력이 있을 리 없다. 거리의 무표정한 행인과 가운을 갖춰 입은 의사, 과연 우리는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성경책을 허리춤에 낀 목사님의 말이라면 공손하게 귀담아듣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그러나 이제 교회의 신뢰도는 바닥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기독교와 목사는 ‘개독교’와 ‘먹사’라는 멸칭으로 조롱당한다. 이런 시대에 사람들은 무엇을 신뢰하고 어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까. 로잔은 ‘신뢰의 기반은 무엇인가’(What is the Foundation of Trust?)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불신’이라는 바이러스
불행하게도 서로를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됐다. 무서운 속도로 번진 코로나19 바이러스처럼 불신의 바이러스 또한 전 세계로 퍼졌다. 2022년 세계 가치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을 신뢰할 수 있다’는 응답이 60%를 넘는 국가는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다. 특히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가치관이 맞지 않는 사람들을 보는 감정은 불신을 넘어 증오에 가깝다.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복음을 전하는 난이도 역시 높아졌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서로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누구를 신뢰할까. 안타깝게도 그 대상이 하나님은 아니다. 개인주의가 팽배해진 오늘날 현대인이 가장 신뢰를 보내는 곳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다.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처참한 수준이고 NGO 등 국제기관과 기업은 그나마 나은 편에 속한다.
종교의 자리는 과학이 대신하고 있다. 만약 종교인과 과학자와 동일한 진술을 하더라도 대부분은 과학자의 말을 더 귀담아 듣는다. 심지어 글로벌 노스(Global North)로 불리는 서구 사회에서는 종교 기관이 가장 신뢰도가 낮은 기관 중 하나일 정도다.
자라나는 다음세대의 관점은 어떨까. 세계경제포럼이 전 세계 18세에서 35세 연령대의 24,766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한 결과 가장 신뢰를 받고 있는 기관은 ‘학교’였다. 의외로 2위는 ‘고용주’가 차지했고 ‘국제기관’이 그 뒤를 이었다. ‘종교기관’은 ‘법원’, ‘경찰’, ‘군대’, ‘미디어’의 뒤를 이은 8위에 그쳤다. ‘종교기관’보다 신뢰를 받고 있지 못한 기관은 ‘은행’과 ‘정부’, ‘대기업’밖에 없었다.
종교기관의 영향력 하락은 기독교 지도자들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는 문제다. 로잔운동이 2022년 1,500명의 세계 기독교 지도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글로벌 리더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부분 지역에서 문화에 대한 교회의 영향력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답했다.

‘절대적 진리’가 흔들린다
‘신뢰’와 ‘선교’라는 주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주제를 꼽는다면 단연 ‘객관적인 진리의 실종’이라 하겠다. 성경은 객관적이며 결코 변하지 않는 진실이 있다고 단언한다.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의 존재와 인간의 죄성,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셨다는 복음의 진리가 그것이다.
하지만 ‘상대주의’로 명명된 현대 철학의 흐름은 오랜 기간 자리를 공고히 지켜온 ‘객관적 진실’의 아성에 의구심을 던진다. 현대에 이르러 진실이란 ‘모두가 동의하는 객관적 진실’이 아니라 ‘내가 동의하는 나의 진실’에 가깝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 2016년 옥스퍼드 사전은 올해의 단어로 ‘탈진실’(post-truth)을 선정했다. 객관적 사실을 말하는 것보다 개인적 신념에 호소하는 것이 여론 형성에 더 효과적이라는 의미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견해를 뒷받침하는 정보만 찾는 것을 의미하는 ‘확증편향’은 ‘진실의 주관성’에 가속도를 더한다. 만약 신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의 확증편향이 심화 되면 복음이 마음의 빗장을 열고 들어가기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종교성이 높다고 평가되고 실제로도 종교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아프리카 사회에서조차 젊은 세대들은 종교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추세다. 라고스, 케이프타운, 나이로비 등 아프리카의 주요 도시에서 무신론 공동체가 형성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와 국가 사회가 강하게 연결된 중국 역시 과학과 종교의 갈등이 첨예하다.
그런가 하면 힌두교 국가인 인도의 경우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시고 복음 외에 진리가 없다고 하는 기독교의 배타성을 곱게 보지 않는다. 인도와 유사한 다신교 사회인 몇몇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믿는 객관적 진실, 즉 복음이라는 절대적 진리는 ‘신뢰’라는 저울에서 상대주의, 개인주의, 확증편향, 종교를 배격하는 과학, 종교 다원주의의 도전을 받고 있다. 로잔은 객관성과 합리성을 담보하는 동시에 진리를 추구하겠다는 의지가 꺾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신뢰를 형성하는 미디어
미디어의 존재는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신뢰 형성에 영향을 끼친다. 미디어, 특히 전통 미디어 그 자체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하고 있다고는 하나 미디어에서 반복적으로 우리의 머릿속에 주입하는 내용들은 원치 않아도 뇌리에 각인된다. 특히 유튜브의 괄목할 성장은 놀라울 정도다.
때문에 로잔은 그리스도인들이 일정 수준의 미디어 비평 능력을 갖추기를 조언한다. 미디어를 선교에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미디어의 메시지를 분별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 선구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아가서는 복음의 진리를 뉴미디어라는 플랫폼에 맞춰 적절하게 녹여낼 수 있는 크리스천 미디어 전문가가 준비돼야 한다.
요즘은 ‘미디어 민주화’ 시대라 불린다. 이전에는 몇몇 전통 매체가 발언권을 독점했다면 이제는 누구나 미디어가 되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KBS, MBC, SBS 등 공중파 방송에서 뉴스를 봤지만 이제는 유튜브에서 정보를 구하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교회와 성도들에게도 기회가 열렸다. 우리는 이제 미디어 공간에서 자유롭게 ‘신뢰할 수 있는 진리’에 대해 말할 수 있다. 특히 중동과 북아프리카 등 자유로운 선교가 제한된 국가에서 미디어는 주효한 선교 수단이 되고 있다. 핵심은 많아지다 못해 넘쳐흐르는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압도당하지 않고 방향을 잃지 않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