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다 포탄 맞은 것처럼 얼룩덜룩 검게 그을려
백석총회 임원회, 피해 교회 3곳 방문 위로 격려
잿더미 전소 피해 처참, 복구 위한 움직임 활발
어느덧 4월에 들어섰지만, 역대 최악의 산불을 의식한 탓인지 문경새재를 넘어가면서부터 소나무 가득한 산이 불안하게 느껴진다. 서울에서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까지 향하는 길, 언제 화마가 덮쳤냐는 듯 하늘은 맑고 화창하다.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다가 낙동JC에서 당진영덕고속도로로 갈아탄 후 조금 더 달려가자 이내 의성군 표지판이 나타난다. 최초의 발화지점이다.
지난 21일 경북 의성군 과산리의 한 야산에서 성묘객의 실수로 일어난 산불의 후폭풍은 엄청났다. 시속 8km 엄청난 강풍을 타고 동해안으로 향하면서 안동, 영양, 영덕 일대는 쑥대밭이 됐다. 3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지역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생계마저 막막한 상황이다. 상당수 교회도 예배당과 사택이 불에 타는 피해를 입었다. 지난 28일 주불이 모두 진화되면서 평온을 되찾은 듯 보였지만 얼룩덜룩 산불의 흔적은 마음을 아프게 했다. 마치 포탄이 떨어진 듯 군데군데 남은 산불 자국이 언제쯤이면 메워질 수 있을까. 탄내가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마을 마을을 지날 때마다 불에 탄 집들은 계속해서 나타났다. 강풍에 불붙은 소나무 가지가 날아다녔다는 증언이 무슨 말인지 알 듯했다. 첫 목적지 영덕으로 들어갈수록 산 넘어 산까지 타버린 처참한 풍경이 이어진다.
지난 1일 이규환 총회장과 김동기 부총회장 등 예장 백석총회 임원회는 산불 피해를 입은 교단 소속 교회 세 곳을 직접 방문해 목회자들을 위로했다. 본지는 이번 일정에 동행하며 우리가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할지 생각해봤다.

비 오듯 쏟아진 불길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석동 1길 10-6, 석동교회(담임:박경원 목사)는 지난 25일 오후 6시경 들이닥친 화마로 예배당과 사택을 모두 잃었다. 교회 바로 아래 마을의 집들도 전소돼 처참한 모습이었다. 뼈대만 남은 주택 사이로 등을 검게 그을린 고양이가 겁먹은 표정으로 기자를 쳐다본다. 떠나버린 집주인을 찾아 돌아온 것일까.
화재 현장에는 경북노회 노회원 20여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총회 임원회와 함께 박경원 목사를 위로하고 함께 기도를 심겠다는 마음이 이곳으로 이끌었다고 했다. 예배 터전을 잃어버린 박경원 목사는 의외로 덤덤했다. 산불 당시 상황이 얼마나 긴박했는지 설명하면서도 낙심하는 모습은 전혀 볼 수 없었다.
“교회 차로 고령의 어른들을 모시기 위해 다시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걷잡을 수 없는 불이 마을에 들이치고 차 옆까지 불길이 쏟아지는 게 거울로 보였습니다. 이번에 뚫고 못 나가면 죽겠구나, 불길 사이로 2Km를 달렸어요. 해경들이 도저히 육로로 안 되겠다 해서 경비정을 타고 겨우 탈출했습니다.”
석동교회가 위치한 마을은 지난해 ‘바닷가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될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하지만 비 오듯 쏟아지는 불붙은 나뭇가지에 마을은 폐허가 됐다.

박경원 목사는 30년째 이곳에서 목회하면서 4번이나 산불을 경험했다. 사모에게 불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을 정도로 산불은 모든 것을 힘들게 만들곤 했다. 이번 산불에 예배당 천장이 주저앉고 외벽과 철문이 녹아내려 예배당으로 들어설 수조차 없게 됐다. 교회 입구에 까맣게 타버린 옥수수 뭉치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기도를 심을 수밖에 없는 가슴 아픈 현장, 이규환 총회장은 소리 내어 기도하며 울먹였다. 모두가 떠나갈 때 묵묵히 교회를 지켜온 목회자의 심정이 전해지는 듯….
“석동교회 성도들을 위로해주시고 교회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하나님께서 힘과 동력을 주셔서 재창조 기적의 역사를 이루어 주시옵소서.” 목회자들은 힘있게 “아멘”으로 반응했다.
이규환 총회장은 박경원 목사에게 긴급구호기금을 전달하며 다시 일어서자고 응원했다. 경북노회 강홍대 노회장도 복구를 위해 사용하도록 후원금을 함께 전달했다.
박경원 목사는 옷가지 하나 가져나오지 못할 정도로 급박했지만, 교회가 다시 세워지려면 필요하다는 생각에 교적부와 세례명부만 챙겨 나왔다고 했다. 70대 목회자, 그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다시 세워 후임자에게 잘 넘겨주겠다고 고백했다.
박 목사 부부는 거동이 불편해 화마에 휩쓸릴 뻔했던 어르신들을 여럿 피신시켰다. 목사님 덕에 목숨을 건졌다는 마을 어르신들이 석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으면 하는 기도를 심는다.

전쟁처럼 필사의 탈출
총회와 경북노회 일행은 약 50여분을 차로 달려 청송군으로 향했다. 주왕산국립공원이 자리해 깨끗한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땅, ‘산소카페’라고까지 불리는 청송군도 이번 산불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이상춘 목사가 시무하는 목계교회는 2차선 도로와 인접해 있다. 10분 거리에 청송교도소도 있어서 하루 1만 대 이상의 차량이 교회 앞으로 지나고 있다.
조립식 판넬로 지어진 목계교회는 말 그대로 폭싹 주저앉았다. 1층 예배당과 2층 목양실을 잇는 철제 계단만 어색하게 남아 있다. 교회 앞마당 카니발 차량과 창고로 쓰던 컨테이너도 뼈대만 남았다. 산불이 교회를 덮칠 때 이상춘 목사는 불과 100m 떨어진 마을에 있었지만, 차량조차 이동하지 못할 정도로 긴박했다. 강풍은 순식간에 불길을 몰아붙였다. 연기로 앞을 가늠할 수 없고 불붙은 가지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전쟁처럼 필사의 탈출을 감행해야 했다. 그날 화재로 인근 주민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엄청난 재난 앞에서 이상춘 목사 역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고백했다.
“갑작스럽게 교회가 불에 타 넘어져 하나님께 너무 죄송했습니다. 그날 밤 11시에 마당에서 무릎 꿇고 혼자 기도했어요. 마지막으로 십자가가 쓰러지던 새벽에 그걸 붙들고 더욱 주님만 의지하면서 살겠다고 기도했어요. 다시 한번 교회를 새롭게 일으켜서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목계교회는 다행히 교회 바로 옆 땅을 마련해두고 있었다. 앞으로 교회를 재건하면서 더 견고하게 기반을 조성할 수 있겠다는 목회자들의 조언과 응원이 이어졌다. 이규환 총회장은 총회가 적극 관심을 갖고 교회가 다시 세워질 수 있도록 돕겠다고 약속했다. 화마가 할퀴고 간 절망의 현장에서 목회자들은 저마다 주님과 함께하는 소망을 쏟아내며 이상춘 목사의 손을 잡아주었다. 어떤 목회자는 소정의 금일봉을 준비했는지 조심히 주머니에 넣어주기도 했다. 이곳에서도 목회자들은 함께 기도를 심었고, 이 고난과 위기를 함께 이겨낼 것을 다짐했다.
김동기 부총회장은 “현장에 와서 보니까 목에 메이고 마음이 아파 견딜 수 없는 심정이다. 목계교회가 우리 삶의 현장이고 목회의 현장이라고 생각한다. 우는 자와 함께 울라는 말씀처럼 총회 모든 가족이 산불로 피해 입은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훈훈한 사랑을 전해주도록 하자”고 도전했다.

“낙심 말고 다시 일어서자”
청송군 어천교회(담임:한영식 목사)는 다행히 전소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립식 판넬로 된 한쪽 외벽이 녹아내려 버렸다. 바깥 철제는 사라지고 내부 단열재가 맨살을 드러낸 모습이었다. 외견상 예배당은 멀쩡해 보이는 듯했지만, 외벽이 녹아내려 언제든 건물 균형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어 보였다. 경험이 많은 목회자들은 서둘러 보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영식 목사는 지난 주일예배를 위해 휘어진 철제 틀을 겨우 안쪽으로 밀어 세웠다. 한 목사는 “산에서 날아온 불똥이 교회 지붕에 붙었다가 소실됐다. 예배당이 전소되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하지만 당장 복구까지는 막막한 현실”이라고 이야기했다. 이규환 총회장은 25년 전 시무 교회가 화재를 입어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다시 하나님께서 일으켜 세우셨다면서 “낙심하지 말고 더욱 소망을 향해 나가자. 총회 가족들의 관심과 헌신이 모이면서 어느새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하며 이곳에서도 기도했다.

산불 현장을 돌아보는 내내 민방위복을 입은 공무원들이 곳곳에서 피해 실사를 진행 중이었다. 어천교회 바로 옆 과수원도 화마를 피해 갈 수 없었는지 공무원들이 둘러보고 있었다. 과수나무는 멀쩡한 것처럼 보였지만, 사과꽃이 모두 불에 그을려 버려 열매를 기대할 수 없다고 했다.
돌아오는 길, 전신주를 정비하는 전기공사 차량들이 많이 보였다. 공무수행 트럭들도 복구를 위해 활발하게 움직이는 듯했다.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처럼 산불이 휩쓸고 간 그곳, 교회에 희망이 솟구칠 수 있길 소망한다. 멀리 보이는 산야는 검게 그을려 있었지만, 노란 개나리꽃이 언제나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다시 산야가 푸르게 푸르게 회복될 것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