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15:14)
어떤 사람이 추운 겨울밤 고슴도치 떼를 우리에 넣었습니다. 영하 20도의 혹한에 찬 바람이 불어오자 부들부들 떨던 고슴도치들이 한 마리 두 마리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따뜻해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모여든 고슴도치들이 자기 자리를 더 많이 차지하려고 저마다 가시를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세워진 가시는 상대방을 찌르고 피를 흘리게 했습니다. 모여든 고슴도치들은 아파서 흩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흩어지면 다시 춥습니다. 추워서 부들부들 떨다가 견딜 수 없어 다시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모였다 흩어지고 흩어졌다 모이고... 날이 밝아왔습니다. 아침에 나가 보았더니 모두 죽어있었습니다. 절반은 얼어서 죽었고 절반은 피를 흘리고 죽었습니다.
너무 가까우면 상처를 받고 너무 떨어지면 추위를 타는 고슴도치의 딜레마는 독일의 철학자 아더 쇼펜하우어가 쓴 우화에 등장합니다. 고슴도치는 떼로 다니는 법이 없는 외로운 동물입니다. 늑대와 양, 코끼리, 까마귀마저 떼로 다니지만 고슴도치는 무리를 짓는 일에 익숙하지않습니다. 그래서 고슴도치는 늘 홀로 다닙니다.
그러나 고슴도치가 언제나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외로움을 타는 계절이면 고슴도치도 서로를 찾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서로 만나면 서로가 상처를 입는다는 것입니다. 외로움에 몸부림치다 다가가지만 서로 상처를 입히고 다시 멀어질 수밖에 없는 이러한 모습은 고슴도치의 딜레마이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가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많은 가시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거절, 비난, 무시, 분노, 오만, 이기심, 시기, 경멸, 질투의 가시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자신의 가시를 잘 숨기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조금만 다가가면 그 가시가 여지없이 드러나 보입니다. 돌아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주변에는 가시투성이 고슴도치들이 우글거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사람들만 고슴도치가 아니라,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고슴도치라는 사실입니다. 외로움으로 인한 절망감과 가시로 인한 상처 사이에 낀 고슴도치 딜레마는 우리의 딜레마인 것입니다. 딜레마라는 말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선택의 어려움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길은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고슴도치들은 바늘이 없는 머리를 맞대어 겨울에 체온을 유지하거나 잠을 자는 선택을 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찾은 최선의 방법일 것입니다. 사람들도 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서로가 상처받지 않으면서도 온기를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거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상처받는 것도 남이 상처받는 것도 원치 않는 방법으로 ‘예의’라는 옷을 입었습니다. 서로 간에 예의를 차림으로 가시에 찔릴 일을 줄이고 서로의 온기는 적당히 만족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의를 차리면 차릴수록 질서는 있는 데 긍휼은 없어지고 상처는 덜 받게 되었는데 공감하기는 어려워졌습니다.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행복을 위해서는 불행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고 승리를 위해서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살기 위해서는 위험을 기꺼이 감당하겠다는 용기를 가지듯 사람으로부터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신에 받은 상처를 내면화하지 말고 서로에게 가시가 있음을 인정하고 찔린 상처를 드러냄으로 서로를 알아가야 합니다. 가시가 두려워서 사귀기를 머뭇대는 사람은 진정한 친구를 얻을 수 없습니다. 친구란 서로의 상처 난 가슴을 끌어안고 어루만지며 사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사랑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를 향하여 친구라고 말씀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