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잘한다는 칭찬이 싫어요.”
최근 KBS 2TV에서 방영된 ‘오케이? 오케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한 다문화가정 어린이의 고백이다. 그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어엿한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말을 종종 듣는다면서, 또래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도 외국인이라고 무리에 끼워주지 않는 등 편견과 차별이 다반사인 일상을 들려주며 눈물을 훔쳤다.
안산에 위치한 온누리M센터는 이처럼 인종과 언어, 생활양식의 차이가 여전히 틀림으로 인식되는 우리 사회에서 씨름하는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는 곳이다. 노규석 담당목사는 “다문화가정의 다음세대가 한국사회에 건강히 정착해 크리스천 리더로 성장할 수 있게 돕는 것은 선교적 차원에서도 큰 동력을 얻는 길”이라며 사역의 가치를 전했다.
따뜻한 ‘지지그룹’ 자처
온누리M센터는 온누리교회가 외국인 근로자들과 다문화가정을 섬기기 위해 2005년 안산에 설립한 기관이다. 기존에 온누리교회의 국가별 공동체들이 성장하면서 독립 공간이 필요해짐에 따라 개원한 것이다. 센터명인 ‘M’은 국내 거주하는 이주민을 어머니(Mother)의 마음으로 사랑하고, 이들에게 복음(Mission)을 전해 해외 선교사로 역파송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노규석 목사는 “온누리M센터가 ‘안산’에 자리한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외국인 거주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기 때문”이라며 “공단을 중심으로 발달한 안산은 90년대 후반 IMF로 한국인이 빠져나간 자리를 저임금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한국인이 갑인 곳에서 차별적 대우를 받는 이들을 돕는 손길이 절실했다”고 귀띔했다.
온누리M센터가 이주민 가운데서도, 특히 ‘다음세대’에 본격적인 관심을 보인 건 2010년 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방전도를 위해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놀이터에 홀로 방치된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2000년대 초반 국제결혼의 붐으로 출생한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면서 딱히 오갈 데 없이 방황하고 있던 것이다.
노규석 목사는 “다문화가정 중엔 편부모 혹은 맞벌이 부부가 많아서 자녀들 대부분 혼자 시간을 떼워야 한다”며 “이런 아이들에게 오랫동안 관계를 쌓으며 예수님을 증거하고 심리적 위안을 줄 ‘지지그룹’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를 위해 온누리M센터는 ‘예배 회복’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유치부부터 대학청년부에 이르기까지 △예꿈 △꿈땅 △파워웨이브 △Yer(와이어) 등의 부서를 개설했다. 다양한 국적의 부모를 둔 100여명의 친구들은 이곳에서 문화의 장벽을 넘어 진정한 복음에 대해 깨우쳐가며 예수님의 제자로 양육되고 있다.
“설교나 소그룹 모임 때 제일 강조하는 건 ‘너희는 천국의 시민’이란 사실입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은 언어와 인종 때문에 또래집단으로부터 소외되고 정체성에 큰 혼란을 겪거든요. 나라와 민족을 구분하기 전, 먼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귀한 존재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임을 알려주려고 합니다. 그래야 세상에 나가서도 흔들리지 않죠.”
온누리M센터는 주중 지역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위한 돌봄에도 두 팔을 걷어부쳤다. 기존에 운영해오던 공부방 ‘스타트리 아카데미’를 2016년부터는 안산시에 ‘지역아동센터’로 등록하고 물질적·정서적으로 다각도의 지원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한국어를 비롯해 영어·미술·체육·컴퓨터 등 각종 교육은 물론 영어캠프, 크리스마스발표회, 명절문화체험, 테마파크 및 영화관람 등 다채로운 행사들을 개최해 아이들에게 문화생활의 기회를 선물한다. 또한 상담이나 미술치료를 통해 상처 입은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지역 부모들 사이에서는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으로 정평이 난 이유다.
노규석 목사는 “다문화가정 자녀들은 가정형편 등 여러 가지 여건상 이곳에서 처음 문화나 여가생활을 접하는 경우가 많다. 지역아동센터 운영은 일차적으로 이 같은 아이들의 실질적인 필요를 채워주기 위함”이라며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그들이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여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활동하는 것이다. 이곳은 잠재적인 선교지나 다름 없다”고 했다.
크리스천 리더로 정착
지난 20년 가까이 이 땅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으며 살아온 이들에게 사랑과 정성을 쏟은 결과 곳곳에서는 희망적인 사례들도 일어나고 있다. 먼저 주일학교 및 지역아동센터 교사들과 친밀한 교제를 형성하고 그 속에서 새롭게 거듭남을 체험한 친구들을 지켜보는 일은 사역의 가장 보람된 순간이다.
노규석 목사는 “다음세대들은 어른보다 복음의 수용성이 더 높은 만큼 감사한 적도 많았다”며 “풀이 죽어 있던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살아날 때, 거짓말을 하던 아이가 회개하며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갈 때, 무슬림 자녀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날 때, 좌절을 딛고 꿈을 찾아가는 청년들을 지켜볼 때 엄청난 은혜를 느낀다”고 부연했다.
칸 다닐(28세) 청년도 그중 한 명이다. 카자흐스탄 출신 어머니를 둔 그는 열한 살 어린 나이에 처음 한국 땅을 밟았지만 적응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당장 러시아 말밖에 할 줄 모르던 그는 모국어를 잊지 않기 위해, 동시에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고자 온누리M센터를 찾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평생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당시 저를 친아들처럼 여기며 따뜻한 사랑을 베풀어주신 간사님이 계셨어요. 다문화 청년들은 마음을 터놓고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아무 조건 없이 저를 품어주신 간사님 덕분에 예수님의 사랑을 배우고 힘든 시절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온누리M센터는 대학에 합격하고도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던 칸 다닐에게 선뜻 장학금도 쥐어주었다. 교회가 학비를 지원해준 덕분에 꿈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는 그는 현재 온누리지역아동센터에서 교사로 봉사하며 또 다른 다문화가정의 차세대를 세워나가는 기적을 써 내려가고 있다.
칸 다닐은 “더욱 전문적인 가르침을 위해 최근에는 다문화학습관리사 자격증도 땄다”며 “어릴 적 나처럼 힘들어하는 친구들에게 그동안 내가 받았던 은혜를 다시 흘려보내고 싶다. 후배들의 고민에 조언하고, 내가 경험한 예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고백했다.
칸 다닐의 헌신은 사역자 한 명 한 명이 귀한 온누리M센터에도 든든한 힘이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다문화가정에 대한 한국교회의 인식 부족으로 사역자를 구하는데 적잖이 애먹기 때문이다. 온누리M센터 역시 성도들의 풀뿌리 선교로 이뤄져 온 만큼 노규석 목사는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섬기는 일에 한국교회가 적극 동참해주길 당부했다.
그는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따라 이 땅의 나그네들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섬기는 선한 사마리아인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이는 예수님의 지상 명령이자 선교적 책무”라면서 “다만 다문화 차세대를 긍휼의 대상이 아닌 선교의 동역자로 바라보면 좋겠다. 내 아이와 함께 공부하는 다문화가정들과 차 한 잔, 식사 한 끼 함께 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라고 소신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