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 당시 반대 거세…이젠 주민들 즐겨 찾는 명소로
음악홀·미술관 등 수준 높은 문화 콘텐츠 무료로 제공
큰 예배당 대신 특수학교 세운 남서울은혜교회의 ‘파격’
1995년 12월, 밀알복지재단(이사장:홍정길 목사)은 시교육청으로부터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 발달장애아 특수학교인 밀알학교 건축 허가를 받았다. 건축 허가는 떨어졌지만, 인근 주민들의 반대가 문제였다. 가뜩이나 학교 대비 학생 수가 많던 터라 2부제 수업을 하던 때였다. 그런 상황에서 학교용지에 일반 학교가 아닌 장애인 학교가 들어선다니 저항감이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장애인 학교는 ‘혐오시설’이라는 잘못된 선입견도 강하게 작용했다. 인근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것이라고 염려하는 이들도 많았다. 급기야 이듬해 기공식에는 주민들이 나와 격렬한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진통은 꽤 오래갔다. 송사도 치렀다. 그러나 밀알학교는 개교했다. 법원도, 여론도 학교의 편이었다. 1997년 유치부와 초등부만으로 학급으로 시작한 밀알학교는 25년이 흐른 지금 유치부부터 고등부까지 아우르는 전교생이 190명 규모의 대형 특수학교로 성장했다. 지난 16일 밀알학교를 찾아가 봤다. 개교 당시 겪었던 갈등의 흔적은 전혀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히려 이웃들로부터 사랑받는 지역의 명물이 됐다. 코로나로 인해 외부인의 출입이 다소 제한되고는 있지만, 학교 내에 자리한 콘서트홀과 미술관, 카페, 체육관 등은 지역주민들의 방문으로 분주했다. 밀알학교가 지역과 함께 호흡하며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밀알학교 장홍석 교감에게 밀알학교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학교
밀알학교는 설립 당시부터 ‘우리만의 학교’가 아닌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학교’를 지향했다. 이같은 정신을 잘 반영하는 시설이 체육관과 밀알 갤러리, 세라믹 팔레스홀, 인라인스케이트장, 도산홀, 카페와 제과점, 도예실 등이다. 학생들의 체육 활동 및 발표회 공간으로 사용되는 체육관은 주말에는 지역주민의 행사 장소로 활용된다. 매주 수요일 저녁에는 지역주민 배드민턴 동아리의 연습 장소로도 제공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 이전까지 지역주민의 경로잔치 장소로 연 2회씩 사용됐다. 올해는 모처럼 코로나의 영향이 줄어듦에 따라 체육관 경로잔치가 다시 열릴 예정이다.
지하 1층에 자리한 밀알 갤러리는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된 갤러리로 2주마다 다양한 예술 작품을 전시하며 장애인 및 미술 동호회원들의 그림이 전시된다. 기자가 찾은 날도 밀알학교 출신인 연호석 작가의 개인전 ‘숲속에 빛’이 진행되고 있었다.
지하 2층의 세라믹 팔레스홀에서는 지역주민들을 위한 정기 음악회가 무료로 열린다. 세라믹 팔레스홀은 특히 세계 최초의 도자기 음악홀로 중국 최고의 도예가 주락경 선생이 설계에 참여했다. 단순한 연주공간이 아닌 지역의 문화 수준을 한층 끌어올리는 공간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밖에 교내 카페는 저렴한 가격으로 주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각광 받고 있다. 이곳은 특히 학생들의 직업훈련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다.
장홍석 교감은 “특수학교가 자칫 지역주민들이 찾기 어려운 공간이 되기 십상”이라며 “밀알학교는 시설을 지역에 개방하고 행사를 유치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웃들이 학교 문턱을 넘을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시설로 자리 잡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장애인을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
밀알학교는 사랑과 봉사, 섬김과 나눔의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설립됐다. 학교 이름인 ‘밀알’은 이 땅에 한 알의 밀알로 겸손하게 오셔서 우리들에게 영원한 생명과 진정한 평화를 주신 예수님을 상징한다. 이 ‘밀알’ 정신을 바탕으로 발달장애(자폐성), 지적장애 학생의 특성과 능력에 적합한 교육을 실시하고 사회적 통합을 촉진한다는 게 밀알학교의 설립 목적이다.
장홍석 교감은 “자폐 자녀를 둔 부모님들의 바람은 아이가 사회에서 어엿한 구성원으로 잘 살아가는 것”이라며 “장애 정도가 심각하지 않고, 교육이 잘 된 학생들의 경우에는 졸업 후에 직장생활을 하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학생마다 장애 정도의 차이가 있는 만큼 교육만으로 모든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장 교감은 “학생들을 대하는 교사들의 마음가짐이 교육의 효과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고 했다. 밀알학교 교사들이 매일 아침 말씀을 묵상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밀알학교에서는 전 직원이 매일 아침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교내 메신저를 통해 그날의 말씀과 기도제목을 나눕니다. 저희 교사들은 이 시간을 통해 매일 자신을 돌아보고, 교사로서의 태도를 생각하며 학생들을 대하게 됩니다. 이 시간이 분명 교육의 효과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밀알학교에 보내신 이유를 묵상하다 보면 한 아이를 변화시키기 위해 더 관심을 두고 더 기다리며 적극적으로 지도하게 됩니다.”
교회여서 가능했던 일
한편 1995년 학교 설립 당시만 해도 자폐성 장애나 지적장애 등의 개념이 보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장애아동은 많았지만, 이 아이들이 갈만한 특수학교가 많지 않았다. 불균형이 심각한 가운데 남서울은혜교회에도 장애인 자녀의 취학 문제로 고민하던 교인들이 있었다. 장 교감은 “당시 그분들의 간절한 기도 제목이 장애학생들을 위한 특수학교 설립이었다”며 “그분들의 기도가 응답되어 학교가 세워졌다”고 소개했다.
당시 남서울은혜교회는 중동고등학교 강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그런데 학교 재단이 파산 위기에 처했고, 교회에 재단 매입 제안이 들어왔다. 교회는 매입 절차에 들어갔지만, 교회에 재단을 팔 수 없다는 졸업생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당회는 이를 대신해 지금의 밀알학교 부지에 장애인 학교를 설립하기로 했다. 부흥하는 교회라면 대규모 예배당을 짓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때였다. 예배당 대신 장애인을 위한 학교를 세운 교회의 결정은 그야말로 파격 그 자체였다. 지금도 밀알학교에서는 주중엔 학교 수업이, 주일엔 예배가 진행된다.
“우리만을 위한 예배당을 짓기보다, 의미 있는 일을 하자는 당회의 방향성에 자폐성 장애인 자녀를 둔 어머니들의 기도가 더해지면서 밀알학교가 세워졌습니다. 이런 결정은 불편을 감수하겠다는 교인들의 성숙함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지금도 남서울은혜교회 교인들은 주일마다 체육관에 의자를 깔았다가 치우는 수고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남서울은혜교회 교인들은 개교 초기 물질과 기도로 학교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인력이 부족할 때는 자원봉사로 섬겼다. 장 교감은 “개교가 늦어지면서 교회 공간에 파티션을 쳐놓고 학생들과 수업하던 때가 기억이 난다”며 “교인들의 배려와 헌신이 없었다면 지금의 밀알학교가 없었을 것”이라고 감사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