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가 왜 두 군데에만 있느냐고 자꾸 사람들이 물어보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대답을 합니다.
* 마태복음과 예수님의 탄생
<메시아의 두 가지 조건> 마태복음이 기록될 때 처음 염두에 두었던 독자는 유대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고 구원을 받도록 하기 위해 마태복음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족보를 밝혀야 합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이시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그것은 예수님이 유대인이고 다윗 왕손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3)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땅의 모든 족속을 구원하실 메시아는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서 즉 유대인 중에서 나와야 합니다.
<다윗의 자손> 메시아는 또한 다윗의 자손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선지자 나단을 보내셔서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 7:16)라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왕 즉 메시아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와야 합니다. 유대인이라도 그가 만약 다윗의 혈통이 아니라 베냐민 지파나 르우벤 지파라면 메시아 자격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태복음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마 1:1)라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유대인이고, 다윗의 자손이기 때문에 적법한 왕손입니다. 마태복음은 친절하게 족보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과 족보가 비슷한 사람들은 마태복음을 보며 쉽게 그 진위를 가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족보가 어떻게 끝납니까?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마 1:16)라는 말씀으로 끝납니다.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절에서 갑자기 성장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외치신다면 상당히 어색할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 말했으니 그 예수님이 아기 시절에 겪으신 일들에 대해 조금 이야기를 하고 예수님의 공생애로 넘어가는 것이 줄거리 전개상 훨씬 더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탄생과 어린 시절 이야기 중에서 구약 예언의 성취가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예언이 그러합니다. 요셉이 꿈에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듣는 장면을 설명한 후 성경은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마 1:22-23)라고 말씀합니다.
또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님을 모시고 이집트로 피신한 일을 설명한 후 성경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마 2:15)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헤롯이 베들레헴의 아기들을 죽인 사건을 설명한 후에도 그것이 예레미야의 예언의 실현임을 설명합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마 2:17-18).
탄생 이야기를 언급하면 이런 중요한 구약 예언들의 성취를 설명할 수 있는데 그 기회를 그냥 포기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