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싸우지 말라.’는 말이 선뜻 이해 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싸울 수 있는가? 언제 우리가 하나님과 싸웠는가?’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출16:8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가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향하여 원망한 것은 곧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행5:17절 이하를 보면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이 베드로와 사도들을 잡아다가 공회앞에 세우고 심문한다. 그때 가말리엘이 둘러선 사람들에게 말한다.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내버려 두라. 이들의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하나님께로 부터 났으면 우리가 무너뜨릴 수 없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것이다.’<38-39절> 그러자 사람들이 그 말을 옳게 여기고 사도들을 놓아준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데 방해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사람들과 싸우는 것은 곧 하나님과 싸우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은 골리앗과 하나님과의 싸움이었고, 사울과 다윗과의 싸움은 사울과 하나님과의 싸움이었다.
한국교회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막기 위해 힘쓰고 있다. 성경 말씀에 반하기 때문이고, 그 폐해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차금법을 발의한 의원들은 하나님과 싸우고 있는 자들이다. 말씀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요1:1> 법은 국회가 만든다. 국민을 대표해서 국회의원이 모여 결정한다. 국민의 뜻을 반영한다. 차금법을 막는 최선의 방법은 이를 추진하고 찬성하는 의원들을 국회에서 내보내는 것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는 것도 하나님과 싸우는 것이다. 애굽의 바로왕이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과 싸우다가 마지막 열 번째 재앙에 두손들고 항복한다. 바로왕은 가장 미련한 사람의 표상이다. 얻어 터질대로 터지고 항복했다. 빨리 항복하는 것이 지혜이다. 하나님과 싸우면 형통할 수 없다. “~하나님 여호와와 싸우지 말라 너희가 형통하지 못하리라”<역대하13:12>
하나님과 싸우는 것은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이다. 우리는 회개를 촉구하시는 경고의 소리를 듣고 회개하고 돌아서야 한다. 예배를 경홀히 여기는 자리에서, 우상숭배하는 자리에서, 목회자의 목양 사역을 방해하는 자리에서, 성도를 실족케 하는 자리에서,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리에서 회개하고 돌아서야 한다. 반항하지 말고, 고집부리지 말고, 어명앞에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과 싸우는 자들의 결말은 자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