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V(King James Version)’만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유일한 성경일까. 최근 한국교회 내 킹제임스 유일주의자들이 “‘KJV’만이 하나님이 주신 영감을 받은 유일한 성경이며, 다른 사본과 역본은 마귀로부터 온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러한 ‘극단적 킹제임스 유일주의’가 한국교회에 큰 혼란을 주고 있는 상황에서 다양한 번역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는 인식에 따라 이를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렸다.
한국기독교이단연구학회(회장:유영권 목사)가 지난 9일 오후 1시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제2회 정기학술대회를 ‘KJV, 영감된 유일한 성경인가?’를 주제로 개최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KJV가 탁월한 번역성경이라는 점에서 교회사의 소중한 유산임을 부인할 수 없지만, KJV의 절대성과 무오성을 주장하는 ‘극단적 킹제임스 유일주의’는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주제발표를 맡은 유영권 박사(한국기독교이단구학회장)는 “서구교회에서는 이미 논의가 일축된 ‘킹제임스 유일주의’가 아직 우리에게 혼란을 주는 것은 다양한 성경 역본에 대한 이해나 논의가 한국교회에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목회자와 신학도, 성도들이 다양한 번역 성경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지식을 갖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며 학술대회의 취지를 밝혔다.
특히 그는 “KJV 성경 유일주의자들의 주장은 성경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초래하고, KJV를 사용하는 교회만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교회라는 잘못된 신앙관을 갖게 한다”며, KJV의 출현 배경과 역사적 상황, 역본이 갖는 의의를 분석할 필요가 있음을 밝혔다.
첫 번째 발제자로 사본학적인 측면에서 ‘KJB 유일주의’에 대해 분석한 장성민 박사(장신대 성서학연구원 특별연구원)는 KJB의 저본인 ‘공인본문’(TR)이 사본학적으로 옹호할만한 가치가 없다는 점에서 공인본문을 번역한 KJV를 추앙할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장 박사는 “신약성경은 그리스어로 기록됐으나 2세기 말엽부터 다양한 언어로 번역됐으며, 그런 뜻에서 말씀 전수의 역사는 번역의 역사라고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니다. 1611년 번역된 ‘KJB’도 하나의 번역본이라는 점에서 장구한 번역사의 흐름 가운데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일각에서 KJB를 여러 번역본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유일하게 참된 성경’으로 추앙하면서 마치 나머지 모든 번역본에 심각한 결함이 있는 것처럼 주장한다는 데 있다. 그는 KJB의 저본(底本)이 된 공인분문(TR)의 권위를 각별히 중시한다는 점에서 관련 학계의 연구를 분석해 소개했다.
KJB의 의의를 고찰한 장 박사는 “KJB의 저번이 된 공인본문(TR)를 옹호할 학문적 근거는 거의 없으며, TR을 번역한 KJB도 여러 번역성경 중 하나에 불과하므로, 그런 인식에 기초해 KJB의 위상을 평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비잔틴 본문-유형을 대변하는 사본들로부터 편집된 ‘TR’은 본문비평의 견지에서 볼 때 ‘원문’으로부터 상당히 멀어진 이차적 본문으로 TR이 첫 출판된 이래 350년 넘게 ‘공인 본문’의 지위를 구가해왔지만, TR이 누린 권위는 본문의 질에 비해 상당히 부풀려졌다는 것.
결론으로 그는 “KJB는 여러모로 뛰어난 번역이지만 유구한 번역사의 흐름에 있는 하나의 역본일 뿐 적어도 본문비평의 견지에서 다른 역본들에 비해 ‘유일하게 참된’ 번역본이라고 추켜세울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고 단언했다.
이어 발제한 김영호 박사(합동신대 신약학)는 킹제임스성경이 ‘원어에서 영어로 번역한다’는 원칙이 완전하게 구현된 번역본이라는 점에서 가치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번역은 원본은 대체할 수도 영감을 주장할 수 없다”며, “KJV만을 고집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일 뿐 아니라 신학착오”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그는 “KJV만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성경이며, 이를 읽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주장한다면 번역에 참여한 50여명의 사람을 ‘사도와 선지자’로 대체하는 것과 같은 오류”라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해서 KJV의 역사적 의의와 학문적 깊이까지 간과할 수는 없다. 김 박사는 KJV의 의의로 “KJV에는 위클리프로부터 시작된 영어 성경의 번역을 위한 긴 연구와 투쟁, 실험과 번역의 완성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 그레이트 성경의 시적 본문과 번역의 장점이 수용됐으며, 제네바 성경의 높은 학문성과 정확한 영어 표현이 들어갔다는 점에서 영어 번역의 변곡점이 됐다”고 평가했다.
끝으로 김 박사는 “국가적 힘을 기울여 50여명의 당대 최고의 학자들에 의해 번역작업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KJV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고 감사함으로 사용해야 한다. 또 KJV의 언어를 익히면 개혁파 신학자들의 저작을 읽을 수 있는 좋은 기초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