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없는 것을 상상해 보라.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 아늑한 집이 없다면. 추운 겨울 이불 속에 파고들어 위로를 받는 당연한 일상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거리를 배회하는 노숙인들, 열악한 환경에 노출된 쪽방촌 주민들, 정당한 권리를 박탈당한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귀한 존재의 권리를 회복하기 위한 논의의 시간이 마련됐다. 희년함께(상임대표:김덕영)는 지난 9일 성공회대학교 새천년관에서 ‘희년과 정의로운 주거권’을 주제로 ‘2024 희년포럼’을 개최했다.
김덕영 상임대표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포럼은 1부 순서로 ‘정의로운 주거권이 필요한 사람들’이 강단에 나서 정당한 주거권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전세사기 피해를 당한 당사자로서 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철빈 씨는 “세입자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했음에도 전세사기를 피할 수 없었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정보 비대칭이 심각하다. 현 제도에서 임차인에게 주어진 정보로는 도무지 전세사기를 당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라면서 “주거권은 마땅하게 모든 이에게 주어져야 하는 권리다. 이를 박탈당한 피해자들은 모든 일상이 무너지고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서울 노숙인 자치위원회 대표로 노숙인들이 누릴 최소한의 권리를 위해 힘쓰고 있는 이임경 목사가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이 목사는 “노숙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한 끼의 식사가 아니다. 당장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숙인들이 진짜 주민으로 사회에서 책임을 다하며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이끄는 사역이 절실하다”면서 “서로 의지하고 정서적으로 공감하며 더불어 돌볼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조성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서울의 대표적인 쪽방촌인 동자동사랑방의 윤용주 공동대표는 “국민의 삶을 흔들고 있는 우리나라의 비정상적인 부동산 문제는 돈벌이를 위해 집을 짓는 기업을 지원하고 정책을 추진하며 주거권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국민은 집으로 인해 대출 빚에 허덕이고 높은 집값에 집 구하기가 어렵지만 정부는 빚을 내어 집을 사라는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주거권 취약계층 중 하나인 청년세대를 대표한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청년 세입자인 김동현 씨(민달팽이유니온 조합원)는 “국가와 사회는 저출생과 자살률을 말하면서 청년들의 고립되고 불안한 주거조건과 온갖 갑질과 열악한 주거환경으로부터 벗어날 권리에 대해서는 무심하다”며 “청년들에게는 빚을 내서 저 거대한 아파트에 들어가라는 허황된 말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토로했다.
2부에서는 ‘집을 살 권리’가 아닌 ‘집에서 살아갈 권리’를 되찾기 위한 발제와 대담이 이어졌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쫓겨나는 상가임차인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옥바라지선교센터 이민희 목사는 정의로운 주거권이 성경적으로, 사회경제적으로 얼마나 시급한 사안인지 강조하면서 토지권, 생존권에 대해 주거권의 중요성을 주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부에서 발제를 맡았던 이철빈 씨와 민달팽이유니온 지수 위원장의 대담도 진행됐다.
3부에서는 정의로운 주거권을 실현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법들을 들을 수 있었다. 탄탄주택 김수동 이사장이 탄탄주택 협동조합 이야기를 소개했고 최경호 경기도정책개발자문관과 희년은행 김재광 센터장이 현장의 소리를 전했다.
최경호 자문관은 “나라가 잘살수록 자가소유율이 높아질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외국 사례들을 보면 실제로는 그 반대에 가깝다. 복지국가일수록 사회주택의 비중이 높고 자가소유율은 우리와 비슷하거나 낮은 경우가 많다”면서 “복지국가는 ‘내 집을 가진 사람이 많은 나라’라기보다 ‘세입자도 마음 편히 사는 나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포럼을 주최한 희년함께는 “주거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이슈를 다루고 다양한 영역에서 당사자 활동을 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정의로운 주거권의 의미를 성경에서 찾고 그 정당성을 확인하며 정책적 접근과 새로운 대안에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면서 “정의로운 주거권이 필요한 이들을 향한 지속적인 기도와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