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둘째 손자 백일을 맞아 아내와 함께 울산에 사는 아들 집에 잠시 방문했다. 백일 사진도 찍고 사돈 식구들과 식사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나는 먼저 자동차가 있는 주차장으로 왔다. 아내가 큰 손자와 함께 화장실에 들려 잠시 뒤늦게 오게 되었는데 횡단보도를 건너는 중에 그만 큰 손자 발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넘어질 때 아이가 다치지 않게 감싸려다가 그만 아내의 얼굴이 그대로 길바닥에 부딪치게 되었다고 한다.
얼굴에 상처를 입고 입 안에서도 피가 나는 상황이었다. 며느리가 나를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를 듣고 급하게 가까운 병원에 가서 응급 치료를 받고 입안을 몇 바늘 꿰매야 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며칠간 넘어진 후유증으로 식사도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지금은 다행히 큰 부작용 없이 많이 회복된 상황이다.
이처럼 사람은 누구나 어디서든지 넘어질 수 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넘어지고 다친다. 어린 아기는 2천 번을 넘어져야 비로소 걷는 법을 배운다고 한다. 넘어지는 것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다시 일어나면 된다.
목회 현장에서 성도들을 건강하게 세우려고 수고하지만 수없이 넘어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 목회자도 다르지 않다. 수많은 장애물과 걸림돌에 넘어지고 낙심과 절망이 몰려와서 포기하고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 일어나야 한다.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고 사명을 주셨으며 그 사명은 고난의 길이요 십자가의 길이기에 다시 일어나서 사명의 길을 가야 한다.
지혜자는 이렇게 말씀한다.“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잠언 24:16)
일곱 번 넘어진다는 것은 셀 수 없이 넘어진다는 뜻일 것이다. 그럼에도 다시 일어나는 것이 의인의 삶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은 넘어지는 사람에 대하여 비유하시기를 돌밭에 뿌려진 씨와 같다고 하셨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쁨으로 받지만 환난이나 박해가 오면 곧 넘어지는 사람인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한 뿌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탄은 우리를 넘어지게 한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할 때 크게 칭찬하였지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죽음의 길을 갈 것이라고 할 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잡고 “그리하지 마옵소서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하자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내 뒤로 물러서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 16:23)라고 하시며 책망하셨다. 베드로가 인정에 치우쳐서 한 말이지만 예수님은 베드로 뒤에서 역사하는 사탄을 책망하신 것이다. 이처럼 사탄은 사람 뒤에 숨어서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걸림돌로 넘어지게 한다.
우리는 그렇게 넘어졌다 해도 하나님의 일을 위해 다시 일어나야 한다. 넘어졌다가 스스로 일어날 힘이 없을 때는 우리를 일으켜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자. 우리가 환난과 박해로 자주 넘어질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손을 붙잡고 계시기 때문에 아주 엎드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날 수 있음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