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주인공 ‘니키’(아네트 베닝)는 5년 전 멕시코 어느 해변에서 남편을 사고로 잃었다. 그가 남겨놓은 많은 흔적을 볼 때마다 고통스러웠던 것은 남편과 나누었던 행복한 시간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그런 그가 우연히 남편과 즐겨 다녔던 미술관에 용기를 내어 갔는데, 그곳에서 남편의 도플갱어 같은 톰(애드 해리스)을 만난다. 그를 보는 순간 니키는 5년간 잃어버렸던 뜨거운 열정을 느낀다. 톰 역시 이미 10년 전 아내가 다른 남자를 찾아 떠난 상태다. 그 후로 그림을 그리지 못했지만 니키를 만나고부터는 다시 붓을 잡는다. 그리고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니키는 기다렸다는 듯이 톰의 사랑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톰은 니키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니키는 정말 톰을 사랑했을까. 아니면 죽은 남편인 가렛의 이미지를 사랑한 것일까?
하지만 머지않아 톰은 니키가 자신에게 먼저 다가온 것이 자신이 그녀의 남편인 가렛과 닮았기 때문임을 알게 된다. 멕시코에서 톰이 나를 사랑하기는 한 것이냐고 물었을 때, 니키는 두 사람 모두를 사랑했다는 말은 니키가 그동안 인격적인 톰이 아니라 가렛의 이미지로서 톰을 사랑했음을 보여준다.
일 년 후의 시간, 그 후로 둘은 더 이상 만남이 없었고, 니키는 한 장의 전시회 초대장을 받는다. 톰이 사망한 후에 그가 그렸던 작품들을 전시하는 추모전시회였다. 전시된 그림은 니키와 헤어진 후에 그린 작품들이었다. 거기에 전시된 작품 가운데 ‘The face of love’란 제목의 그림이 있었는데, 니키를 바라보는 톰의 모습을 그린 것이었다. 비록 상실의 고통을 애써 잊으려 했지만, 니키에겐 남편 가렛과의 사랑을 지속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결국 사랑의 지속에 대한 그녀의 갈망은 남편과 너무나도 닮은 톰을 가렛 이미지로 보고, 누구에 의해서도 그 이미지가 깨어지길 원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인 역시 상실의 아픔을 갖고 있으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성령을 통해 지속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를 열광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추구하는 것의 이미지일까, 아니면 하나님 자신일까? 우리는 혹시 우리가 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 누리고 싶은 것을 투영하여 하나님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포이에르바흐는 <기독교의 본질>에서 이점을 신랄하게 폭로하였다. 간단하게 말해서 인간은 자신의 이미지를 투영해 대상을 인식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여기지만, 실상은 우상숭배일 뿐이다. 두 번째 계명이 금지하고 있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인간이 스스로 경각심을 갖고 노력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이미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방법이 바로 계시 의존 신앙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은 당신이 어떤 존재이고 무엇을 원하고 또 어떤 일을 행하시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셨다. 따라서 부지중에 우상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된 것을 받아들여야지, 나의 생각과 뜻, 의지, 비전을 통해 하나님을 알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