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수 박사의 영화읽기]오늘 우리에게 ‘사도 세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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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수 박사의 영화읽기]오늘 우리에게 ‘사도 세자’는 누구인가?
  • 최성수 박사(AETA 선교사)
  • 승인 2024.09.24 0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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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도(이준익, 사극, 15세, 2015)

영조가 아들 이선, 곧 후세에 ‘사도 세자’로 알려진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을 역사에서는 임오화변(영조 38년 1762년 5월)이라 일컫는다.

영화 <사도>는 임오화변이 일어나게 되기까지 영조와 세자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밝히는 일에 집중한다. 뒤주 사건에서 핵심은 현상적으로는 세자가 왕인 자신을 죽이려 한 것 때문에 영조가 분노한 결과였지만, 실제로는 왕위를 이을 세자에 대한 영조의 실망이 극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사실 영조는 뒤늦게 얻은 세자로 인해 매우 기뻤고, 어린 세자가 보여준 총명함과 영특함에 감탄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공부 이외에 다른 것들에 더 많은 관심을 두는 세자를 보고 영조는 크게 실망했다. 영조는 과거 자신이 겪었던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선 세자가 적어도 신하들의 수준을 뛰어 넘는 학식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세자에게 기대했다.

다시 말해 자신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세자에 대한 실망은 영조에게 결국 세자의 존재 자체가 역모라고 여겨질 정도로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당시 사회에서 성리학적인 예법은 사람들을 교화시키는 윤리이며 도덕이고, 국가를 통치하는 이념이며 세상을 이해하는 세계관이었다.

이처럼 <사도>는 18세기 조선의 시대정신을 형성하였던 성리학 예법을 강조했던 영조와 개인의 자유를 포기하길 강요하는 거대 담론으로서 그것을 거부한 세자의 갈등 구조에 집중한다. 세자가 자신의 아들(후에 정조)에게 활을 쏘며 했던 말을 기억해보라. 과녁을 벗어나 허공으로 날아가는 활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이 한마디에 세자는 자신이 성리학적인 세계관을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향해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길 어떻게 열망하고 있음을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통해 마땅히 들어야 하는 의미심장한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사도 세자’는 누구인가? 거대 담론의 희생자들, 국가 혹은 전체에 의한 폭력적인 권위에 굴복하기보다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다 희생된 사람들 등….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다. ‘뒤주 속 세자’다. 시대의 슬픔을 생각하게 하는 자들이다.

최성수 박사(AETA 선교사)
최성수 박사(AETA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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