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금·주식 빼가며 코인에 몰두, 청년 파산 꾸준히 증가해
급속 성장 끝난 시대 “자가성수 어렵다”는 심정에 내몰려
‘인생 한방’에 모든 것을 걸었다. 고작해야 복권 한두장을 구입하며 장난식으로 외치는 수준이 아니다. 요즘 청년들은 정말로 코인(암호화폐) 투자 ‘한방’에 인생을 걸고 마음을 졸이며 차트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다들 결과라도 좋으면 다행이련만 ‘투기’에 가까운 미성숙한 투자로 인해 빚더미에 앉는 청년들이 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회생법원이 올해 4월 발표한 ‘2023년 개인회생·파산사건 통계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개인회생 절차 개시 결정이 이뤄진 사건이 전년 대비 3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서울회생법원은 지난 몇 년간 20대의 개인회생 신청이 꾸준히 증가했다고 밝혔다.
적금마저 코인 투자에 ‘올인’하는 과열된 분위기를 보며 기성세대들은 혀를 찬다. 반면 청년들은 “우리 시대의 마지막 탈출구”라며 격한 감정을 쏟아낸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투자나 투기에 참여하지 않고 정직하게 일을 해서 노동의 대가를 받는 것이 ‘어리석은 삶’으로까지 취급되는 분위기다.
이미 빠르게 달려버린 기차
기차가 달리기 시작하는 시점에선 기차에 올라타기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속도가 붙은 이후에 맨몸으로 기차에 올라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전강수 교수(대구가톨릭대)는 청년 세대가 느끼는 심정을 이렇게 대변했다.
그는 “노년층이나 장년층은 어릴 적에는 가난 때문에 고생을 했어도 대한민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의 수혜를 볼 수 있었다. 대단한 스펙이 없어도 좋은 직장을 가고 저렴한 가격에 집을 마련하고 그 자산이 크게 불면서 이익을 봤다. 그게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는 대한민국이라는 기차가 너무 빠른 속도가 붙어 버렸다. 지금 청년들은 기성세대가 누렸던 기회를 누리지 못했다는 생각에 박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예전처럼 월급을 모아서 ‘내 집’을 마련하는 일은 전설 속의 이야기로 치부된다. 아무리 피땀 흘려 일해도 감히 욕심도 내기 힘들 만큼 집값은 괴물처럼 불어났다. 있는 대로 없는 대로 대출을 당겨 전세나 자가 집을 마련한다 해도 평생을 이자와 원금을 갚는 삶에 종속돼야 한다는 현실에 앞날이 막막하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는 진작에 걷어진 현실에서 ‘흙수저’라는 자조만이 나돈다. ‘한탕주의’에 천착하고 있는 청년들의 모습을 오롯이 그들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이유다.
사실 전통적으로 투자란 ‘여윳돈’을 가지고 하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지금 시대의 청년들은 오히려 가진 게 없으니 투기에 뛰어든다. 소위 ‘코인이 빵 터져주는 것’ 외에는 자신의 삶이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사실상 수백, 수천만원치 복권을 구매하곤 당첨을 기다리는 심정과 다를 바 없다.
그렇다고 마냥 안쓰러운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것도 적절치는 않다. 정직한 노동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묻어난 투기라고는 하지만 지금 시대의 청년들이 밥을 굶을 만큼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는 보기 힘들다. 당장 배를 채우는 것도 힘들었다면 코인 투자에 눈을 돌릴 틈도 없었을 터. 청년들의 한탕주의와 투기문화의 수면 아래에는 허영심과 비교의식이 일면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청년들의 SNS는 온통 화려한 일상들로 수놓아져 있다. 젊은 나이임에도 비싼 호텔과 식당에서 사치에 가까운 향락을 누리는 모습을 보면 그와 대비되는 본인의 삶이 초라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배가 고픈 것은 참아도 배가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말처럼 주변 누군가 코인으로 돈을 벌었다는 ‘카더라 통신’이 들릴 때마다 판단력이 흐려진다.
‘좁은 길’을 걷는 신앙 필요한 때
성경은 일관되게 ‘땀 흘려 씨를 뿌린 것을 거두라’고 정직한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고까지 못 박을 정도다. 전통적인 성경의 가치관에선 정직한 노동 없이 일확천금을 노리는 한탕주의는 곱게 보일 리가 없다.
하지만 혹자는 말한다. 육체노동에 기반한 경제 체제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실제로 당연히 노동자가 필요하리라 생각했던 수많은 영역이 기계와 로봇, AI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 식당에서는 종업원 대신 키오스크 기계가 주문을 받고 전화 상담을 연결하면 AI 상담원이 목소리를 인식해 답변을 내놓는다.
농경 사회에선 100명 모두가 일을 해야 100명이 먹을 음식을 조달할 수 있었다면 산업화 시대에선 50명이 일해도 100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 나아가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이르러서는 10명의 노동만으로 100명이 먹고 살 수 있는 재화가 충분히 생산된다. ‘육체노동’만을 정직한 노동으로 여기는 것은 구시대의 유물이며, 금융자본주의 시대에는 투자도 일종의 노동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꽤나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주장이지만 전강수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전 교수는 노동 없이 투자를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는 요즘의 세태를 ‘추출자본주의’라고 정의한다. 새로운 가치나 재화를 ‘창출’해내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부를 ‘추출’해가는 것에 불과하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비유하자면 파이를 늘리는 행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파이를 야금야금 빼먹는, 누군가 이익을 얻으면 다른 누군가는 손해를 보는 ‘제로섬 게임’이라는 얘기다.
그는 “좋게 말하면 투자고 나쁘게 말하면 투기다. 그런데 무엇이 됐든 그것은 부를 창출하는 행위가 아니다. 뭔가를 생산해서 그 사회의 부 자체를 늘리고 사람들이 잘 살 수 있게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는 뜻”이라며 “결국 누군가 만들어낸 부를 뽑아내는, 그러니까 추출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만약 대부분의 국민들이 추출에만 몰두한다면 국가 경제가 무너져내릴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특히나 청년들이 몰두하는 암호화폐, 즉 코인 시장은 추출자본주의의 ‘끝판왕’이라는 지적이다. 좋은경영연구소 박철 소장(고려대 교수)은 코인 투자가 ‘맘몬주의’의 전형이라고 말한다. 그는 “코인은 실제 가치가 보증이 되지 않은 화폐다. 게다가 주식 투자는 미래 전망이 밝고 건전한 기업을 위해 자금을 조달한다는 의미라도 있지만 코인에 투기하는 목적은 오로지 돈을 벌겠다는 일념 밖에는 없다. 이런 극단적인 물신주의를 하나님이 기뻐하실지 생각해봐야 한다”면서 “성경은 물질이 있는 곳에 너희 마음이 있다고 말한다. 코인에 투자하면 24시간 내내 초 단위로 달라지는 시세에 완전히 마음이 뺏긴다. 투자 금액이 높아지면 일상생활이 지장이 있을 정도”라고 우려했다.
코인 투기만이 탈출구라 여길 정도로 쉽지 않은 현실이지만 크리스천 청년이라면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건강하게 재정을 운용해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전강수 교수는 “청년들에게 조언보다는 위로를 전하고 싶다. 하지만 상황이 나쁘다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태도를 저버리는 것은 곤란하다. 어려워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살려고 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그 힘든 길을 감수하는 것이 결국 신앙인 시대가 오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