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경남 밀양에서 남학생 44명이 한 명의 여중생을 무려 일 년 동안 성폭행했던 사건이 최근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몇몇 유튜버들이 당시 가해자들의 신상을 공개하며 사적 보복에 나섰기 때문이다. 신상이 공개된 가해자 중 한명은 직장에서 해고되기도 했다. 가해자가 근무했던 식당이 문을 닫기도 할 정도로 여파가 상당하다.
대중들이 이처럼 사적 보복에 열광하는 건 학교폭력 대응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경찰의 졸속수사와 검찰의 솜방망이 처벌에 분노한 대중들은 사적 보복을 호기심 가득 지켜볼 뿐이다. 당시 가해자 중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런 과정에서 지적장애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피해자는 다시 한번 고통을 호소하며 신상 공개 자료의 삭제를 요구하고 있다.
학교폭력에 제대로 된 조치를 하지 못한 결과, 피해자는 여전히 피해자로 남아 있고, 가해자들도 범죄에 상응하는 제재를 받지 않았다. 결국 그들 역시 회복의 기회를 잃어버린 셈이다. 밀양 사건과 같이 강력 사건은 아니지만, 학교 폭력에 대응하는 시스템은 여전히 피해자만 양산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회복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를 극복해야 할 과제가 우리 교육 현장에 남아 있다.
정부 종합대책에도 학폭문제 여전
교육부는 작년 4월 “학교폭력 없는 안전하고 정의로운 학교를 만들겠다”면서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학교폭력에 엄정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출석정지(6호)와 학급교체(7호), 전학(8호)과 같은 조치 결과를 기존 2년에서 최대 4년까지 학생부 기록으로 보전하겠다고 발표했다. 학교폭력 조치사항은 학생부 전형 외에도 다른 대입 전형에도 필수적으로 반영하도록 변경했다.
피해자 중심의 보호조치를 위해 가해자와 즉시 분리 기간도 3일에서 7일 연장하고, 피해학생 전담지원관 제도 도입, 학교장 긴급조치 강화, 피해학생 분리요청권 도입 등의 추가 제도도 발표했다. 17개 시도교육청에 ‘학교폭력예방·지원센터’를 설치 운영해 학교 현장의 사안 처리, 학생 간 관계 회복, 법률서비스 등을 지원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초점은 가해자 처벌에 맞춰져 있다.
2017년 3만 건이었던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이 2022년 6만 건으로 두 배를 상회하면서 나온 정부의 고육지책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학교폭력은 자유롭게 교육받을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학생들이 학교폭력 없는 정의로운 학교에서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안이한 온정주의로 인해 피해학생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학교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개선하겠다”며 정책 변화 이유를 설명했다.
구체적인 실태조사 결과가 나와야겠지만, 대책발표 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학교폭력이 줄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현장 교사는 “상황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과거에는 경미하게 처리되었을 사안까지 학폭위로 이첩되는 사례가 더 증가한 것 같으며, 특히 SNS를 이용한 사이버 폭력이 학생들 사이에서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기독교사단체 좋은교사운동은 교육부의 엄벌주의 정책을 비판하며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목소리를 내왔다. 종합대책 발표 직후 발표한 성명서에서도 “국민적 공분을 잠재우기 위한 미봉책에 불과하며, 학교폭력을 근절하는 방안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하면서 “피해자 맞춤 지원을 위해 학교의 역량부터 진단해야 하고, 학교 역량을 높일 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폭위 이첩 갈수록 많아져
그렇다면 현재 학교 폭력에 대응하고 있는 학교 현장 시스템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 걸까. 분명한 건 밀양 사건과 같이 안이한 대응은 크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학부모들은 보다 예민해졌고, 그 영향으로 학폭위에 이첩되는 사례는 늘어난 상황이다. 요즘에는 학교폭력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법무법인도 생겨났다.
강력한 처벌에 맞추다 보니 억울하게 가해자로 몰린 학생들도 있고, 고무줄 처분으로 적절한 징계를 받지 않은 경우가 발생하는 것도 지적되고 있다.
물리적인 폭력보다는 언어 폭력, 사이버 폭력 등이 많아지는 상황에서 2020년 3월 새롭게 출범한 학교폭력위원회에서 사안을 전담해 처리하고 있다. 학폭위는 피해학생을 보호하고 가해학생을 선도 및 징계, 분쟁 조정 등을 심의하는 기구이다. 지금은 쌍방 사건이 많은 것도 변화된 모습이다.
학교에서 학교폭력이 인지되거나 신고가 접수되면, 학교 당국은 가해·피해 학생을 분리하는 긴급조치를 우선 취한 후 사안을 조사하게 된다. 학교장 자체적으로 해결되는 선에서 마무리되기도 하지만, 학교 조치에 불복한다면 교육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서 다시 사안을 검토해 징계 조치를 내린다. 이마저도 불복한다면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으로 넘어가게 된다.
학교에서 운영되는 학폭위의 조치에 대한 신뢰도가 높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실제로 전문성과 공정성 시비가 계속되고 있다. 학폭위 전담교사가 맡는 사건이 늘면서 피로감도 호소하고 있다. 무엇보다 자녀를 둔 부모들의 강력한 민원으로 모든 교사들이 기피하는 직책이다.
교육청의 경우 산하 학교에서 올라는 사안들을 다루다 보니, 심의 시간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학생부에 기록되는 조치라 할지라도 보통 심의 시간은 1시간 정도로 알려져 있다.
가해자의 회복에도 관심을
또 하나 살펴봐야 할 점은 가해자 역시 피해자라는 사실이 간과된 현실이다. 미성년자인 청소년들이 폭력이라는 범죄를 저질렀다면 상응하는 처벌을 당연히 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피해자 보호에 우선한 가운데 가해 학생들에 대한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현재 시스템에서 빠져 있는 건 바로 회복이다. 13년째 위기 청소년들을 돌보고 있는 위키코리아 대표 임귀복 목사는 “폭력을 저지르는 청소년들도 분명히 피해자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해 위기 상황으로 내몰린 아이들도 있다. 중요한 건 이 아이들이 회복되지 못한다면 결국은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했다.
교육 현장의 교사들의 태도도 고민해볼 부분이다. 학폭 사건이 발생하면 신속하게 학폭위로 넘어가길 바랄 정도라는 한 교사의 증언에 아연실색할 뿐이다. 아이들을 생각해 섣불리 대처하다 오히려 각종 민원과 심지어 소송까지 휘말리는 사례들을 보면서 포기해버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사들의 심리적 포기는 화해로 마무리될 법한 사건마저도 불필요한 징계 조치로 이어지게 한다는 사실이다.
자기 자녀만을 최우선에 두는 일부 학부모들로 인한 심적 고통이 상당하다는 점에서, 교사들의 권리를 보호할 방안도 요청된다. 교사들 역시 엉뚱한 피해자가 되기 때문이다.
학교폭력에 대응하는 시스템의 방향은 가해자 처벌이 아니라 회복에 있어야 한다. 학교폭력예방법 시행령에는 “피해학생·가해학생 및 그 보호자 간의 관계회복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지만 현재는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학교가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할 의지도, 전문성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량을 길러줄 수 있는 대응 방안이 요청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