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성도를 자랑하던 한국교회가 휘청였다. 코로나19라는 모래바람에 교회는 방향을 찾지 못하고 길을 헤맸다. 주일 예배에 모일 수 없게 되자 적지 않은 이들이 신앙에서 멀어졌다. 온라인 예배를 드리기는 했지만 완벽한 대체제가 될 순 없었다. 팬데믹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지금도 교회는 이전과 같은 영광을 되찾지는 못한 모습이다.
코로나에 흔들리지 않은 곳이 없다고는 하지만 유독 교회가 받은 타격은 컸다. 어째서일까. 일주일에 한 번 예배에 참석해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돌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의 전부라 여겼던 분위기의 탓이 크다.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에 길들여졌던 한국교회 성도들은 일상에서 어떻게 신앙인으로, 예수의 제자로 살아가야 하는지 방법을 몰랐다.
핵심은 신앙교육의 부재, 정확히는 제대로 된 신앙교육의 부재다. 여기저기서 제자훈련에 열심이지만 정작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진짜 제자를 찾기는 쉽지 않다.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던 기독교의 신뢰도, 빈자리가 늘어가는 교회학교와 청년부의 현실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열매가 없다면 나무를 살펴봐야 한다. 어쩌면 코로나19 사태를 지나고 다시 모일 수 있게 된 지금이 한국교회의 제자훈련을 해부할 적기일지도 모른다.
가벼워진 ‘제자도’
별생각 없이 계속 쓰다 보면 익숙해지는 단어들이 있다. 반복되는 단어의 홍수에 잠겨있다 보면 본디 그 단어가 품고 있던 무거운 의미와 막중한 책임은 흐려지기 마련이다. 이름조차 일본어로 바꿔야 했던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운동가들에게 ‘대한민국’이라는 단어와, 오늘날 맘껏 자유를 누리며 어디서나 나라의 이름을 마주할 수 있는 우리의 ‘대한민국’은 분명 그 무게가 다를 터. 한국교회에게 있어선 ‘제자’와 ‘제자훈련’이 바로 그런 단어다.
수많은 교회에서 ‘제자’란 단어를 남발하지만 결코 그 뜻은 가볍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겠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며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하는 것’이다. <제자도>를 저술한 존 스토트의 말을 빌리자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는 그분의 말씀을 적당히 취사선택해 쉬운 명령만 복종할 권리가 없다.
그렇게 막중한 책임과 헌신이 뒤따르는 제자를 만들기 위한 제자훈련 역시 가벼울 수 없다. 한국교회에 제자훈련이라는 시스템을 정착시키는데 크게 공헌한 옥한흠 목사는 자신의 저서 <다시 쓰는 평신도를 세운다>에서 “제자훈련의 궁극적인 목적은 간단히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을 본받는 신자의 자아상을 확립하는 것이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예수처럼 되고 예수처럼 살기를 원하는 신앙인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그래서 제자훈련은 무엇보다 사람을 바꾸어 놓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 말씀과 성령의 감화를 가지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고 온전한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렇기에 제대로 된 제자훈련의 결과는 응당 삶의 변화로 나타난다. 청년사역연구소장 이상갑 목사(산본교회 담임)는 “제자훈련의 결과는 열매로 알 수 있다. 이는 결코 교인 수의 증가나 부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편 1편에도 나와있듯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것, 그리고 성도의 삶 속에서 팔복의 영성과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맺히는 것이 진정한 제자훈련의 열매”라고 말했다.
예수 아닌 목회자의 제자
하지만 그에 반해 오늘날의 제자와 제자훈련은 그만큼 무겁지 않다. 적지 않은 교회의 제자훈련이 ‘예수의 제자’가 아닌 ‘교회의 제자’, 혹은 ‘목회자의 제자’를 길러내는 것에 집중한다. 제자훈련을 단지 부흥의 수단으로 삼거나 겉만 번지르르한 프로그램만 가득할 뿐 진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으로 이끄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경우다.
이상갑 목사는 “제자훈련의 목적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작은 예수’를 기르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옥한흠 목사님의 제자훈련은 제대로 계승되지 못했다. 제자훈련을 화려한 프로그램으로만 치장해 예수의 종이 아니라 목회자의 종노릇하게 하려는 교회들이 너무 많다. 그런 제자훈련은 삶에서 열매가 나타나지도 않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제자훈련을 그저 교회에서 봉사할 일꾼을 기르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하는 교회도 있다. 김진규 교수(백석대)는 한국교회의 제자훈련을 비교 분석한 연구에서 “많은 제자훈련이 성도들을 사역을 위한 기능인으로 훈련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지 성도들을 온전한 자로 세우는 데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런 제자훈련을 받은 성도들은 사역에는 열심일지 모르지만 성경과 멀어져 언젠가 좌초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고민 없이 행해지는 제자훈련은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보통 6개월이나 32주 등 단기간 행해지는 제자훈련은 교인들에게 ‘면죄부’를 준다. 마치 제자훈련 과정을 마치고 나면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야 할 모든 의무를 마친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하는 것이다. 그런 제자훈련으로 ‘제자’라는 이름표를 단 성도들은 굳이 가시밭길 제자도를 걸으려 하지 않는다. 평생에 걸쳐 성화돼야 하는 제자의 삶보다 몇 개월의 훈련, 혹은 일주일의 선교 여행이 쉽고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청년 위한 제자훈련 시급해
여태 잘못된 방향의 제자훈련을 지적했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도 있다. 아예 제자훈련과 같은 신앙 양육 프로그램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주로 청년부나 교회학교에서 많이 관찰된다. 요즘 청년들은 어차피 제자훈련에 관심 갖지 않을 거란 생각에 제자훈련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거나 적극적으로 권유하지 않는 교회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청년들이 그렇지만은 않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수많은 청년들이 이단, 사이비에 빠지는 기현상이다. 대부분 이단들은 청년들에게 접근해 성경공부를 하자고 하며 미혹한다. 생각보다 많은 청년들이 그 유혹에 빠져 이단에 발을 들인다. 교회가 청년들은 훈련과 양육, 성경공부에 관심이 없을 거라 단정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다.
이상갑 목사는 “모든 교회 청년부가 제자훈련을 했으면 한다. 교회들이 제자훈련을 하지 않고 성경을 가르치지 않고 훈련시키지 않으니 청년들이 이단에 자꾸 미혹되는 것이다. 그것을 막으려면 제자훈련을 통해 청년들이 복음과 하나님 나라, 성경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제자훈련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생각만큼 호응이 있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자훈련 프로그램을 마련해 청년들을 양육하는 것이 교회와 목회자의 역할이다. 이상갑 목사는 “청년사역을 하면서 처음 제자훈련을 시작했을 때 단 한 명만 신청했다. 하지만 한 명이면 어떤가. 그 한 사람을 붙잡고 제자훈련을 시작했더니 그다음에는 2명, 그다음에는 3명이 참여했다. 그렇게 제자훈련을 받은 청년들은 단 한 명도 교회를 떠난 이가 없다. 숫자에 연연하지 말고 청년들을 살린다는 생각으로 제자훈련을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