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질하지 말라”(출 20:15)
“평생 남의 물건에 손대본 적이 없어!” 도둑질하지 말라는 8계명을 듣고 역정을 내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릴 때 여름날 수박서리의 추억을, 혹은 문방구에서 과자를 훔치다 주인 아주머니에게 혼쭐이 났던 경험을 털어놓는 이들도 있을 듯싶다. 어떤 경우가 됐건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은 지금 자신의 삶과는 거리감이 느껴진다며 고개를 가로 젓는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카페에서 노트북을 올려놓고 화장실에 가도 아무도 훔쳐가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우리나라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암암리에 벌어지는 권력형 비리, 뇌물과 청탁, 투기와 한탕주의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한 것이 그림자 뒤에 감춰진 현실이다. 우리는 과연 8계명 앞에서 당당할 수 있을까. ‘도둑질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오늘날의 관점으로 다시 살펴봤다.
소매치기 없어도 도둑질은 많다
프랑스에 여행을 갔던 친구가 갑자기 연락이 뚝 끊긴 일이 있었다. 며칠이 흘러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던 차에 친구는 생존 소식을 알려왔다. 알고 보니 휴대폰과 소지품을 통째로 소매치기 당해 연락을 할 수 없었던 것. 몸에 붙는 가방에 꽁꽁 숨겨놨음에도 칼로 찢어 내용물을 훔쳐갔다며 친구는 혀를 내둘렀다.
소매치기가 흔한 외국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안심할만한 치안 수준을 갖춘 나라다. 언뜻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을 꽤나 잘 지키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김동호 목사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날마다 기막힌 새벽’에서 “사업을 하며 100만 원짜리 물품을 사고도 150만 원 영수증을 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회사의 물품을 사적으로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기도 한다”면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도둑질하지 말아라’고 얘기하실 것”이라고 지적했다.
생각지 못했던 도둑질은 우리 사회와 일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뉴스에서는 논문 표절로 도마 위에 오른 공직자들, 교수들, 심지어 목사들의 이름이 쉴 새 없이 오르내린다. 횡령과 배임, 탈세는 예삿일이다. 정식 비자를 받지 못한 외국인들에게 제대로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사업가들도 많다. ‘작은 법’을 잘 지킬지는 몰라도 ‘큰 법’을 어기는 것에는 스스럼이 없다.
그런가 하면 노력 없이 큰 재물을 얻으려는 한탕주의도 엄밀한 의미의 도둑질이다. 부동산 투기와 뇌물, 최근 불이 붙은 가상화폐 투기도 8계명의 범주에 들어간다. 더 많이 갖고자 가난한 사람들의 몫을 빼앗는 탐욕 역시 도둑질이라 할 수 있다.
김동호 목사는 “성경에서는 농사를 지을 때 가난한 이들의 몫을 남겨놓으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들을 돌봐야 하는 이유는 불쌍해서가 아니다. 모든 재물은 하나님의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관리하는 청지기이기 때문”이라면서 “가난한 이들의 몫을 우리가 알게 모르게 빼앗는 경우가 많다. 크리스천이 가진 것은 우리의 소유가 아닌 하나님의 것이기에 그것은 도둑질이 된다”고 경고했다.
지적 재산권을 침범하는 것도 8계명을 자주 어기는 사례 중 하나다. 구독문화가 정착되며 조금은 수그러들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인터넷에선 불법 다운로드가 횡행한다. 각종 문화 콘텐츠를 이용하는 교회 역시 여기서 자유롭지 못할 때가 많다.
가장 무서운 점은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말라기 3장 8절은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고 말한다.
도둑질하지 않는 세상 만들기
그렇다면 어떻게 일상 속에서 8계명을 잘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핵심은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고 우리는 맡은 자에 불과하다는 청지기론에 있다. 원래 내 것이어야 한다는 억울함과 가지지 못한 데서 오는 불안, 내 것을 더 늘리고자 하는 탐욕에서 도둑질은 출발하기 때문이다.
장동민 교수(백석대)는 “재물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재물 그 자체가 우리의 생명을 결정하거나 우리 인생의 목적과 소망이 될 수는 없다”면서 “성경은 재물이 많다고 자랑하거나 안심할 것이 아니며, 재물이 부족하다고 불안해할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크리스천이라면 그저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는 것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도둑질 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고민할 필요도 있다. 도둑질 자체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기도 하지만 도둑질이 이뤄지면 그로 인해 고통을 겪는 이들도 함께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상갑 목사는 “8계명은 우리에게 더 아름답고 건강한 세상을 만들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깨우쳐 준다. 나만 생각하지 말고 너와 우리라는 공동체를 생각하라는 것, 공존·공생·공감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라는 뜻이 담겨 있다”면서 “개인의 복만 구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복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있다면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