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드라마의 단골 소재 중 하나는 ‘출생의 비밀’이다. 십 수 년을 양부모의 손에 길러진 자식이 뒤늦게 친부모를 찾아 나서면서 갈등을 겪는 설정은 전형적인 막장의 공식이다. 그러나 단지 극에 재미를 더하려던 각본은 수많은 오해를 양산하며 ‘입양가정’들에게 큰 상처를 줬다. 특히 입양을 ‘자선적인 일’로 여기는 태도나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다’ 등의 공격적인 대사는 그들의 아픈 가슴에 더욱 불을 지폈다.
실제로 2017년 육아정책연구소가 입양부모 272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입양을 결정할 당시 방해 요인으로 ‘사회적 편견에 대한 우려’가 23.3%를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다. 이 같은 어려움은 입양자녀의 연령이 증가해도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해를 거듭할수록 더 다양한 선입견에 시달려해야 했다. 수 없는 고민과 망설임 끝에 입양가정을 꾸렸지만 그들이 겪는 편견의 벽은 오늘도 한없이 높기만 하다.
하나님의 양자 된 그리스도인
지난 2005년과 2007년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두 딸을 입양한 강신욱 목사. 그에게는 이미 아내 최에스더 사모와 낳은 두 아들이 있었다. 자녀가 없는 것도,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부부는 결혼할 때부터 선뜻 입양에 뜻을 모았다. 하나님께 받은 큰 은혜에 보답하겠다는 마음에서다. 이런 부부를 향해 주위에서는 언제나 ‘훌륭하다’ ‘좋은 일 한다’ 등의 칭찬을 쏟아냈다. 그러나 이내 따라붙는 군말들은 부부를 적잖이 힘들게 했다.
강 목사는 “사람들은 우리 부부를 향해 ‘대단하다’면서도, 결국 ‘남의 자식을 어떻게 키우느냐’ ‘굳이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란 물음들로 본심을 내비췄다”며 “입양가정에 대해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게 아닌, 단순 호기심에서 내뱉는 말들에 마음이 불편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하나님도 죄인인 나를 양자 삼아주셨다. 그 무한한 사랑을 입양으로 다시 베풀고 싶었다”면서 “나에게는 자연스러웠던 입양을 특별하게만 바라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웠다”고 고백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강 목사 내외는 입양을 결정한 뒤 무려 1년간 어린 아들들과 함께 기도의 제단을 쌓았다. 자신의 가정에 올 아이와, 그 아이를 키울 수 없었던 형편의 생모를 위해 중보하는 ‘영적 태교’를 한 것이다. 그렇게 눈물의 기도로 어렵사리 얻은 딸들이었지만 주변에서는 색안경 일색이었다. 특히 ‘절대 친자식처럼 못 키운다’ ‘차별대우가 생길 수밖에 없다’ 등의 속 모르는 말들은 그의 가슴에 비수처럼 날아와 꽂혔다.
심지어 교회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루는 수련회에 간 딸이 돌아와 펑펑 울었다. 연유를 묻자 ‘어른들로부터 네 엄마는 가짜라는 말을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날로 딸은 꼬박 1년을 밤마다 눈물로 지새웠다. 강 목사는 “두 딸이 우리 가정에 온 이후로 정작 나는 단 한 번도 ‘입양아’라고 구별 지어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게는 똑 같이 사랑하는 자녀들”이라며 “그런데도 진짜·가짜 부모를 구별하며 수근 대던 무례한 교인들에 엄청난 실망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입양아동, 문제아 아닌 ‘축복’
입양가정을 바라보는 삐딱한 시선은 비단 부모에게만 국한된 건 아니다. 자녀들을 향해서는 무엇보다 ‘버려진 아이들’ ‘딱하다’란 잘못된 이미지가 종종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11남매 중 8남매를 입양한 김순임 사모도 그랬다. 특히 미숙아로 태어난 여섯째를 입양할 당시 김 사모는 “왜 하필 저런 아이를 데려왔느냐”는 막말까지 감수해야 했다. 오죽 마음고생이 심했으면 그는 입양을 결정한 후 걸어온 길이 가시밭길이었다고 표현했다.
김 사모는 “보통 한 가정에 자녀가 둘, 셋이라고 해서 ‘왜 가족계획을 둘, 셋으로 했어요?’라고 묻지 않는다. 그런데 8명을 입양했다고 하면 꼭 놀란 표정으로 그 이유를 묻더라”며 “아기를 낳고 보니 예뻐서 또 낳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한 명 입양해보니 너무 예뻐서 또 입양한 것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입양된 아기들은 불쌍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선물로 보내주신 축복”이라고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고정관념 또한 은연중에 입양자녀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양산한다. 가뜩이나 혈연 중심의 우리 사회에서 입양가정의 아이들은 ‘사춘기에 이르러 입양 사실을 알면 큰 혼란에 빠질 것’ ‘크면 친생부모를 찾아갈 것’이란 걱정을 떠안고 골칫거리로 전락하는 게 예삿일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낙인이 오히려 입양아동들의 건강한 정서 발달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에 김 사모는 일찍부터 자녀들에게 친생부모에 대해 ‘너희를 세상에 보내주신 고마운 분들’이라고 설명해줬다. 그리고 언제라도 만나고 싶다면 도와주겠다며 터놓고 대화를 나눴다. 그는 “누구라도 성장과정에서 삐뚤어질 수 있다. 그런데 입양아만 잠재적 반항아로 몰아가는 건 그릇됐다”며 “설령 언젠가 아이가 진짜 문제를 일으킬지라도 이는 제대로 지도하지 못한 부모의 책임이지 무조건 입양아의 잘못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고 소신을 밝혔다.
공개입양 꺼리는 사회
한편, 다수의 입양가정들은 이 같은 왜곡된 인식이 빚어진 원인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회 분위기를 꼬집었다. 입양으로 장애아동들을 품에 안은 윤정희 사모는 ‘후원 바라는 돈벌이 사업’이란 조롱부터 ‘돈 없을 텐데 파양하라’는 선을 넘는 참견까지 받아봤다. 그는 “성경에도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고 나왔다.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살리는 귀중한 일을 두고, 대개 아이 하나 키우기도 벅찬 현실에 불순한 의도로만 바라보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대중매체가 다루는 입양의 현주소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입양인들이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방황하는 과정을 ‘뿌리 찾기’로 묘사하는가 하면 계모의 학대나 이복형제라는 갈등의 기제는 이제 식상할 정도다. 윤 사모는 “여러 대안가정의 하나로서 입양가정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편안하게 그려줬으면 좋겠다”면서 “그러나 현실은 교회와 학교에서조차 입양가정에 대한 깊은 이해를 담은 교육이 미흡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윤 사모는 조금이나마 건강한 입양문화를 조성하고자 ‘한국기독입양인선교회’를 만들었다. 정기모임들로 서로의 고민과 지혜를 나누는 자조모임 격의 선교회에는 현재 전국 입양가정 262곳이 참여 중이다. 그는 “사회도 바뀌어야겠지만 입양가정 스스로도 상처와 편견을 극복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며 “죄 지은 것 마냥 숨어서 비밀입양을 할 게 아니라 공개입양으로 부모도 자녀도 당당하고 행복한 문화가 정착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연중기획 오해와 이해: 나는 ‘입양가정’의 부모입니다.
저작권자 © 아이굿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