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 휴대 못하지만 전쟁 승패에는 결정적 역할
자살 등 사고 터지면 깊이 관여…중요성 더 커져
스마트폰 허용되면서 활용 방안 놓고 관심 증대
6월은 우리 민족의 비극 6.25가 있는 호국 보훈의 달이다. 특히 올해는 6.25 70년이 되는 해여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그러나 이 땅에서 전쟁이 멈춘 지 70년이 지나고 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들이 점차 세상을 떠나면서 전쟁에 대한 긴장감도 부쩍 낮아지고 있다. 이와 함께 군과 군종장교들의 존재가치 또한 흐릿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연중기획 ‘오해와 이해’, 이번 편에서는 ‘군인과 목사 사이’ 군종장교들을 만나봤다.
군종장교가 필요해?
군인의 존재가치를 말할 때 전쟁은 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전쟁이 없다고 군이 필요 없는가 하면 그 또한 정답은 아니다. 군종장교로 20년을 근무하고 소령으로 만기 전역한 A 목사는 이 질문에 대해 “군의 존재 이유는 첫째가 전쟁을 하지 않기 위함”이라고 딱 잘라 말한다. 그러나 A 목사는 또 “군이 존재해야 할 첫 번째 목표인 ‘전쟁 억제’가 달성되지 않았을 때 패하지 않고 반드시 이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군대”라고 답했다.
A 목사는 “싸워서 이기려면 군인이 생명을 내놓고 용감하게 나가야 한다”며 “계급이 높다고 죽음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생사화복은 오직 ‘하나님’께 달렸다. 자연히 전장에서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존재가 하나님”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역 시절 특전사 강화훈련을 가보면 불교신자도 ‘목사님 왜 이제 오시냐’며 반기더라”며 “그 말은 위험이 있는 곳에서 군종장교의 존재가 더욱 빛을 발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베트남 전쟁사에 나오는 성공적인 고지탈환작전 사례를 소개하며 신앙의 힘과 군종장교의 가치를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월남전 당시 한국군이 대성공한 작전이 있습니다. 당시 신우회원들로만 소대를 구성하고 군종장교가 뒤 쫓아가며 작전을 수행했다고 합니다. 월남전에 다녀온 선배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전시상황에서는 우람하고 목소리 큰 사람들은 쏙 들어가고 투철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용맹했다고 합니다. 전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사생관’ 확립이기 때문이죠. 사생관은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여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군종장교입니다.”
군종장교는 편한 보직?
그러나 군종장교는 비전투요원으로 분류된다. 총기를 휴대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1864년 체결된 제네바협약에 따르면 군종장교는 ‘의무요원’과 더불어 공격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보호된다. 반면 적대행위에 가담할 수 없고 이에 가담한 경우 보호받을 지위를 상실한다. 일부 국가에서 자위를 위해 군종장교가 무장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군은 미국이나 영국처럼 군종장교의 무기 휴대를 원천적으로 금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야전 훈련도 일반 병과와 비교하면 조촐하다. 일부 목사들이 일반 장교들보다 열정적인 태도로 훈련에 임하고 월등한 기량을 보여서 타 군종장교와 일반 장교들에게 ‘눈총’을 받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특수한 사례라는 게 다수의 군종장교들의 이야기다. 경기도에서 사역 중인 B목사는 훈련을 떠나 군종장교는 절대 편한 보직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군종장교는 군인인 동시에 목사입니다. 이 말은 목사로서 요구되는 의무는 물론이고 군인으로서 갖출 역량 양쪽을 다 갖춰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목사로서 새벽기도와 수요예배, 금요심야기도, 주일 오전 예배와 오후 예배를 다 주관합니다. 훈련 시에는 야전에서도 예배와 기도회를 인도합니다. 부대 내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군종장교는 목사로서 상당히 깊게 관여하게 됩니다. 이밖에 참모(지휘관을 도와 업무를 맡아보는 장교)로서 요구되는 업무도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교육과 상담, 회의, 대민업무까지 몸이 여러 개여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또 다른 군종장교인 C 목사는 “편한 곳도 있고 죽을 만큼 힘든 곳도 있다”며 “가령 해안초소나 전방초소가 포함된 부대의 경우, 위문 한 번 하려면 몇 십 km를 걸어야 할 때도 있다. 목사와 군인이라는 두 가지 책임을 잘 해내기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A 목사는 또 다른 시각에서 군종장교 시절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그는 “참모로서 지휘관을 모시는 업무에 충실한 이들 가운데 목사라는 정체성이 흔들리는 경우를 종종 봤다”면서 “회식 자리에 앉아서 목사로서 다른 참모들처럼 지휘관에게 잘 보이려고 아부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목사랍시고 너무 딱딱하게 굴거나 정죄해서도 안 된다. 많은 군종장교들이 남들 앞에서 목사와 군인 중 어디에 더 무게를 둘 것인가를 놓고 갈등한다”고 말했다.
진중세례의 아이러니
진중세례는 군종장교 사역의 열매 가운데 중요한 요소다. 보통 진중세례라고 하면 신병훈련소를 떠올리지만 자대 배치 후에도 많은 장병들이 세례를 받는다. 속칭 ‘이삭줍기’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사역이다.
군종장교들마다 이삭줍기에 대한 생각이 제각각이었다. C 목사는 “단순히 몇 명에게 세례를 베풀었다는 식의 사역 보고가 이뤄지는데, 이는 군 선교를 숫자로 치환시키는 경향이 있다”며 “사역의 과정으로서 세례가 이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을 결과로 바라보는 것은 고쳐나가야 할 과제”라고 진단했다.
B 목사는 최근의 변화들을 언급하면서 “저희 교회만 해도 세례뿐 아니라 양육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진행한다”며 “일과가 없는 토요일에는 군종병과 새신자들을 교회로 초청해 모임도 갖고 식사를 나눈다. ‘군선교=세례’라는 등식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 목회자 가운데 가장 베테랑이자 전역 후에도 군 교회에서 사역을 이어가고 있는 A 목사는 “군종장교들은 전시에 죽어가는 용사들에게 세례를 줄 수 있도록 야전키트를 소지하고 있다”며 “전시라는 생각을 하면 이해가 쉬워진다. 현재 우리나라는 휴전 중이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장병들은 군 생활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고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찾는다. 그때 세례를 주는 것을 나쁘게만 볼 수는 없다. 신앙고백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세례를 베푸는 일은 없다”고 했다. A 목사는 세례교육이 빈약하다는 지적과 관련해 “6개월씩 영세교육을 하는 천주교의 사례와 비교하기는 어렵다”며 “그렇다고 해서 민간 교회의 세례자 교육이 천주교회 영세교육에 버금갈 만큼 큰소리 칠 상황도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10년 전만 해도 3개월에 한 번, 최소 20명씩은 세례를 줬는데 지금은 그 수가 많이 줄었다. 그 배경에는 장병들의 군 생활이 줄어든 것과 개인주의의 확산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며 “확실한 점은 군선교의 환경이 갈수록 척박해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폰과 코로나
군선교 환경의 최대 적으로 지목됐던 장병들의 스마트폰 사용에 대해서는 의외로 세 명의 목회자 모두 “나쁜 것만은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명암이 있다는 것. B 목사는 “코로나가 터지기 1년 전에 스마트폰이 허용됐다. 당시에는 장애물로만 여겨졌지만 코로나가 터진 후에 어쩌면 이것이 하나님의 예비하심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부활절 당시 한국기독교군선교연합회와 한국군종목사단 등 군선교단체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군대에서 조차 모이는 예배가 어려울 때 온라인을 통해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렸고, 많은 장병들이 여기 참여할 수 있었다.
대대나 중대급 단위에서도 스마트폰은 코로나를 헤쳐가는 강력한 도구였다. C 목사는 “군의 특성상 보안에 신경을 써야 해서 여러 단계를 거쳐 보안성 검토를 받아야 하는 등 어려움도 있었지만 많은 군종장교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온라인 예배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라며 “이제는 군종장교들이 스마트폰을 새로운 사역의 도구로 인식하고 어떻게 활용할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손동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