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 캠퍼스에 봄이 찾아왔지만, 청년들의 마음은 무겁다. 주거비와 식비 등 실생활과 밀접한 물가가 뜀박질 하면서 특별히 소득이 적거나 전혀 없는 대학생은 더 큰 타격을 입기 때문. 전문가들은 “청년층의 체감경제고통지수는 전 연령대 중 가장 높다”고 입을 모은다.

얄팍해진 주머니 사정에 이들이 제일 먼저 줄인 지출 항목은 밥값이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가 작년 대학생 2,07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결과, 1위는 ‘식비’(77.2%)란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일상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식비가 부담이란 건, 이미 다른 소비는 줄일 만큼 줄였다는 뜻이다. 집값 폭등으로 청년들의 주거 불안 또한 높아져 거처를 마련하는 일도 하늘의 별 따기다. 개강 후 학업을 뒤로한 채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든 청년들의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다.

그런데, 재정적 어려움에 봉착한 청춘들을 위해 ‘구원투수’로 나선 교회와 기독단체가 있어 눈길을 끈다. 이들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빚의 굴레에 갇힌 대학생들에게 ‘숙식’을 지원하며, 실질적인 필요를 채워줄 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고 있다.

속 타는 청년들…‘월세 걱정’ 던다

서울 송파구 마천동에 위치한 창조교회(담임목사:전상업). 근처 40분 거리 이내 세종대·시립대·건국대·한양대 등 주요 대학 열 곳이 포진한 교회는 ‘창조학사’란 이름의 ‘학사관’을 운영 중이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청년들이 대학에 합격해 등록금까지 완납했지만 숙식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안타깝게 여겨 시작한 사역이 올해로 25년째다.

2013년부터는 다세대주택을 매입해 학사관을 꾸려온 창조교회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20~30명의 청년들에게 보증금 없이 월세 25~30만원에 따뜻한 보금자리를 내준다. 인근 자취방들의 임대료가 평균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0만원을 상회하는 걸 감안하면, 무척 저렴하다. 세탁실·샤워실·주방을 비롯해 인터넷과 냉난방까지 꼭 필요한 제반시설도 모두 갖췄다.

이목을 끄는 대목은 하루 세 끼 식사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점. 이곳에 입소한 학생들은 끼니 때마다 식당에 한식뷔페처럼 차려진 밥과 반찬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 요리는 창조교회 전상업 담임목사의 사모를 비롯해 선뜻 자원봉사에 나선 성도들이 수고해주고 있다.

창조교회 전상업 담임목사는 “우리 학사관은 ‘가정집’을 연상시키는 따뜻하고 정감 넘치는 분위기가 자랑”이라며 “타지에서 끼니를 쉽게 거를 수 있는 걸 잘 아는 장년층 성도들이 ‘내 자녀를 먹인다’는 마음으로 집밥처럼 맛있는 식사를 직접 만들어 대접한다”고 전했다.

창조학사관 지원 및 이용 조건은 의외로 간단하다. 교단을 초월해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가능하다. 대신 창조교회 주일예배에 출석할 의무가 따른다. 아울러 음주·흡연 금지 등 간단한 수칙만 지키면 될 뿐 큰 제약은 없다. 자연스레 학생들은 건강한 신앙 커뮤니티를 형성, 자녀를 홀로 상경시킨 부모들은 안심하며 호평을 쏟아낸다.

전 목사는 “학사생들은 지역 부활절 연합예배를 섬기기도 하고, 연말연시에는 독거노인을 찾아 생필품을 전달하는 등 여러 활동들로 교회 안팎의 사역에 동참해왔다”며 “학사관에서 이뤄지는 식탁교제와 교회생활을 통해 청년들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다. 여담이지만 이곳에서 만나 결혼한 부부도 있다”고 귀띔했다.

그동안 창조학사관을 거쳐간 학생들은 무려 800여명. 전 목사는 “졸업 후 공무원과 법조원 혹은 교사 등 사회 각계각층에 진출해 꿈을 펼쳐가는 청년들을 볼 때 가장 보람되고 뿌듯하다”며 “학사관을 거쳐간 선배들이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후원에 동참하는가 하면, 매년 ‘홈커밍데이’ 행사에 초대돼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사관 사역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더욱이 형편이 넉넉지 않은 지역교회들이 적자 운영을 감당하기란 녹록하지 않다. 심지어 창조교회는 한때 세금 폭탄을 맞기도 했다.

전 목사는 “청년들의 간절한 요구를 충족시키는 일은 교회의 당연한 사명이다. 교회는 위기에 봉착한 청년들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돼줘야 한다”며 “삶이 팍팍한 청년들을 실제적으로 돕는 것이 곧 복음을 전하는 길”이라고 소신을 밝혔다.

현재 서울에는 창조교회처럼 학사관을 운영하는 교회들이 20여곳에 이른다. 월 평균 10~20만원 선에서 이용 가능하며, 소정의 관리비만 내고 식사까지 제공받을 수 있다. 시골 농어촌·미자립 교회 목회자나 선교사 자녀에게 입소 우선권을 부여하는 곳도 있다. 신학기를 맞아 모집이 이뤄지며, 결원이 발생할 경우 연중 수시로 충원한다.

대학 기숙사 경쟁률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전세대출금리 상승 등 이중고에 허덕이는 청년들에게 숙소와 식사를 함께 지원하는 교회 학사관은 정서적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2018년부터 6년간 서울영동교회 학사관에서 둥지를 틀고 식비를 함께 지원받은 최주언(26·여) 씨는 올해 취업에 성공하면서 방을 비우게 됐다. 그는 “스무 살에 연고도 없이 상경해 막막했던 나에게 학사관 식구들은 또 하나의 ‘가족’이었다. 학업과 진로, 신앙 등 삶의 고민을 깊이 나눌 동역자들이 없었다면 홀로 방황했을 것 같다”며 “앞으로 교회에서 받은 사랑을 세상의 이웃에게 보답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감사를 고백했다.
 

 

식비 해결…‘미래 투자’ 여유 생겨

허리띠를 힘껏 졸라맨 대학생들을 위해 2013년부터 무료로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교회도 있다. 11년째 ‘새벽만나’ 사역을 진행해온 서울성복중앙교회(담임목사:권오헌)가 주인공이다.

매일 아침 이곳 풍경은 굉장히 분주하다. 오전 7시 문을 여는 식당에 자원봉사자인 성도들은 새벽 3~4시부터 나와 장을 보고 밥을 짓는다. 방학을 제외한 2~6월, 9~12월 운영되는 식당에는 하루 평균 60~70명의 청년들이 방문해 든든한 한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인근 대학 자취생들의 식비 부담을 덜어줄 취지로 기획됐다는 새벽만나 담당 김문진 목사는 “많게는 하루 100명까지 올 만큼 인기가 뜨겁다”며 “배고픈 대학생부터 공무원 시험이나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 사회 초년생들까지도 발걸음한다”고 했다.

교회가 섬기는 무료 식사지만 퀄리티는 상당하다. 오죽하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맛집’으로 소문이 났다. 그도 그럴 것이 카레, 오므라이스 등 다양한 메뉴는 기본이고 따뜻한 국과 고기반찬, 과일에 샐러드까지 여느 솜씨 좋은 전문 식당을 방불케 한다.

교회 예산에 외부 후원이 더해져 새벽만나를 이끌고 있다는 김문진 목사는 “‘영양적으로 균형 잡힌 식사 제공’과 ‘국산 먹거리 사용’의 원칙을 반드시 준수하고 있다. 아침마다 100인분이란 대용량의 음식을 조리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제대로 섬기자’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문진 목사는 “우리 교회는 청년들의 필요를 채우는 일에 집중한다. 그 일환으로 ‘청년희년기금’을 마련,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눠 소정의 주거비도 지원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한편, 취약계층 대학생들을 위한 ‘식비 지원 사업’도 관심을 모은다. 기독교NGO 희망친구 기아대책(회장:유원식)은 2017년부터 ‘청년 도시락’ 캠페인을 전개해오고 있다. 중위소득 150% 이하 대학생 100명을 선정해 한 학기 1인당 40만원 상당의 식사비를 지원하는 게 골자다.

지금까지 1,000명이 넘는 대학생들에게 4억원가량이 전해졌으며, 매년 지원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올해는 학기당 200명에게 40만원씩 지원한다.

캠페인에 참여했던 박하민(가명) 학생은 “요즘 굶어 죽는 사람 없다고 하지만, 대학에 입학하면서 적은 돈으로 월세, 관리비, 교통비, 통신비, 전공서적비 등을 해결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식비를 포기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청년도시락은 ‘키다리 아저씨’ 같았다. 식비 문제가 해결되니 자기계발과 공부 시간을 더 확보할 수 있었고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며 “이 은혜를 잊지 않고 훗날 꼭 꿈을 이루어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기아대책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청년가장 등에게 식사비를 지원하는 일은 물질적 도움에서 나아가 정서적 고립을 막는 길이다. 지출 부담이 커질수록 외부 활동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라며 “다음세대의 미래에 투자하는 사역에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