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주의’(scientism)는 ‘자연주의’나 ‘과학적 유물론’ 또는 ‘세속적 휴머니즘’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모든 주의와 마찬가지로 과학주의 역시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과학이 우리가 알 수 있는 모든 지식을 제공한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과학주의에 따르면 “세상에는 오직 한 가지 실재 즉 자연 밖에 없으며, 과학은 우리가 자연에 대해 갖는 지식에 독점적인 권한을 가진다.” 종교가 제시하는 소위 초자연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은 실제로는 ‘사이비 지식,’ 즉 존재하지 않는 허구에 대한 거짓된 인상만을 제공할 뿐이라는 것이다.
과학주의의 대표적인 주장은 나폴레옹 황제 앞에서 자신의 우주론을 설명한 다음 “왜 당신의 우주론에는 뉴턴의 우주론과는 달리 하나님이 없느냐?”라는 나폴레옹의 질문에 “폐하, 저는 그 가설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던 라플라스(Pierre Simon Laplace, 1749~1826)의 말에 잘 나타나 있다.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1942~2018)과 칼 세이건(Carl Sagan, 1934~1996)은 이구동성으로 우주는 존재하는 또는 존재했던 또는 앞으로 존재할 모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우주는 시간적으로 자기 충족적이며 그리하여 창조주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으며 이런 주장에 근거하여 칼 세이건은 ‘신의 부재’를 자신있게 선언하기까지 하였다.
때로 과학 제국주의(scientific imperialism)는 과학주의와 함께 묶여 설명되기도 한다. 하지만 과학주의와 별도로 과학 제국주의 항목을 구별하기도 한다. “과학주의가 무신론적인 반면, 과학 제국주의는 신적인 어떤 것의 존재를 인정한다. 하지만 신적 존재에 대한 지식은 종교적 계시가 아닌 과학적 연구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학 제국주의는 과학주의와는 달리 적을 섬멸하려 하기 보다는 이제껏 신학이 점령했던 영역을 정복해서 이를 자신의 영역이라고 주장하려 한다. 폴 데이비스(Paul Davies, 1946~ )는 “색다른 주장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과학은 신에게 접근하는 길을 종교보다 더 확실하게 제시해준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스티븐 호킹은 신이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하기는 하지만 물리학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기 위해 신적인 이미지나 신학적 용어를 계속해서 사용한다. 스티븐 호킹은 “두 가지를 동시에 원하는 듯하다. 그는 신을 우주 바깥으로 완전히 추방해 버리면서 동시에 신을 자신의 작업을 위한 지속적인 하위 맥락으로서 불러들인다.” 말하자면 스티븐 호킹은 과학자가 자연법칙을 알게 됨으로써 ‘신의 마음’(the mind of God)을 알게 된다고 보고 있다. 그의 유명한 <시간의 역사>(A Brief History of Time: From the Big Bang to Black Holes, 1988)의 마지막 문장에서 호킹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시간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냈다면 그것은 인간 이성의 최종적인 승리가 될 것이다 - 왜냐하면 그때 비로소 우리는 신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 마지막 문장에 나오는 “하나님이라는 지성” (the mind of God) 또는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표현을 차용하여 폴 데이비스는 1993년 The Mind of God (New York: Simon & Schuster, 1993)이라는 책을 썼고 이 책은 1995년 비교적 젊은 나이에 폴 데이비스가 템플턴 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가져다주었다.
폴 데이비스는 원래 무신론자였는데 물리학을 연구하는 가운데 유신론자가 되었으며 1983년 <신과 새로운 물리학>(God and the New Physics)이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은 <현대물리학이 발견한 창조주>(정신세계사, 2000)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다. 하지만 아직 아쉬운 것은 데이비스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존 폴킹혼(John Polkinghorne, 1930~2021)은 세계적인 물리학자로서의 경력을 이어가다가 신학을 공부하고 1982년 성공회 신부가 된 사람이다. <과학으로 신학하기>(Theology in the Context of Science, 2008년)라는 책에서 폴킹혼은 탁월한 이론물리학자이자 완고한 무신론자인 스티븐 와인버그(Steven Weinberg, 1933~2021)가 현 세계가 종국에는 덧없이 끝날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우주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할수록 우주는 무의미한 것 같다는 생각 또한 커진다는 유명한 말을 했음을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런 “무자비한 자연주의가 말하는 수평적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신학은 해야 할 말이 더 있다.… 종말론적 희망이 전하는 소식은, 세계는 지금부터 영원까지 의미가 있다는 점이다”
박찬호 교수의 목회현장에 꼭 필요한 조직신학 (47)과학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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