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천하의 대세란 오랫동안 나뉘면 반드시 합하게 되고, 오랫동안 합쳐져 있다면 반드시 나뉘게 된다.” 불멸의 고전 삼국지연의의 첫 문장은 수천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시대를 관통한다. 평화가 지속되면 반드시 난세의 피바람이 불었고 혼란 이후엔 끝끝내 치세가 이루어졌다. 넘실대는 파도처럼, 오르막과 내리막을 거듭하는 고갯길처럼 인류의 역사는 난세와 치세가 반복돼왔다.
문득 인류사 만고불변의 진리를 교회사에도 대입해 본다. 신앙을 가졌단 이유만으로 죽음까지도 각오해야 했던 시기가 난세라면 기독교가 주류가 되어 크리스텐덤 사회로까지 일컬어졌던 부흥기는 치세다. 권력과 전쟁의 역사와 크게 다를 바 없이 교회사 역시도 난세와 치세의 파도를 넘나들었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무엇이라 정의할 것인가.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면 아무래도 치세 쪽이다. 적어도 한국교회로 범위를 좁힌다면 십중팔구는 그리 대답할 공산이 크다. 최근 개신교는 종교 인구 통계에서 불교를 제치고 종교인구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이전부터도 사실상 대외적인 영향력으로 보자면 한국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집단으로 평가됐다.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대형교회들이 즐비하고 도시의 야경은 빨간 십자가가 수놓는다. 이를 치세라 부르지 않는다면 어느 시기를 평온하다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구태여 지금을 난세라 불러야겠다. 화려한 교회 건물의 영광 뒤에 감춰진 속을 들여다볼수록 더욱 그렇다. 종교인구 1위라는 허울 뒤에 감춰진 진실은 사상 처음으로 비종교인구가 종교인구를 넘어섰다는 사실이고, 코로나 시기 추락한 신뢰도는 반등의 기미를 찾아보기 어렵다. 교회에서는 투기 정보가 돌고 목사·장로 직분에 수백, 수천이 오간다. 덩치만 커져 버린 교회의 모습에서 진정한 제자도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곧 삼일절을 맞는다. 3.1 운동 당시 일제 강점기는 신앙에 목숨까지 걸어야 했던 난세였지만 그때의 교회는 다른 어떤 시기보다도 빛났다. 난세와 치세의 순환을 말했던 삼국지연의는 영웅의 탄생기로 이어진다. 이제 난세의 한국교회에 영웅이 등장할 때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순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심하는, 손해와 불편을 감수하면서라도 제자도를 실천하리라 다짐하는 진짜 영웅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