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부터 노년에 이르는 생애주기별 사회 현안 진단
한국사회의 부정적 ‘사회 지표’ 기반으로 대안 모색
“생명 문화 꽃피우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현장 제시”
핀란드에는 ‘보편적 복지’의 상징인 베이비박스가 있다. 유기 아동을 보호하려는 우리나라의 ‘베이비박스’ 개념이 아니다. 핀란드 정부는 임신한 모든 여성에게 ‘베이비박스’를 지급하고 아기 옷부터 기저귀, 장난감, 목욕용품 등 각종 육아용품을 지원한다.
놀라운 점은 정부로부터 베이비박스를 받은 산모는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모두 같은 물건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아기의 경제적 배경과 상관없이 모든 아이의 출발점은 같아야 한다는 철학이 녹아있다. ‘요람에서부터 무덤까지’ 생명을 보호하려는 핀란드 정부의 노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가장 안전해야 할 요람에서부터 생명이 위태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최저 출산국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으면서도 지난해 낙태율은 OECD 국가 중 1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3분기 합계출산율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국가 소멸론이 등장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이에 맞물려 한국사회의 고령화도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상징인 ‘58년생 개띠’가 올해 노년 세대로 편입되면서 노인인구 1천만명 시대가 도래했지만, 노인빈곤율은 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자살은 전 연령과 세대를 아우르는 심각한 사회 문제다. 우리나라는 19년째 부동의 자살률 1위를 이어가고 있으며, 한 해 1만 3천 명에 이르는 사람이 자살로 생을 마친다.
생명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요람부터 무덤까지’ 이어져야 한다. 어렵사리 얻은 생명을 지켜가기 위해서는 생애 전반에 이르기까지 생명을 보살피고 아우르는 노력이 요청된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들에겐 영원한 생명의 시작임을 알려야 한다.
본지는 앞으로 1년 동안 우리 사회를 어둡게 만드는 다양한 죽음의 이슈를 분석하고, 이를 생명으로 바꾸어 가는 교회와 크리스천들의 노력을 담아낼 예정이다. ‘생명의 씨앗’이라 할 수 있는 뱃속의 태아부터 ‘백세시대’를 살아가는 노년에 이르기까지 생애주기에 따라 생명을 위협하는 다양한 사회 현안을 분석해 나갈 것이다.
또 생명을 지키기 위해 발 벗고 뛰고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단체, 교회 현장을 대안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올해 우리 사회에 드리운 죽음의 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바꿔나가는 여정에 독자들을 초대한다.
‘생명의 씨앗’ 보듬는 일부터 시작
전 세계 출산율 꼴찌라는 국가적 오명 속에 우리나라 낙태율은 OECD 1위를 기록할 만큼 심각한 수준이다. 대한산부인과 의사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우리나라 낙태 건수는 하루 3,000건으로 1년 약 110만 건에 달했다. 정부가 다양한 출산 장려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왜 이토록 많은 낙태가 발생하고 있는지 진단해볼 필요가 있다.
태어날 아이들 못지않게 지켜야 하는 생명은 세상에 이미 ‘태어난’ 아이들이다.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아동학대 사망 사건은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지난해 6월 출생신고도 되지 않은 영아의 시신 2구가 수원의 아파트 냉장고에 발견되면서 이른바 ‘그림자 아동’이라고 불리는 미신고 출생 아동에 대한 전수조사가 뒤늦게 시작됐다.
충격적인 것은 확인 대상 아동 2,123명 중 249명에 달하는 11%가 사망으로 확인됐다는 것이다. 매년 출산율 최저를 갱신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서 ‘보살핌’을 받지 못해 꺼져가는 생명을 조명한다.
‘학교폭력·입시경쟁’에 내몰린 청소년
10대 청소년의 경우 성적 문제나 왕따, 학교폭력 등으로 심각한 우울 증세에 시달리고, 자살을 선택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자해나 자살을 시도하는 10대 청소년들은 최근 10년 새 3배 가까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10대 정신질환 진료 인원은 2018년 13만 7천여 명에서 지난해 20만 명으로, 50%가 넘게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아동전문가는 우리나라 청소년의 경우 일찍부터 과도한 입시경쟁에 내몰리면서 우울증과 불안, 강박증에 시달리게 된다고 진단한다.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청소년들의 집단 괴롭힘이나 학교폭력 문제는 사이버 공간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2022년 사이버 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10명 가운데 4명은 사이버 폭력을 직접 저질렀거나 당해봤다고 답했다. 특히 사이버 공간에서 퍼붓는 언어폭력과 지탄은 한 개인을 무참히 파괴하는 ‘인격 살인’을 이끌 수 있다는 점에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주제다.
생존경쟁 내몰린 ‘N포세대’ 청년
‘N포세대’라는 말이 2030 청년의 수식어가 됐다. 연애와 결혼, 출산, 주택 구입 등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요즘 청년들을 일컫는 말이다. 현 청년들은 불안정한 일자리와 낮은 임금, 극심한 경쟁에 시달리며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대표적인 세대로 거론된다. 이러한 청년들의 현실적 문제는 ‘역대 최저 혼인율’과 ‘역대 최저 출산율’의 사회 지표와도 맞닿아있다.
청년세대의 갈등과 분열도 날로 첨예해지고 있다. 임금 격차와 고용 기회, 가사노동 분담, 성희롱과 성폭력 등 다양한 사회 경제, 정치 영역의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젠더 간 갈등으로 표출되고 있다. 이렇듯 청년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적대시하는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현 사회적 실태, 부동산 가격의 급등으로 인한 사회적 박탈, 코로나 사태 이후 실업률 증가 등의 문제로 ‘생존경쟁’에 내몰렸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전 연령이 빠진 ‘자살의 늪’
국민의 정신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지난해 우울증 환자가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확인된 것. 지난해 12월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2년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가 100만744명에 달했다. 우울증 증가 추세와 함께 자살 사망자 수도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 ‘2022 사망원인 통계’에서는 자살자 수가 1만2,906명인 것으로 조사됐으며, 인구 10만명 당 자살률은 25.2명이었다. 특히 중년 남성의 자살 문제가 심각하다. 2022년 자살자의 30%, 고독사의 50%가 50~60대 남성이었으며, 코로나19 이후 잠시 감소했던 중장년 남성들의 자살률이 다시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모양새다. 1인 가구 증가 속에 은퇴 이후 경제력 상실 등에 대한 우울감, 이혼 등으로 인한 가족관계 단절 등이 주된 위험 요소로 대두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어디에
노인인구의 비중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노인이 행복하지 않은 나라’가 될 확률이 높다.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40.4%로 OECD 평균인 15%를 훨씬 웃돌며,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60대 이상의 우울감은 매우 높은 수준이며, 자살률도 매우 심각하다.
우리나라의 인구 10만 명당 노인 자살률은 46.6명이며, OECD 평균 17.2명보다 3배 가까이 높다. 2021년 보건복지부 ‘2020 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이 자살을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건강’(23.7%), ‘경제적 어려움’(23.7%)으로 빈곤 문제와 큰 연관성을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생계를 위해 폐지를 줍는 노인은 전국 4만 2,000명에 달하며, 이들의 한 달 수입은 15만9,000원에 불과하다. 노년의 시기를 가난하고 외롭게 보내다 쓸쓸히 ‘고독사’로 생을 마감하는 노인을 위한 돌봄도 절실한 상황이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 전파해야
희망적인 소식은 사회 곳곳에 드리운 죽음의 문화를 넘어 생명을 수호하기 위한 움직임이 교계를 중심으로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생명을 경시하는 사회의 풍조 속에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생명을 살리는 일을 계속해나가야 한다.
목회자들이 강단에서부터 생명운동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그리스도인을 중심으로 진정한 회개와 생명사랑운동이 전개되어야 한다.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라이프호프(대표:조성돈 교수)는 생명문화 확산을 위해 매년 9월 10일 세계자살의예방의날을 전후해 한국교회가 ‘새명보듬주일’을 지킬 것을 독려하고 있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생명사랑운동을 벌이는 기독교 단체와 그리스도인들이 이 사회의 ‘희망’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