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고 본 바를 행하라
빌립보서 4:9
찬송: 204장
엄격히 구분하자면 선생은 학교에서 문자나 학문을 주로 가르친다면 스승은 도덕가나 종교가에서 인간의 도리나 도의 이치와 원리를 주로 가르치는 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스승이란? 가르쳐 올바르게 이끌어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마 8:19).
사도바울은 이방인의 스승으로서 말합니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빌 4:9) 사도 바울과 같은 영적인 스승은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먼저 영생을 얻는 길을 가르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죽음, 부활, 재림에 대한 것과 이 사실을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얻는 길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위의 사실을 믿는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칩니다. 마지막으로 사단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을 가르칩니다. 우리 주변에는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억지로 푸는 이단들이 많이 있습니다.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말씀을 습득하고 믿고 전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자신도 주변의 사람들도 이단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의 가르침을 통해 받은 것과 그와의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받은 것, 그리고 그의 말씀을 듣고 그의 생활을 직접 관찰함으로써 깨달은 모든 것을 본받아 행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믿음의 말씀대로 살아가며 믿음으로 전하게 하옵소서.
좋은 것으로 심어야 한다
갈라디아서 6:6~10
찬송: 496장
어느 잡지에 실렸던 영국의 어느 제과업자 이야기입니다. 그는 빵을 만들어 지역 사람들에게 팔고 있었습니다. 그 업체에 매일 버터를 공급하는 가난한 농부가 있었는데 하루는 제빵공장 사장이 버터의 양을 자세히 보니 전보다는 줄어 있는 것을 보고 저울에 달아 보니 1파운드에 모자라는 것을 확인을 하고는 버터 납품 업자에게 변상을 요구하며 경찰에 고발을 했습니다. 결국은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무죄 판결을 받게 되었습니다. 판사의 판결은 버터를 납품하는 가난한 농부를 심문해 본 결과 가난한 농부는 저울이 없어 제과 업체에서 판매하는 1파운드짜리 빵을 사서는 그 빵과 버터를 똑같이 잘라 납품을 했다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제과 업체 사장이 이윤을 남기려고 빵의 양을 줄였던 것입니다. 누구의 잘못일까요?
우리도 우리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비난을 뿌리는 자는 비난을 거두고 거짓을 뿌리는 자는 거짓을 거두고 헐뜯고 다니는 자들은 결국 그대로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좋은 것으로 심어야 하는 것입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으면 그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둘 것이고 성령으로 심으면 영생을 거두게 됩니다. 본문 7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속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의 기도
성령으로 심어 영생을 거두는 삶이 되게 하소서.
마음을 즐겁게
잠언 15:13
찬송: 458장
하나님은 인간의 건강이 마음의 즐거움에서 온다는 것, 각종 질병은 상한 심령에서 기인 된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질병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은 의학과 대체의학에 의존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치료는 완치가 목표인데 적정수준 유지를 목표로 삼는 경향도 많습니다. 이제 우리는 치료를 위해 하나님 말씀을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이 얼굴을 빛나게 한다 했습니다. ‘마음의 즐거움’이 건강을 준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치료에 방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근심이 가득한 마음을 방치하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치료하는 행위는 중요한 한 가지를 빼먹고 치료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이제 건강을 위해 우리 마음에 즐거움을 채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현명한 사람은 자신과 타인의 마음에 즐거움을 채우기 위해 노력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관리하는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합니다. 그래서 그 마음에 말씀을 가득 채웁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응답의 기쁨을 그 마음에 가득 채웁니다. 특히 그 마음에 즐거움을 그리스도와 성령의 역사로 채우는 사람은 큰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 마음에 즐거움을 가득 채우는 일은 놀라운 은혜요 축복입니다.
•오늘의 기도
아버지! 우리 마음에 하나님 은혜로 인한 즐거움으로 가득 채워 주세요.
그리스도의 참 마음
역대상 11:18~19
찬송: 521장
이스라엘 1대왕 사울은 하나님께 선택받았으나 선한 마음을 버리고 악한 마음을 가지므로 하나님께 버림을 받습니다. 이어 2대왕 다윗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왕권을 계승하고 하나님 부름받은 은혜를 특별히 입은 자였습니다.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을까요? 다윗의 마음은 첫째 하나님을 늘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첫 번째로 세우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왕이 되어 나라가 점점 강성하였으나 블레셋이 점령한 고향에서 어릴 적 먹던 물이 그리웠습니다. 충신 세명은 목숨 걸고 블레셋 군대를 돌파하여 물을 길어 왔습니다.(17절) 그러나 다윗은 소원하였던 가장 귀한 것을 마시지 않고 하나님께 주저없이 부어드렸습니다.(18절) 다윗이 시편 23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고백한 것처럼 우리도 예수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이루어주신다는 말씀을 붙잡고 세상에 어떠한 문제와 어려움과 유혹이 오더라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반석 위에 집을 짓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길 축원합니다.
둘째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사랑의 기본은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입니다. 고넬료는 로마군대의 백부장으로 당대 의인이라 인정받고 명예가 있는 자임에도 당시 예수님을 전하는 수배자 베드로를 예수님 마음으로 섬기고 존중하며 무릎 꿇고 맞이하였습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세우고 상대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성도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깨우침의 은혜
이사야 50:4
찬송: 366장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 가운데 하나는 ‘깨우침의 은혜’입니다. 성경을 보면 등장하는 사람들의 좋은 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 사람에게는 가리고 싶고, 숨기고 싶은 그런 수치까지도 다 가감 없이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확실한 것은 후대 사람들이 그것을 보면서 교훈을 삼아 우리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깨우치게 하기 위함임에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죽었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면 안 되겠다는 것을 깨우칩니다.
고린도전서에는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늘 기도했습니다.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옵소서”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이 아침마다 깨우치게 하신다면, 날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깨우침의 은혜가 있다면, 그 삶은 가장 확실하고 안전하며 복된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했습니다. ‘깨우침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날마다 임하여,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삶으로 승리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됩시다.
•오늘의 기도
‘깨우침의 은혜’가 날마다 임하여,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삶으로 승리하는 삶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집안을 흥왕하게
출애굽기 1:15~22
찬송: 559장
오늘 본문에 왕과 하나님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선 산파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애굽 왕은 번성하는 히브리인들을 멸절시키기 위해 육체적 고통을 가하고 아들을 죽이는 산아제한 정책을 펼칩니다. 이때 믿음의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남아들을 살립니다. 우리도 이 산파들처럼 믿음의 선택을 해야 할텐데 그 기준이 무엇일까요?
첫째, 믿음의 선택은 사람을 살리는 선택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영벌이 아닌 영생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성숙하다 보면 이것도 나의 선택이 아닌 나를 먼저 택하시고 불러주신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아직도 믿음의 선택을 못한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구원의 통로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 믿음의 선택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사도행전 5장의 말씀처럼, ‘믿는 자’가 될지언정 ‘나머지’ 또는 ‘옥에 가두는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더 중요한 건, 설령 옥에 갇혔다 할지라도 ‘가서, 서서, 말하는’ 담대함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사람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을 살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믿음의 선택을 한 사람들의 집안은 반드시 흥왕하게 됩니다. 믿음의 선택을 잘하여서 산파들처럼, 오벧에돔처럼, 자자손손 흥왕하는 가정들이 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의 가정이 사람을 살리는 가정 되어서 믿음의 가문을 이루며 흥왕케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