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가 데일(Edgar Dale)이 만든 ’학습의 원추(The cone of Learning)‘라는 게 있다. 어떤 방식으로 학습을 하느냐에 따라 그 효과가 달라진다는 이론이다.(그림) 이에 따르면
학습에는 세 가지 방식이 있다. 책이나 문서를 읽는 것, 강의를 듣는 것이 추상학습이다. 사진이나 이미지를 보는 것, 영상이나 시연을 시청하는 것이 관찰학습이다. 그리고 학습자가 직접 대화하고 토론하는 것, 학습자가 직접 설명하거나 경험해보는 것이 체험학습이다.
그런데 이 중 가장 효과가 큰 방식은 체험학습이고 그 다음이 관찰학습, 추상학습의 순이다. 추상학습은 보이지 않는 걸 말과 글로 설명하는 읽거나 보는 방식이다. 2주 후에 불과 10~20%만 기억된다. 관찰학습은 실물이나 누군가의 행동을 보고 듣는 방식이다. 2주 후 30~50%가 기억된다. 시청각 교육이 바로 이 방식이다. 체험학습은 학습자 자신이 직접 말하고 쓰고 겪어보는 방식이다. 2주 후 효과는 70~90%에 이른다.
우리 교회가 직면한 가장 큰 위기는, 교회의 가르침이 교인들의 삶으로 투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인들이 힘써 모여 예배하고 성경을 배우는데, 비신자들과 비교해볼 때 삶에 별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삶의 방식을 가르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교나 성경공부의 내용이 교인들이 가정, 일터,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지 못하고 성경 분석이나 해석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교회 교육이 신학교 교실처럼 이론 중심으로 흐르고 있는 건 큰 문제다. “아는 게 힘이다!”
둘째는 교회 교육들이 ’가장 효과가 낮은‘ 추상학습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이나 동영상을 일부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추상학습 방식으로 진행된다. 예배는 거의 ’구경‘ 수준이다. 누군가가 진행하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설교하는 걸 ’구경‘하는 방식이다. 예배자가 주도적으로 하는 건 극히 제한적이다. 규모가 큰 교회일수록 심하다.
어떤 사람이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승마를 시작했는데 100일만에 체중이 4kg이 줄었다고 한다. 사람이 아니라 말이… 수 천, 수 백 명을 모아놓고 한 사람이 마이크 잡고 가르치는 방식은 설교자 개인에게는 가장 효과적인 체험학습이지만, 회중(학습자)에게는 가장 효과가 낮은 추상학습 방식이다. 이런 방식에 익숙해지면 교인들의 학습성과는 매우 낮아져 성장이나 성숙이 멈춰버린다.
포도나무 한 그루에는 보통 50송이 정도가 열린다. 그런데 호남의 어느 농장 포도나무에는 수천 송이씩 열린다. 줄기만 40미터에 달하는 14년 된 한 포도나무에는 무려 4천 5백 송이가 열렸다. 보통 포도나무의 100배다. 포도나무 재배방식이 특별하기 때문이다. 첫째, 가장 비옥한 토양을 만들어준다. 둘째 물을 줄 때 절대로 뿌리에 주지 않고, 1미터 떨어진 곳에 준다. 그러니 뿌리들이 물 있는 곳까지 있는 힘을 다해 뻗어나간다. 포도나무의 뿌리들이 튼튼하니 줄기가 무성하게 자라 열매를 풍성히 맺을 수밖에 없다.
밀어넣는(Push) 방식에서 이끌어내는(Pull) 방식으로!
’교육(敎育)‘은 가르치는 사람이 밖에서 학습자 내부에 지식을 넣어주며 기르는 것이다. 반면에 ’학습(學習)‘은 학습자 스스로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교육이 수동적이라면 학습은 능동적이다. 교인을 성장시키고 성숙시켜 열매를 맺게 하려면 가르치는 이들이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까?”보다 “무엇을 어떻게 학습하게 할까?”로! 예배나 성경 공부에 교인들을 어떻게 참여시켜서 스스로 말하고 직접 해보도록 할 것인지 방식을 찾아야 한다. 밀어넣는(Push) 방식을 이끌어내는(Pull) 방식으로 전환해야 학습자가 성장하고 성숙한다. 가두리 어장처럼 교인들을 ’모인 교회‘에 가둬놓고 항생제와 영양제만 먹이면 교인들은 ’흩어진 교회‘로 살아갈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자꾸 ’모인 교회‘로만 몰려들어 ’영적 복부비만 현상‘을 일으키게 된다.
일상의 삶을 바꾸는 새로운 신앙생활 운동, 학습자 스스로 성장하고 성숙하는 소그룹 동아리 프로그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