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역사에서 기록에 남을 만한 한 해였다. 세계 복음주의 선교운동을 대표하는 로잔대회가 케이프타운대회 이후 14년 만에 한국에서 개최됐다. 코로나 팬데믹 사태가 종식되며 국경의 자물쇠는 느슨해졌지만 선교의 길은 여전히 순탄치 못했다. 급격하게 달라지는 선교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 선교계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기독 언론 선교 출입 기자들로 구성된 선교기자단은 지난 20일 서울제일교회 내 학원복음화협의회 세미나실에서 다사다난했던 2024년 선교 흐름을 되짚었다. 조샘 선교사(전 인터서브 대표)가 ‘제4차 로잔대회 무엇을 남겼나’를 주제로 로잔대회의 득과 실을 평가했고 정용구 목사(KWMA 미래한국선교개발센터장)가 ‘한국선교의 새로운 푯대, New Target 2030’을 주제로 한국 선교 방향 전환 과정을 설명했다. 장창수 선교사(WEC 국제선교동원 부대표)는 ‘데이터로 보는 2024 선교지 현황’을 통해 글로벌 선교 트렌드를 소개했다.
“총체적 복음 놓치고 근본주의로 회귀”
올해 선교계의 가장 중요한 이슈를 꼽으라면 단연 로잔대회다. 한국에서 열린 제4차 로잔대회를 두고 대회가 열리기 전부터 찬성과 반대 양쪽에서 숱한 이야기가 떠돌았다. 우여곡절 끝에 성황리에 대회를 마치고 약 세 달이 지난 시점, 제4차 로잔대회는 어떻게 평가될 수 있을까. 조샘 선교사는 로잔대회에 대해 말하려면 배경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백년을 ‘크리스텐덤 사회’로 군림해왔던 유럽 교회의 권위에 금이 갔다. 인류 최악의 전쟁으로 기록된 1,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이다. 당시 서구권 국가들은 대부분 기독교 신앙이 지배적이었다. 그럼에도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증오와 폭력을 휘두르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예수를 믿는다고 자부하던 이들이 저지른 참상을 목격한 기독교인들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복음은 답인지’, 그리고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선교를 해도 되는지’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질문을 가지고 1974년 로잔에 세계 복음주의자들이 모였다. 이전과는 달리 조직의 장이 아닌 한 사람의 복음주의자들로 모인 이들은 복음이 전해지는 현장에 주목했다. 이곳에서 복음주의자들은 단순히 복음을 전하는 전도 행위뿐만이 아닌 그리스도인으로서 사회적 책무의 중요성에 주목했다. 로잔운동을 통해 복음을 전함과 동시에 사회적 변혁과 생태 문제에까지 시선이 향하는 총체적 선교 개념이 정립됐다. 이후 수많은 작은 모임들이 이어지며 로잔운동의 정신을 이끌고 확산하는 양분이 됐다.
하지만 로잔대회가 품은 ‘총체성’은 시작부터 삐걱댔다. 사회적 책무를 함께 강조하는 로잔운동은 ‘자유주의’와 결탁한 것이라는 비난이 나왔고 곳곳에서 시위가 일었다. 결과적으로 제4차 로잔대회는 이런 반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조샘 선교사는 이번 대회는 일정 부분 근본주의로 회귀한 모습을 보였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서울선언문이다. 조 선교사는 “서울선언문의 7개 조항 중 4개 항에서 ‘우리가 누구인가’를 다룬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는 단 3가지에 그쳤다. 동성애에 대해서도 죄라고만 이야기하고 이들이 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받았던 차별은 언급하지 않았다”면서 “이는 ‘선교적’이기 보다는 ‘종교적’이다.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방어벽을 두르고 우리 공동체를 지키겠다는 선언으로 읽힌다”고 지적했다.
이런 분위기를 상징하는 사건도 있었다. 대회 둘째 날, 루스 빠디야 박사가 평화를 주제로 한 발제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을 언급하며 “극단적인 세대주의자들의 생각에 동조해 무기를 지원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발언했다. 그런데 이를 두고 미국의 근본주의자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일었다. 당황한 주최측은 준비위원장 데이빗 베넷의 이름으로 사과문을 발표했다. 문제는 정작 발제자인 루스 빠디야의 동의는 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공교롭게도 사과문이 발표된 다음날 레바논 지역에 대대적인 폭격이 이뤄졌다.
두려움의 복음 아닌 소망의 복음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대목은 분명 존재한다. 이번 대회에서 참가자들은 26개 이슈 그룹 중 ‘마켓플레이스’ 주제에 2천4백명이나 지원하며 총체적 선교에 대한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이는 미래 선교의 흐름이 미전도 종족에서 공공의 장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회 전후로 크고 작은 BAM 모임이 있었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도 130명이나 모였다. 포스트로잔 창조세계돌봄 모임에서는 논의의 내용을 출간하고 정기적 모임으로 이어가기로 했다.
한국교회에도 소중한 자산이었다. 참가자들의 균형을 중요시하는 로잔의 요청에 따라 한국에서도 목회자뿐만이 아닌 평신도와 여성, 청년 등 다양한 구성원이 대회에 참여했다. 조 선교사는 “주로 장년 남성 목회자가 의사결정권을 쥐고 있는 한국교회에서 남녀노소가 문화를 초월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진귀한 경험이었을 것”이라 평가했다.
하지만 뼈아프게 성찰해야 할 부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조샘 선교사는 “로잔운동은 현장과 상황 속 개인의 풀뿌리 운동임에도 수많은 자발적 이슈그룹을 중앙 중심적으로 하려는 제도화의 움직임을 감지했다”면서 “동시에 사회적 상황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지역교회를 강화할까에 관심을 두는 근본주의가 다시 등장하고 있다. 현재의 다양한 상황이 아닌 과거의 틀로 성경을 해석하려는 시도 때문에 한국교회가 힘을 잃었는데 로잔이 이 길로 가는것이 아닌가 염려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조 선교사는 ‘로잔정신’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일로 총체적 복음의 회복을 꼽았다. 그는 “순수한 복음이 아니라 온전한 복음, 두려움의 복음이 아니라 소망과 믿음의 복음을 말해야 한다. 센터 중심이 아닌 디아스포라 풀뿌리 운동으로 기능하면서 먼 곳의 거대 담론이 아니라 지금 이곳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지금 이곳에서 개인들이 어떻게 선교적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는 것이 로잔운동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파송 숫자 넘어선 시대적 과제에 집중
2024년은 한국 선교계에 있어서도 중요한 해였다. ‘10만 선교사, 100만 자비량 선교사’ 파송을 목표로 내걸었던 기존 ‘Target 2030’을 전면 수정한 ‘New Target 2030’을 발표한 것이다. New Target 2030은 선교사 파송 수와 같은 양적 목표가 아닌 지금 시대에 필요한 선교 방향을 제시하는 질적 목표에 초점을 뒀다.
한국 선교의 방향 전환을 주제로 발제한 정용구 목사는 “정책위원회에서부터 기존 Target 2030에 대한 비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숫자에만 집중하는 목표에 대한 성찰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고민하며 과거의 흐름과 방향을 한 번에 바꾸기보다는 선배들의 전통을 이어가겠다는 마음으로 New Target 2030이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New Target 2030은 네 가지 주제를 한국 선교의 미래로 제시한다. 첫째는 비서구 중심의 선교 운동, 둘째는 이주민 선교, 셋째는 다음세대 선교, 넷째는 디지털 선교다. 서구교회의 쇠퇴와 글로벌 이주 등 달라진 선교 환경에 발맞추려 노력하면서 동력이 필요한 분야에 힘을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해외 선교지 실태와 선교사들의 사역 환경에 대한 데이터를 남긴 것도 올해 한국 선교의 성과 중 하나다. KWMA와 목회데이터연구소는 올해 7월 선교사 320명을 대상으로 ‘해외선교 실태 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코로나 사태 이후 선교지로 복귀한 선교사들의 사역 경험을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적지 않다.
정용구 목사는 “조사에서 선교사들은 선교 사역 컨설팅이 필요함을 요청했다. 선교사들의 절반 정도가 사역 컨설팅이 필요하다고 답했고 컨설팅을 이미 받은 선교사들의 77.6%는 도움이 됐다고 느끼고 있었다”면서 “선교사들의 역량 강화를 위한 장기적인 로드맵과 액션플랜이 필요함을 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 이후 단기선교의 트렌드 변화도 관찰됐다. 해외여행이 흔해지고 온라인에서 해외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게 되면서 단기선교 역시 대중화됐다. 선교사나 사역자가 아닌 평신도들의 기획으로 단기선교 여행을 다녀오는 사례가 증가한 것이다. 정형화된 포멧을 가졌던 이전의 단기선교와는 달리 기간이 다양해지고 온라인 접촉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글로벌 이주로 달라진 선교 전략
전 세계에서 가장 신도가 많은 종교는 무엇일까. 정답은 여전히 기독교다. 2024년을 지나며 기독교 인구는 26억 3천만명으로 집계됐고 무슬림 인구는 20억 명으로 나타났다. 다만 성장세는 이슬람이 더 가파르다. 같은 기간 기독교의 성장률은 1.08인 것에 반해 이슬람은 1.68로 더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세 번째로 마이크를 넘겨 받은 장창수 선교사는 데이터를 중심으로 세계 선교 흐름을 파악하고 소개했다. 한국의 경우 선교사 고령화와 은퇴 문제가 시급함을 통계 수치에서 엿볼 수 있다. 현재 한국 선교사는 50대 이상이 67.9%를 차지하고 20~40대의 경우 모든 연령대에서 선교사의 수가 감소했다. 선교 사역은 여전히 ‘교회개척’의 비중이 높았지만 영역별로 전문성을 갖춘 지원단체와 전문단체가 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선교사 은퇴의 반대 급부로 ‘청년세대 선교 동원’ 이슈도 대두되고 있다. 청년들의 선교 헌신이 감소하는 이유로 인구 감소와 신앙적 열심 감소, 분주한 사회활동, 신학교 입학 감소를 꼽지만 이는 유의미한 진단이 아니라는 것이 장창수 선교사의 생각이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것은 Barna 연구소가 2021년 40대 이하의 신앙을 가진 청년들에게 미래 선교에 대해 질문한 조사 결과다.
장 선교사는 “해당 조사에서 청년들의 51%는 ‘과거의 선교 방식이 비윤리적’이라고 답했고 71%는 ‘여전히 제국주의적’이라고 말했다. ‘선교적 발전 이전에 방식의 점검이 필요하다’고 답한 청년도 63%나 됐다”면서 “이는 청년세대가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게 하기 위해 무엇이 선결되어야 할지 시사한다. 기존 사역에 청년들을 불러 충원하려는 차원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시대적 선교를 소원하고 실천하도록 돕는 멘토링과 새로운 방식의 교육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선교는 ‘진공상태’에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환경의 변화를 파악하는 일은 중요하다.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도시화’다. UN의 도시화 예측에 따르면 2050년까지 전 세계 인구 68%가 도시에서 살아가게 된다. 인구 1천만명 이상이 사는 메가시티는 2018년 33개에서 2030년 43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인구 이동 역시 눈여겨볼 현상이다. Pew Forum의 지난 8월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이제까지 이주민 유입으로 인구가 2배 증가한 국가가 14개에 이른다. 이곳 한국에서도 이주민이 늘어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다. 국제 정세의 악화에 따라 난민들도 급격히 늘고 있는 추세다.
장창수 선교사는 “이주 현상을 보며 주목해야 할 것은 더 이상 미전도 종족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점”이라면서 “이는 전통적인 선교 관점으로 미전도 종족 선교를 이야기하는 것이 어렵게 됐음을 의미한다. 대규모 이주에 따른 선교 전략의 재구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