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세 나이로 이 땅에 묻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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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세 나이로 이 땅에 묻혀
  • 승인 2004.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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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세 나이로 이 땅에 묻혀

호남선교의 선구자 전킨선교사 초기 서울을 중심으로 사역이 시작됐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선교활동을 하기에는 선교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이에 언더우드 선교사는 1891년 안식년을 맞이하여 전 미국을 다니며 조선에 선교사를 보내달라고 호소하였고, 이때 언더우드 선교사의 호소를 듣고 전킨은 다른 6명의 동료들과 함께 조선에 선교사로 오기로 결심하고 준비하게 된다.

전킨과 6명의 젊은이들이, 조선에 선교사로 가겠다고 선교부에 지원서를 내었고 1892년 7월에 조선으로 파송을 받게 된다. 전킨선교사는 어려서부터 전도에 열정을 가지고 전도했다. 여름휴가 때는 각 지방으로 전도여행을 다니는 등 선교에 뜻을 두고 선교사로서의 자질을 길렀다.

유니온 신학교를 졸업하고, 드디어 1892년 11월 3일 한국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10개월간 언어와 한국을 공부한 전킨은 1893년 9월 남장로교 담당 선교지인 전라도 지방을 답사했다. 도중에 홍수를 만나 냇물에 빠져 죽을 뻔 했고, 숯불가스 중독으로 쓰러지고, 낮에는 발이 아파서 고생도 했고, 밤에는 주막에서 모기와 빈대에게 시달리는 등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 호남지방의 선교의 문을 열었다.

1896년에는 군산에 선교지부를 설치하고자 군산포구에 거처를 정하고, 전도로 얻은 교인들과 전킨 자신의 집에서 예배를 드렸다. 이것이 군산 구암교회와 개복교회의 시작이 되었다. 그의 열정은 선교지역을 군산 인근지방에만 국한하지 않고 옥구, 익산, 김제 등의 지역을 정기 순회하며 예배를 인도했다. 자신의 건강상태를 돌보지 않고 진력하다가 너무 쇠약해지자 1904년에 선교사회의는 그의 건강을 염려하여 임지를 전주로 옮기게 했다. 그리고 거주지역에서 20리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활동을 억제할 정도로 전도의 열이 누구보다도 강했다.

전주로 옮겨온 이후 그는 서문밖교회를 담임하고 예배당을 크게 신축했으며, 인근에 6교회를 설립하고 고아원을 설립하였으며,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돌보지 않고 열정을 쏟다가 1907년 12월에 폐렴을 얻게 되어 1908년 1월 2일에 43세의 젊은 나이로 이 땅에 묻혔다. 15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전킨 선교사의 열정적인 활동으로 호남선교의 초석을 다지는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그가 세운 교회 성도들과 동역 선교사들은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학교를 세우는데 그 학교가 전주의 기전여학교이다. 전킨을 기념하기 위해서 이름을 기전이라고 지었던 것이다.

송영락기자(ysong@uc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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