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7장에서 야곱의 11번째 아들로 알려진 요셉은 자기가 꾼 꿈 때문에 고난에 처하게 된다. 형제들, 심지어는 부모까지도 자기에게 절한다는 꿈을 들은 형제들의 시기로 요셉은 이집트인 보디발의 종으로 팔려 가게 된다. 보디발의 처는 기회만 있으면 요셉을 유혹하여 동침하기를 원한다. 결국 억울한 누명을 쓰고 요셉이 도리어 옥에 갇히게 된다(창 39장).
여인이 남자를 유혹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이집트 문헌에 ‘두 형제의 이야기’가 있다. 형과 아우가 함께 사는데 형의 아내가 동생을 유혹하여 동침하자고 한다. 그러나 매사에 성실한 동생이 그 유혹을 뿌리치자 형수가 동생을 모함한다. 그래서 형은 동생을 죽이기 위해 쫓아다니고 동생은 피신하는 과정이 계속된다. 결국 형은 동생의 마음을 알게 되고 동생은 이집트의 파라오(왕)가 된다는 이야기다.
학자들은 요셉의 이야기가 이집트의 두 형제 이야기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이집트 이야기는 윤리적 내용에 이야기의 무게가 실려 있지만, 요셉의 이야기는 남녀 간의 윤리적 내용보다는 요셉이라는 인물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전개된다.
요셉이 감옥에서 생활하는 동안 같이 감옥에 있던 이집트 시종의 꿈을 해몽해 주고 그는 복권된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요셉은 파라오의 꿈을 해몽하게 된다(창 40장). 이집트 왕 파라오가 꾼 꿈을 아무도 해석하는 사람이 없자 요셉이 그 일을 해냄으로써 그 나라의 총리대신에 오른다.
요셉은 7년 동안의 풍년 기간에 식량을 저축하게 함으로써 이어지는 7년의 흉년을 대처하는 지혜로운 치리자가 된다. 그러나 가뭄에 시달리는 각 국의 사람들이 요셉에게 와서 구원을 청하게 되고, 이 사건은 요셉과 그의 형제들이 이집트에서 만나는 계기가 된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요셉과 형제들이 대면하는 장면이 창세기 45장에 소개되고 있다. 요셉이 이집트의 치리자가 된 것을 본 그의 형들이 두려워 떨고 있을 때 요셉은 형들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위로한다.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요셉의 말에서 우리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요셉을 시기하여 이집트의 종으로 팔아 버린 형들의 악함이 하나님에 의해 선(善)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자신의 고난도 영광도 모두 하나님의 뜻이요, 형제들이 다시 이국 땅에서 만난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요셉 앞에서 우리는 숙연해진다.
예수님께서는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했는데 요셉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형들과의 재회는 그 동안에 쌓였던 모든 한을 풀고 이제 서로 화해하는 만남의 순간이었다. 그래서 이 극적인 장면이 담긴 창세기 45장을 요셉 이야기의 절정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요셉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섭리로 인한 사랑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는 소중한 내용이다.
/교수·강남대 구약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