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사랑, 곁에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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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론] “사랑, 곁에 있는 것”
  • 강석찬 목사(예따람공동체)
  • 승인 2024.12.12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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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찬 목사
강석찬 목사

2024년 달력 마지막 한 장을 남겼다. 지난 11달을 뒤돌아보니 2024년은 시작부터 살기가 힘들었다. 코로나 후유증 여파라든가, 정치가 너무나 어설퍼서라든가, 사람들의 마음이 각박해졌다든가, 물가나 너무 많이 올라 하루 살기가 팍팍해졌다든가 등등의 이유가 숨쉬기를 압박하여 숨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세계 곳곳에서 기상이변의 소식, 지진과 화산의 피해, 홍수와 가뭄, 대형산불, 초강력 태풍, 북극과 남극 빙하의 해빙, 전쟁 뉴스들이 반복해서 지구 멸망설을 부추겼다.

예수님과 제자의 대화가 실현되고 있나?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겠습니까?”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게 될 것이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자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마 24:3~8) 예수님의 말씀은 계속되었다. “많은 사람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 24:10~12)

‘뉴스만 보면’ 정치, 사회, 국제, 경제, 교육, 종교계, 어디를 들여다봐도 세상이 금방 망(亡)할 것 같다. 구원의 방주로 여기는 교회도 마찬가지다. ‘뉴스만 보면’ 세상 곳곳에 시한폭탄이 가득 채워져 건들기만 하면 터져, 난리가 날 것 같다. 신문을 펼치기가 무서울 정도로 ‘악한’ 사건과 사고가 줄지어 보도되고 있다. ‘뉴스만 보면’, 세상에 ‘악한’ 사람이 가득 채워져 있는 것 같다. 과연 그럴까? ‘악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종말은 임박했다. ‘뉴스만 보면’ 말세(末世)다. 하나님의 벼락심판을 맞아야 할 사람이,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탄 바로 내 옆 사람일 수 있다는 공포가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하는 세상이라면, 말세가 맞다. 그리고 혹시 하나님께서 실수(?)하셔서 그 벼락이 나를 향할 수도 있다는 개연성으로 세상을 보면, 정말 순간순간이 두려운 연말이다. 과연 그런가? 물음을 갖고 작은 실험을 했다.

10명의 보통 사람이 모인 곳에서, 눈을 감고 정직하게 답하라고 했다. 자기가 ‘악하다’고 여기면 왼손을, 자기가 ‘선하다’라고 여기면 오른손을 들라고 했다. 어느 쪽이 더 많았을까? 10명 모두, 오른손을 들었다. 시론을 읽으시는 독자들은 어느 손을 들까?

그렇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종말이 지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뉴스만 보면’ 세상이 악한 일들로 채워져 금방 망할 것 같지만, 세상에는 ‘선으로 악’을 극복해 가는 ‘선한’ 사람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가끔, 일평생 어렵고 힘든 장사하여 모은 전 재산을 장학금으로, 기업으로 성공하여 얻은 전 재산을 사회로 환원하는 뉴스가 보도된다. 가뭄에 단비 내리듯 뉴스가 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손길은, “당신의 1만 원이 아프리카에서 질병으로 죽어가는 어린이의 생명을 살립니다”라는 광고에 응답하는 이름 밝히지 않고 지갑을 여는 사람들이다. 시각장애인 행사에 자원해서 ‘흰 지팡이’가 되어주는 분들이 있다. 소아암 어린이를 후원하려고 1년 동안 돼지저금통을 채우는 이들도 있다.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곁에 있는 것이다. 고통, 아픔, 소외, 외로움, 위기, 시련 등으로 고난 속에 있는 작은 사람 곁에 있는 것, 따사한 마음 나누는 것, ‘함께’의 공간을 넓히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성탄(聖誕)이 이것이다. 12월, 2024년 마지막 남은 달력에 종말을 지연시키는 소중한 사랑 나눔 실천을 기록해 보자.
예따람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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