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빈곤과 우울증에 노출된 노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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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빈곤과 우울증에 노출된 노년층”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4.11.19 1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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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죽음에서 생명으로(33) 일당 1만원에 폐지 줍는 노인들
한국 OECD 회원국 중 노인 빈곤율 1위, 평균 수치 3배 육박해
절대적 빈곤은 정신 건강 악화로 … 노인 우울증 지속적 증가

끽해야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좁은 골목 사이로 리어카(손수레) 한 대가 천천히 다가온다. 위태로운 탑처럼 쌓아 올린 폐지 더미를 실은 리어카는 버거운 듯 녹슨 쇳소리로 신음을 내뱉는다. 그 뒤엔 ‘폐지탑’의 무게가 감당이 안 될 성싶은 허리 굽은 어르신 한 분이 힘겨운 한 발짝을 뗀다.

참여연대가 ‘노인실태조사’ 자료를 기반으로 추산한 전국의 폐지 줍는 노인의 수는 2020년 기준 약 3만2천명에 이른다. 좀 더 보수적으로 집계한 지방자치단체별 수집 자료를 취합해봐도 약 1만5천명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날씨가 조금만 흐려도 삭신이 쑤신다고 허리를 부여잡는 어르신들이 거리로 내몰린 이유는 뻔하다.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생계를 꾸릴 수 없었던 탓이다. 폐지를 줍는 대부분의 노인들은 일을 시작한 이유로 ‘절대빈곤’을 꼽고 있었다.

중위연령이 든든하게 버텨주는 이상적인 ‘항아리 그래프’는 노년층이 다수를 차지하는 ‘역삼각형 그래프’로 바뀐 지 오래다. 출생율은 바닥을 치는 통에 의학 기술의 발달로 평균수명은 늘다 보니 그래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갑작스런 인구구조 변화를 수용할 준비가 되지 못한 듯하다. 여유롭고 행복한 황혼기를 보내는 노년층보다는 은퇴 이후에도 쉼을 누리지 못하고 생계 걱정에 쫓기는 노인들이 더 많이 눈에 띈다. 심각한 사회문제로 번지는 노년층 빈곤 실태와 정신 건강 문제를 들여다봤다.

 

노인 빈곤율 1위라는 오명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OECD가 공개한 ‘한눈에 보는 연금 2023’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한국 노인 인구 중 전체 인구 기준중위소득의 50% 이하를 뜻하는 빈곤율은 40.4%를 기록했다. OECD 회원국 37개국 중 단연 1위를 차지했고 회원국 평균 빈곤율인 14.2%의 3배에 육박한다.

우리나라가 가난해서가 아니다. 전체 연령 빈곤율(15.3%)에 견준 노인 빈곤율의 격차도 25.1%p로 OECD에서 가장 컸다. 프랑스, 그리스, 룩셈부르크, 노르웨이, 스페인 등 5개 나라는 노인 빈곤율이 오히려 전체 빈곤율을 밑돌았다.

우리나라 노인의 빈곤율은 여성일수록, 나이가 많을수록, 지역 규모가 작을수록 높았다. 소도시나 농촌에 사는 나이 많은 할머니가 빈곤 문제에 있어 가장 취약계층이라는 이야기다. 가처분 소득을 기준으로 할 경우 노인 빈곤층 중 60.3%가 여성으로 드러났다. 농어촌에 거주하는 80세 이상의 노인의 경우 빈곤율이 67.5%나 됐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이 유독 높은 이유는 빈약한 연금제도가 꼽힌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은 1988년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납부한 금액과 기간에 비례해 연금을 수령하는 국민연금제도의 특성상 1950년대 출생자들은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OECD 보고서 역시 이 점을 직시하고 “한국의 연금 시스템은 아직 성숙 중이며 초고령 노인의 연금 수급액이 매우 적다”고 설명한다.

다만 소득을 기준으로 한 데이터로는 노년층의 경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함정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상술한 것처럼 현재 대다수의 고령층은 연금 가입기간이 짧고 수급 금액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의 노년층은 연금보다는 자산 축적으로 노후 대책을 마련했을 가능성이 크다. 소득과 자산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빈곤 현황 파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상황이 희망으로 반전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벌어들인 소득뿐만 아니라 귀속임대료와 같은 암묵적인 소득을 포함해 계산하는 포괄소득 추산 방식에서는 2020년 기준 빈곤율이 31.5%로 감소한다. 처분가능소득으로 계산했던 40.4%보다는 나은 수준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다른 OECD 회원국과 비교하면 높은 수치다.

 

우울증 조기 진단과 치료 중요해

폐지를 줍고 싶어 줍는 것이 아니다. 거리에 나선 노인들은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다”고 토로한다. 무거운 리어카를 끌고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매다보면, 여름엔 작열하는 태양이 노쇠한 몸을 쥐어짜고 겨울엔 살을 에는 한파가 가차 없이 외투의 빈틈을 파고든다. 이렇게 하루 11시간 동안 몸을 갈아가며 받는 대가는 고작해야 하루 평균 1만원(참여연대 추적조사). 2024년 현재 법정 최저시급(9,860원)과 비슷한 금액을 11시간 동안 일해야 벌어들이는 셈이다.

폐지 줍는 노인들은 우리나라 노인 빈곤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슬픈 자화상이다. 적잖은 수의 노인들이 일당 1만원짜리 노동에 내몰리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사회안전망 제도에 구멍이 뚫려있음을 방증한다.

극심한 빈곤과 외로움은 정신건강의 악화로까지 연결된다. 이를 잘 보여주는 현상이 노년기 우울증 환자의 지속적인 증가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21년 우울증·불안장애 진료 통계에 따르면 전체 우울증 환자의 35.69%가 60대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에 사는 노인 10명 중 1명이 우울 증상을 겪고 있다는 조사도 있다.

우울증이 발현하는 데는 유전적, 신경생물학적,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지만 노년층의 경우 환경적 요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나이가 들며 찾아오는 경제적 빈곤과 사회 참여 감소, 사회지지 체계의 부족, 외로움과 고독이 우울감을 유발하는 것이다. 특히 70~85세 이후에는 주요 우울장애 발병률이 두배 높게 치솟는다.

노년기 우울증은 만성질환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특히 위험하다. 식욕이 떨어지거나 수면의 질이 낮아지면서 치매나 심혈관계질환, 당뇨, 고지혈증을 동반할 위험이 높다. 우울증상이 지속되다보면 돌이킬 수 없는 극단적인 선택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종종 노인 우울증은 일반적인 노화증상과 혼동되곤 한다. 기분이 좋지 않고 의욕과 식욕이 감퇴하는 이유를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고 치부하며 치료 시기를 놓치고 마는 것이다. 우울증도 방치하면 만성질환처럼 변할 수 있고 식욕 저하와 의욕 저하로 인해 건강이 완전히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는 점에서 조속한 진단과 조치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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