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먹먹하다. 말문이 막힌다. 눈물이 난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어라 이는 곧 예수라”(행 19:2~4)라고 외치던 사도 바울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시간을 뛰어 넘어 1세기경 고대 로마 아시아 도시 중 하나인 화려하고 거대한 에페수스(에베소)에 와 있다. 큰 여신 아데미의 우상이 즐비한 이곳에 사도 바울이 복음 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여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는(행 19:5~6) 그 현장에 내가 지금 바울과 함께 있는 것이다. 성경의 땅 에베소에 지금 여기(Here and Now)에 두 발을 딛고 내가 서 있다는 사실이 먹먹할 따름이다.
에베소는 튀르키예 서해안 항구도시 이즈미르(초대교회가 있었던 역사적인 도시 서머나의 현재 이름)에서 약 80Km 떨어진 곳에 있다. 사도 바울 당시 인구 25만 명을 자랑하는 상업, 무역, 과학, 의술, 학문, 예술이 발달한 거대하고 화려한 도시였다. 1세기경에 수세식 화장실은 물론 2만5천 명을 수용하는 원형 극장, 거대한 도서관, 요즈음 우리가 알고 있는 주상 복합 주거 공간까지 갖추고 있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 거대하고 화려한 고대 도시에서 살고 있었던 시기가 우리나라 삼국시대 초기 혹은 삼한시대와 같다고 하니 문화와 생활수준의 차이에 말문이 막힌다.
고대 7대 불가사의 하나였던 아데미 신전이 있었던 에베소는 바울의 2차, 3차 선교여행으로 말미암아 초기 기독교 중심 도시가 된다. 더욱이 3차 선교 여행 중에 바울은 이곳에 2년 반 동안 머물면서 선교와 신앙 교육에 더욱 힘쓴다. 특히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이나 날마다 강론하니 아시아에 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 다 주의 말씀을 듣고 또한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사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가 물러나는 역사가 일어나고 궁극에는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는다(행 19:9~20)’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사도 바울의 선교활동으로 아데미의 여신을 섬기던 이교 신앙의 중심지인 에베소가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의 하나인 기독교 중심 도시가 되었다. 에베소 교회나 두란노 서원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내가 지금 밟고 있는 이 땅 어디인가 있었으리라. 지금은 화려했던 에베소의 건축물과 옛 영화는 찾아 볼 수 없지만 폐허가 된 건물들의 잔해와 군데군데 남아 있는 유적들(거대한 도서관, 온전한 형태인 원형극장 등)이 에베소의 옛 영광을 말해주고 있다.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도 오가는 길에 수시로 들렀다는 에베소, 두란노 서원에서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따라 소아시아 전역에 교회가 세워졌고 하나님 말씀이 힘 있게 전파되어 복음의 중심지였던 이곳이 지금은 복음을 마음대로 전할 수 없는 이교도의 땅이 되어 있다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
말씀의 역사와 능력은 계속되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왜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받아 들였던 에베소와 소아시아에 있는 교회들이 옛 흔적들만 남겨두고 이렇게 무슬림이 지배하는 땅이 되었다는 말인가?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조차 편지를 보내면서 복음에 굳게 서라고 그렇게 당부했는데도 말이다.
나는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에서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그 이유를 찾아 보고자 한다. 복음을 받고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처음 사랑을 버렸기 때문이다. 신앙은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다. 오직 현재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처음 사랑을 잊는 순간, 우리도 에베소 교회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가리라는 것을 이번 에페수스 여행을 통해 새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