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식물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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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식물총회
  • 김수연 기자
  • 승인 2024.10.08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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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판에 식물국회가 있다면, 교계에는 ‘식물총회’가 있었다. 최근 한 달간 일제히 정기총회를 개최한 한국교회 주요 교단들을 보면서 느낀 바다. 1년에 한 번 지도부 선출 이외에도 교단이 나아갈 방향과 정책을 수립하는 중요한 자리인 정기총회에서 정작 ‘리더십 이슈’로 제 기능을 상실한 교계의 모습은 큰 씁쓸함을 안겼다.

대표적으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을 계승한다는 모 교단은 며칠 전 정기총회 시즌을 맞았지만 안건 하나 결의하지 못하는 식물총회로 전락했다. 작년 ‘총회장 해임안’을 두고 양측으로 분열된 이 교단은 지난 1년간 시끄러운 법정 송사에 휘말렸다.

끝내 갈등을 봉합하지 못한 이 교단은 양측 모두 법적 정당성을 얻지 못해 결국 올해 ‘정기총회’라는 이름도 내걸지 못한 가운데, 안건 하나도 처리할 수 없는 유명무실 ‘비상총회’로 전환됐다. 사실상 총회가 있지만 제 역할을 전혀 수행하지 못하는 식물총회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타교단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새다. 총회장의 사생활 리스크로 부총회장이 권한을 대행해 정기총회를 준비한 A 교단, 정기총회에서조차 총회장을 선출하지 못해 향후 임시총회를 열 것으로 알려진 B 교단 등 제대로 된 리더십 부재로 총회는 힘을 잃었다.

교단마다 세상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사회법 소송’이 만연하면서 덩달아 한국교회의 위상은 빠르게 추락 중이다. 교회 안에서 문제가 발생한 자체로도 부끄럽지만, 세상 법정으로 옮겨지는 일은 더욱 창피한 일이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

세상은 교회에 더 높은 윤리적 잣대를 들이댄다. 그럼에도 분쟁에 열을 올리느라 정작 건강한 토의가 이뤄져야 할 정기총회, 그리고 있지만 없는 것 같은 총회의 모습은 스스로 쇠퇴의 길을 자처할 뿐이다. 

때마침 ‘종교개혁의 달’을 맞았지만, 종교개혁 정신은 온데간데없고 탐욕과 다툼, 반목만 남은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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