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트 밀라드의 어린 시절은 가정폭력으로 얼룩져 있다. 바트의 아버지는 과거 잘 나가던 미식축구선수로서의 실패를 인생의 실패로 받아들였으며, 그 결과 자신의 좌절과 분노를 가족폭력으로 대체하며 살고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어린 바트에게 유일한 위로이자 돌파구는 다른 세상을 상상하며 음악을 듣는 일이었다. 매 순간 바트는 상상했고 또 음악을 들었다. 매를 맞고 난 후에도 그리고 엄마가 매 맞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바트는 다른 세상을 상상했고 또 음악을 들었다.
엄마가 집을 나가자 바트는 아버지의 폭력 때문이라고 믿고는 아버지를 증오한다. 고등학교 교내 합창단에 들어가면서 바트는 자신의 음악성을 발견하고 뮤지션으로서 미래를 꿈꾼다. 아버지의 인격모독과 언어폭력을 더는 참을 수 없었던 바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난다.
생존을 위해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도 틈틈이 곡을 써나가던 바트는 우연한 기회에 무명의 밴드와 합류해서 보컬로서 활동할 기회를 얻는다. 밴드는 그와 합류하면서부터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음반 회사 사장들로부터 전문 음악인의 반열에 오르기에는 한참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매니저와 대화하면서 자신이 음악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이유가 아버지에 대한 증오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임을 깨닫고는 집으로 돌아가서 회복의 시간을 갖고자 한다.
이 장면은 돌아온 탕자의 장면을 연상케 하는데, 비록 성경 속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아니었지만, 집을 나선 후 실패를 인정하고 다시 돌아온 것이나, 그곳에서 회심한 기독교인으로 변해 있는 아버지에 의해 대대적인 환영을 받는 모습은 영락없이 탕자의 귀환이었다. 아버지는 회심 후 아들이 돌아오기를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트는 스스로를 돌아온 탕자로 여길 생각을 하지 않았고, 몰라보게 변한 아버지가 오히려 낯설게 여겨져 불편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아버지가 췌장암 말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후로 바트의 마음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다. 바트는 어렵게 아버지의 변화를 받아들이면서 모든 것을 새롭게 보게 되는데, 마지막 여정을 앞두고 있는 아버지와 화해의 삶을 보낸다.
장례 후 바트는 집을 떠나기 전 짐을 정리하면서 그가 어렸을 때에 적은 일기장을 발견하고는 그것을 가방에 넣는다. 밴드와 함께 떠나는 차 안에서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중에 자신이 힘들 때나 기쁠 때나 매 순간 상상했고 또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때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I can only imagine’을 쓴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바트는 어떻게 이런 곡을 쓸 수 있었을까? 한계에 부딪혔을 때 그가 자기 안의 증오를 깨닫지 못했다면, 그래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아버지에게 돌아가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전 세계 많은 음악팬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이 곡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안에 있는 미움과 증오는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일을 가로막는 방해요소다. 우리가 용서하고 오히려 원수라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 자신을 통해 일하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바트가 인생의 한계에 직면했을 때 내면의 음성에 귀 기울일 수 있었기 때문에 바트는 아버지에게 돌아갈 수 있었고, 그 결과 그토록 훌륭한 곡이 태어날 수 있었다. 이것이 영화를 통해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메시지다. 바트는 바로 이 사실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