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샘물] 하나님이 무능한 소자들을 지으신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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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샘물] 하나님이 무능한 소자들을 지으신 까닭
  • 신헌재 장로
  • 승인 2024.06.19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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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헌재 장로/서울우이감리교회 원로장로,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신헌재 장로/서울우이감리교회 원로장로,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겨울의 춥고 음산한 날씨에 웅크리고 지내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 틈에 봄기운이 우리 곁에 다가와서 포근하고 따사로운 분위기가 온 대지를 감싸더니 어느덧 무더운 여름이 왔다. 이 대지와 하늘을 무대로 삼아 올해도 어김없이 새로운 생명들을 갖가지로 지으시고 기르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부지런하신 손길을 엿보게 한다.

겨울의 구각을 벗고 움터나는 새싹과 갓 깬 병아리들의 그 귀엽고 앙증스러운 모습들, 겨울의 긴 잠을 깨고 이제 곧 생동하여 나타날 나비와 뭇 곤충들의 그 활기찬 모습들, 그리고 산과 마을이 온통 진달래와 복사꽃과 살구꽃, 벚꽃들로 꽃 잔치를 이뤄낼 그 풍성한 모습들은 상상만 해도 그 하나하나에 담긴 하나님의 숨결과 그 신묘막측하신 솜씨를 느끼며 옷깃을 여미게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나는 그동안 이런 창조물들을 지켜볼 때마다 어린아이 같은 의문이 생기곤 했다. 왜 하나님은 똑같은 생물 중에도 어떤 것은 강하게 만드시고 어떤 것은 유약하게 지으시는 걸까? 왜 하나님은 어떤 것은 더 예쁘게 지으시고 어떤 것은 추하게 꾸미시는 걸까?

이런 의문을 갖다가도 문득 이런 의문을 갖는 것이 혹시 피조물인 인간인 주제에 조물주이신 하나님의 흉중을 감히 헤아리려는 방자함이 섞인 건 아닐까 싶어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 의문이 ‘엄마, 별은 왜 밤에만 떠?’, ‘아빠, 두꺼비는 왜 개구리보다 저렇게 우습고 못나게 생겼어’ 하는 식의 순수무사기한 어린아이들의 질문과 같은 것이라면 하나님도 나무라지는 않으시리라 본다. 이런 식의 질문은 좀 더 나아가, 왜 같은 사람인데도 누구는 더 잘나게 지으시고, 누구는 못나게 지으셨나 하는 데로도 넓혀 갈 수 있다.

아주 예전에 어느 대학에 강의하러 갔다가 거기 학생 식당에서 크리스천 학생들과 커피를 마실 때였다. 그때, 문간에 웬 허름한 차림을 한 바보스러운 청년이 나타나서 쭈뼛거리며 서성거렸다. 그것을 본 한 학생이 그 청년을 가리키며 지능이 아주 낮은 사람인데, 자주 이 근처를 배회하는 이라면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다. 저 사람이 불쌍한 생각이 들어 복음을 전하고 싶어도 과연 저런 저능한 사람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건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런 저능한 이를 지으신 까닭은 또 무엇인지도 알고 싶다는 것이다.

순간 나는 대답이 막혔다. 그래서 좀 더 기도 중에 하나님의 뜻을 찾아보자고만 하고 자리를 떴는데, 그 후 며칠 동안 이 질문은, 하나님의 창조물인 사람들 가운데 강약과 우열과 미추의 차별을 두신 이유가 뭔지 궁금해하던 내 평소의 의문과 겹쳐서 머릿속으로만 계속 맴돌 뿐 별 뾰족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신약성경 요한복음 9장 3절을 읽다가 제자들이 날 때부터 소경된 자의 연고가 무엇인지를 예수님께 문의드리자, 예수님께서 하신 대답,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는 말씀 가운데서 불현듯 그 대답의 실마리를 잡아낼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주위에 지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소경 된 저능아나, 남보다 나약한 이들을 두신 까닭은 다름아니라 저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의를 나타내려 하신 거란 점…. 그런데 이 사랑과 의는 저 미흡한 이들의 이웃인 좀 더 유능하고 강한 지체들을 통해 나타내시려 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다 같은 하나님의 창조물 가운데 이 무능한 지체들을 두신 것은 그 이웃의 좀 더 유능한 지체가 이들을 떠맡아 내 일처럼 아끼고 섬기게 하려하신다는 점,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의를 드러냄으로써 피차간에 보잘것없던 삶의 의미가 더욱 보석처럼 빛나고 풍요로워지는 창조의 손길을 체험케 하려 하셨다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사회적 약자와 강자를 각각 따로 지으신 동기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런 생각 끝에 문득 부자의 문간에서 헌 데를 긁던 거지 나사로가 오히려 낙원의 품에 안겼듯이, 이들 지극히 적은 소자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하심과 구원의 자리에 누구보다 가까이 있는 복된 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새삼 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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