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 顧客, 孤客, 苦客, 高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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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 顧客, 孤客, 苦客, 高客
  • 이의용 교수 사)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 승인 2024.04.24 0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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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용의 감사행전 (79)
                                      이의용 / 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이의용 / 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외국인이 우리말을 배우면서 기겁을 하는 단어들이 있다. ‘눈깔사탕’, ‘할머니뼈해장국’, ‘할머니산채비빔밥’, ‘할머니도가니탕’, ‘엄마손칼국수’, ‘엄마손파이’ 등… 이보다 더 무서운 말은 ‘머리 자르러 미용실 간다’. 사실은 ‘머리카락’ 자르러 가는 것인데… 

‘이발소’나 ‘미장원’도 이름이 바뀌며 끊임없이 변신하고 있다. 남녀 구분도 없어졌다. 전에는 가위로 머리카락을 세심히 다듬어주었는데, 요즘엔 전기 바리캉으로 순식간에 머리카락을 밀어 버린다. 면도 과정도 사라졌다. 바리캉 같은 이발 기구가 들어 온 건, 원래 장발이었던 우리의 헤어 스타일이 단발로 바뀌면서다. ‘바리캉’은 일제 시대에 등장했지만 일본어는 아니다. 제조회사 이름이 프랑스의 ‘바리캉 드 마르(Bariquand et Mare)’인 데서 유래했다. 영어권에서는 헤어 클리퍼(Hair Clipper)라고 한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와서 전통적인 이발관 한 곳을 간신히 찾아냈다. 가위로 머리카락을 세심하게 다듬어주는 곳이다. 면도 과정은 없다. 그런데 이발을 하는 동안 이발사가 끊임없이 말을 걸어온다. 요즘 말로 TMI(Too Much Information) 유형이다. 마스크를 쓰던 때에는 안 그랬는데. 이발을 당하는 입장이라 꼼짝없이 들어주는데 가끔 오버를 한다. 자기의 주관적인 의견을 내 귀에 자꾸 입력하려 든다. 온갖 시사적 문제와 정치적인 견해까지. 

이발관 입구에는 “주일엔 쉽니다”란 스티커가 붙어 있다. 탁자에는 기독교 계통의 일간신문만 비치되어 있고, 텔레비전 채널도 기독교 계통의 방송에 맞춰져 있다. 그리고 성구가 새겨진 큼직한 나무판이 벽에 걸려 있다. “네 시작은 미약하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 이 성구는 음식점에서도 자주 보게 된다. 그때마다 나는 “이 음식점이 다른 곳과는 뭔가 다르겠지” 하며 기대를 하지만, 사업주가 기독교인이라는 것 말고는 다른 걸 별로 느끼지 못한다. 

나는 이 성구가 본문의 맥락상, 사업의 번창을 축복해주는 말씀으로서 적합한지 의구심을 갖는다. 그리고 누가 보라고 이 성구를 달아 놨는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사업이 잘 되리라는 축복은 주인의 관심사이지 손님의 관심사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걸 왜 고객이 이용하는 사업장 중앙에 걸어놓는지 모르겠다. 사업장이 예배당인가? 다른 종교를 가진 손님들을 배려해야 하지 않나? 고객의 제일 관심사는 그 사업장이 흥하는 데 있지 않고, 좋은 상품이나 최고의 서비스를 받는 데 있다. 고객(顧客)을 외롭게 하면 ‘孤客’이 되고, 고통스럽게 하면 ‘苦客’이 된다는 말이 있다. 이발관이든 음식점이든 돈 많이 벌어 부자가 되는 걸 제일의 목적으로 삼는다면, 고객은 부자가 되는 데 필요한 수단적 존재로 밀려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고객이 ‘孤客’이나 ‘苦客’ 취급을 받을 수 있다. 결국 그 사업은 창대해지기는커녕 더 미약해지기 쉽다.

“창대하리라” 축복에 앞서,
성경적 직업관과 손님 섬기는 태도부터!

기사를 보니, 캐나다 어느 음식점 입구 벽에는 여러 장의 영수증이 붙어 있다고 한다. 거기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이 음식들은 값이 이미 지불되었습니다. 배가 고픈데 돈이 없다면 이 영수증 중 하나를 떼어서 주문해주세요” 수익의 몇 %를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기업도 있다. 일산의 어느 24시간 음식점은 밤거리를 헤매는 청소년들의 피난처 역할을 해주고 있다. 24시간 영업하는 편의점들도 위험에 빠진 청소년들을 구조해주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다. 가족과 함께 온 아이들이 핸드폰을 맡기고 들어가면 아이스크림을 주는 레스토랑도 있다. 품질 좋은 식자재로 정직하게 음식을 만드는 음식점이 있고, 손해를 보면서도 서민들에게 싼 가격으로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도 있다. 성공하는 음식점에는 이처럼 다른 기업과는 다른 가치관과 손님을 高客으로 섬기는 친절함이 있다. 

교회가 그리스도인에게 “부자가 되리라”고 축복만 하지 말고, “왜 이 사업을 하려는지” 성경적 사업관이나 직업관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내 고객은 누구인지”, “나는 그들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구체적인 태도를 가르쳐야 한다. 손님을 ‘高孤’으로 섬겨야 사업도 창대해질 수 있다. 진정한 창대함을 기대한다면, 사업장 벽이 아니라 마음 벽에 이 말씀을 새기고 일하면 좋겠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일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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