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1운동 100주년 기획 르포 취재 차 충남 병천 유관순 열사의 생가터와 아우내 장터 일대를 순례했다. 2월 말이라 바람은 매서웠지만, 햇살은 따스했던 기억이 난다. 유관순 열사는 1919년 만세운동으로 투옥됐고, 이듬해 3.1운동 1주기에는 옥중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결국 극심한 고문 끝에 방광이 파열됐고, 1920년 9월 28일 순국했다.
고향을 탐방하며 살펴봤을 때 유관순 열사가 지닌 애국의 뿌리에는 기독교 신앙이 있었다. 고향에서부터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했고, 이화학당과 정동교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유관순은 고향에서 조부와 부친이 이끈 3.1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애국은 신앙과 함께 가풍이었다.
유관순 열사와 같은 기독교인은 당시 전 국민 중 많이 잡아도 1.5%에 불과했다. 한반도 내 교회마다 3.1운동의 전초기지였고, 죽음을 각오한 기독교인들을 보면서 국민들은 용기낼 수 있었다. 독립선언문 서명자 33명 중 16명, 48명의 민족대표 중 23명이 기독교인이었다. 만세운동 이후 수감자의 22.4%는 기독교인이었다. 그야말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었다.
개신교 선교가 시작된 지 30여년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한국교회는 독립운동에 가장 앞장서 헌신하고 있었다. 신앙인들은 조국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하나된 모습이었다. 현재 수백개 교단으로 분열되어 있는 한국교회 현실과 맞물려 생각해볼 때 새삼 대단한 역사로 기억할 수밖에 없다.
그 역사의 재현을 지금 꿈꾼다. 세상 속에서 본이 되는 삶을 살았고 자신의 것을 내어놓았던 신앙의 모범이 필요하다. 교회의 신뢰도가 추락하고 교인들이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지 생각해 본다. 믿음과 능력만큼 살아내지 못하고, 이웃을 향해 손을 내밀지 못하고, 분열의 분열을 거듭한 채 하나 되지 못하는 교회의 모습을 돌이켜볼 때다. 말로만 본이 되고, 형식으로만 하나되는 것, 이제 그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