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창세기 18:16~21
찬송: 434장
어떤 비밀이라 할지라도 그 일을 공유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친분이 두텁게 있는 형성된 사람들일 것입니다.
하나님도 많은 사람들에게는 비밀이 있으시지만 몇몇 사람들에게는 비밀이 없으셨습니다. 오늘의 아브라함이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 대해 알려주셨습니다.“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창 18:18) 그 이유는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벗이라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믿음과 순종을 보시고 아브라함을 벗으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친구라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믿음과 순종으로 벗을 삼으셨듯이 예수님도 우리를 친구라 하시지만 아무나 친구로 명하시지 않습니다. 조건이 있다는 말입니다.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 15:14). 곧 주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만이 주님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친구된 자들에게 죄 사함을 허락하시고, 은혜를 주시며,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에게 친구라 명하신 주님과 더욱 아름다운 관계를 이어갈 수 있기 위해 힘을 기울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를 친구 삼으시고 모든 것을 알려 주시는 주님의 진정한 친구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세상의 핍박을 두려워 말라
사도행전 5:41
찬송: 342장
초기 기독교 시대에 사도들은 전도하다가 매우 심한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주님이 이미 겪으셨고 매를 맞으셨던 것을 알고 있었기에 도리어 감사하며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것을 기쁘게 여겼습니다.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 5:10) 주님 제자 베드로도 성경에서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3)
이러한 핍박을 받으면서도 기뻐할 수 있는 자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성경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14~16)
오늘 날 이 시대에는 조그만 어려움을 당해도 쉽게 포기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초대교회 사도들과 장로와 집사들이 박해와 핍박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여 감사하며 기뻐하므로 이겨내었던 것을 교훈삼아 우리들도 이 시대에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을 사랑으로 품고 온유한 마음으로 대응하여 이겨내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이 시대에도 핍박과 박해 속에서 감사와 기쁨으로 승리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잃은 영혼 찾아
마태복음 18:10~14
찬송: 497장
“애견을 찾습니다. 사례금 백만원 드립니다. 제발 찾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잃어버린 반려견을 찾는 포스터에 견주의 애타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집 나간 개, 14년 된 늙은 개, 초라하고 병든 개였고, 어디서나 다시 입양할 수 있는 잡종 발바리였습니다. 백만원이면 품종 좋은 개를 몇 마리 더 입양할 수 있는 액수입니다. 그런데도 견주는 반드시 찾고자 하는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성경에도 이와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는 이야기입니다. 백 마리 양을 기르던 주인이 한 마리를 잃어버립니다. 99마리 양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오직 잃어버린 한 마리 양에게 온 정신이 팔려있습니다. 수고 끝에 결국 찾고 기뻐합니다. 그동안에 힘들고 속상했던 마음을 보상받습니다.
잃은 양을 찾는 주인의 마음은, 잃은 영혼 구원하시려는 아버지의 마음을 대변합니다. 교회는 잃은 영혼을 찾는 곳입니다. 성도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찾으시는 영혼을 같이 찾는 사람들입니다. 잃은 영혼 찾기를 바란다면 잃어버린 자를 찾고 계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같이 공감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토록 찾고 찾으시는 예수님의 처절한 마음을 우리 가슴속에 담아야 합니다. 그렇게 주의 심정으로 영혼 구원에 동참하는 일은 참된 신자의 진솔한 모습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잃은 자 찾으시는 아버지의 마음 갖게 해 주세요.
사랑합시다
고린도전서 13:12~13
찬송: 220장
우리의 인생에서 사랑의 유형이 에로스, 스토르게, 필리아, 아가페의 사랑이 있으며 그중에 아가페 사랑은 가장 고귀한 사랑이며 실패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어 아무것도 아니요, 아무 유익이 없으며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왜 사랑해야 하는가?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고 인정받기 위해서입니다. 주님과 특별한 관계가 회복되고 끝까지 유지하는 사랑을 이루어 나가길 소망합니다.
둘째 누구를 사랑해야 할까요?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여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까 물을 때 “율법의 최고의 완성은 세상이 부러워하는 물질, 명예, 권력이 아니라 사랑(하나님과 이웃)이다” 라고 말씀하시며 “이를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셋째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요? 빌라델비아 교회는 작은 능력(사회적 지위, 지식, 가산, 명예가 없고 부족하고 어려운 중에도 환경을 초월)을 가지고도 하나님 말씀과 예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말씀을 붙들고 감정이나 환경에 흔들리지 않았으며 이웃을 자신같이 사랑하였습니다.
•오늘의 기도
예수님의 아가페 사랑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사랑으로 날마다 승리하는 하나님 자녀가 되길 축원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람들
민수기 14:26~30
찬송: 357장
성경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사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중에서도 집단적으로 안타까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세와 함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임재와 능력을 무수히 체험한 세대들이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가장 많은 원망과 불평을 쏟아냈습니다. 무슨 일만 생기면 먼저 나오는 것이 원망이었습니다.
성경에 42번 나오는 ‘원망’이라는 단어가 이들의 여정 가운데 22번이나 나옵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세 친구는 달랐습니다. 하나님이 기적을 베푸시지 않아서 풀무불에 타 죽을지라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어디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답은 바로 ‘믿음’입니다.
우리가 체험한 기적이 바로 믿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하나님의 역사하심,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경험했음에도 그것이 믿음으로 승화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니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과 불평이 일상이었고 그들의 말이 하나님께 들린대로 멸망한 참으로 안타까운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우리 또한 믿음이 없으면 그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도마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오늘의 기도
믿음이 없어 원망과 불평하는 삶이 아니라 믿음으로 끝까지 승리하는 삶 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창세기 26:12~25
찬송: 488장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자 명령입니다. 어떻게 해야 번성할 수 있을까요?
먼저는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지만 순종하지 않아서 밭은 엉겅퀴를 내고 땀을 흘려야 하며 해산의 수고를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삭이 우물을 포기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보 같아서가 아니라 더 큰 은혜를 주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말씀에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한계를 넘어서야 합니다. 식물에 임계점이 있듯이 우리에게도 한계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은 한계점에 머무르면 그대로 있는게 아니라 자연 감소하게 됩니다. 그래서 꾸준한 성실함이 필요합니다. 본문에서 이삭은 먼저 에섹(다툼)이라는 한계점을 만납니다. 이 단계를 넘지 못하면 절대 르호봇에 이를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싯나(대적)의 단계를 만납니다. 우리가 생활을 하다 보면 반드시 다툼과 대적의 단계를 만납니다.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는 평생을 르호봇에 이르지 못하고 대적과 다투다 끝납니다. 이삭이 그 해에 백 배나 소득을 얻었듯이 에섹과 싯나의 단계를 넘어 르호봇에 이르러 “우리가 번성하리로다”라고 고백하며 신앙의 한계를 뛰어넘어 번성의 복을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가 번성의 복을 누리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