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적 구조와 투기 욕심이 부른 재앙… “성경적 토지정의 회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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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적 구조와 투기 욕심이 부른 재앙… “성경적 토지정의 회복해야”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3.11.28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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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세계관으로 바라본 2023 사회이슈(1) 전세사기 // (하) 구조적 원인과 대책은?
특별법 발표됐지만 문턱 높아, “피해자 인정부터가 과제”
한국에만 있는 ‘전세제도’ 전세가 오르며 ‘갭투기’ 유발해
인식 개선이 최우선, 크리스천이 먼저 ‘선한 임대인’ 되길

“전세사기를 당하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전세 계약을 하지 않는 것이다.”

<전세지옥>을 저술한 전세사기 피해자이자 대한민국의 성실한 청년 최지수 씨는 피해 극복을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은 모두 취한 끝에 이렇게 외친다. 전세사기는 어떤 한 개인의 안일한 방심이 부른 사고가 아니라 기형적인 구조와 허술한 감시망이 낳은 사회적 재난이라는 것이다. 탐욕은 탐욕을 낳고 종장에는 파멸로 이끈다. 더 큰 부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욕망이 지금의 전세사기 사태라는 도미노를 만들어냈고 수많은 피해자들의 눈물을 불렀다.

폭풍을 만들어낸 나비의 날갯짓은 무엇이었을까. 11월 말까지 희년함께 토지정의센터장으로 섬겼던 이성영 전 센터장은 다른 선진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형적인 주거 형태, ‘전세 제도’ 그 자체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이번 주는 전세사기 사태를 부른 근본적 원인인 전세 제도, 그리고 ‘전세사기 특별법’의 문제점과 교회의 역할을 조명해본다.

대대적인 전세사기는 한국에만 있는 기형적 주거형태인 전세제도와 탐욕이 부른 투기에서 촉발됐다. 사진은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 서명운동을 벌이는 희년함께 회원들의 모습.
대대적인 전세사기는 한국에만 있는 기형적 주거형태인 전세제도와 탐욕이 부른 투기에서 촉발됐다. 사진은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 서명운동을 벌이는 희년함께 회원들의 모습.

피해자인데 피해자가 아니라니

정부도 손 놓고 바라보지만은 않았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정부는 지난 6월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을 내놨다.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피해자들은 정부의 대책에 기대를 걸었지만 이내 실망감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이철빈 씨는 가장 큰 문제로 ‘지나치게 까다로운 피해자 자격 요건’을 지목한다. 먼저 피해자로 인정을 받고 어떤 지원 대책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순서일 텐데 그 첫 번째 문턱을 넘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특별법에서 피해자로 인정해주는 요건은 네 가지입니다. 첫째로는 대항력을 갖출 것, 둘째론 보증금이 3억원 이하(지자체 여건에 따라 5억원까지)일 것. 여기까지는 괜찮은데 다음이 문제에요. 세 번째 요건은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을 것, 네 번째는 임대인의 기망 의도, 그러니까 사기를 치려는 의도가 명백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저 돈을 못 돌려받은 개인일 뿐인 피해자가 그 사실을 입증하기란 쉽지 않죠.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분들 중 대부분은 세 번째, 네 번째 요건을 통과하지 못해서에요.”

피해자들의 불만은 이뿐만이 아니다. 철빈 씨는 피해자들을 위한 대책이 대부분 실효성이 크지 않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특별법을 살펴보면 대책은 강제 경매를 유예, 또는 정지하거나 또 다른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철빈 씨는 “대출을 해주겠다는 것은 전세사기로 인해 아무 잘못도 없이 막대한 빚을 떠안은 피해자들에게 새로운 빚을 내서 빚을 갚으라는 것”이라면서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헛웃음이 나오는 대책들”이라고 토로했다.

어렵사리 피해자로 인정을 받고 나서도 산 넘어 산이다. 정책에 의한 지원을 해주기 이전에 피해자들의 소득이나 자산, 건축물 유형과 연령까지 따진다. 그러다 보니 더 나은 지원을 받기 위해선 차라리 소득이 없는 편이 낫다며 멀쩡히 다니던 직장에 사직서를 던지는 피해자도 나온다.

“그나마 많지 않은 지원이라도 더 나은 조건으로 받기 위해 피해자들은 아등바등 애씁니다. 심지어는 산정되는 소득을 줄이기 위해 이혼을 택한 피해자 부부도 목격했어요.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한숨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피해자들은 당장의 일상이 너무 힘들고 절박한데 지원 대책은 피부에 와닿지 않아요.”

 

기형적인 전세 공화국

“지금 이 전세사기극의 주연은 갭 투기 사기꾼들이고 조연은 그들과 결탁한 공인중개사들이에요. 그런데 이 무대를 세팅한 사람은 다름 아닌 정부입니다.”

이성영 전 센터장은 지금의 전세사기극을 연출한 주범으로 정부를 꼽았다. 세입자들로 하여금 전세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든 정책이 지금의 전세사기 사태를 촉발했다는 것이다. 다만 정부에게도 악의는 없었다. 눈앞의 주택문제 해결을 위해 전세 관련 혜택을 조금씩 늘리던 것이 결국 화를 불렀다.

돈이 없으면 월세, 돈이 조금 모이면 전세, 더 자금이 생기면 매매를 통해 자가 주택을 마련하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이었다. 그런데 2008년 전세자금 대출이 등장하며 균형이 무너졌다. 낮은 이자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보니 너도 나도 전세로 발길을 돌렸다. 대출 심사만 통과된다면 기존 월세보다 훨씬 낮은 금액의 이자만 감당하면 되니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OECD에 가입된 선진국 중에 전세제도가 있는 것은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외국인들은 전세제도를 굉장히 이상하게 생각해요. 생판 남에게 무얼 믿고 그런 큰돈을 맡겨놓을 수 있느냐는 거죠. 우리나라에서는 전세가 월세에서 매매로 가는 나름의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해왔지만 선진국으로 발전할수록 없어지는 것이 바람직했어요. 하지만 전세자금 대출이 등장하며 가장 흔한 주거 형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전세자금 대출로 수요가 전세에 집중되다보니 시장의 법칙은 자연히 전세 가격을 상승시켰다. 문제는 전셋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더니 집의 매매 가격과 동일한 수준까지 이르렀다는 점이다.  전세가가 매매가 수준에 근접하자 임차인의 전세보증금만으로 집을 사는, 이른바 ‘무자본 갭투기’가 등장하고 말았다. 계약이 종료되면 다음 세입자에게 전셋값을 받아서 이전 세입자에게 돌려주는, 일명 ‘돌려막기’로 버티며 집값이 오르기를 기다리는 행태다. 문제는 전셋값이 예상을 벗어나 크게 떨어지면서 발생했다.

“만약 2억짜리 집을 사서 2억에 전세를 주고 그 돈을 메웠다고 해볼게요. 전셋값 2억이 유지가 된다면 괜찮은데 가격이 1억5천 쯤으로 떨어졌다면 문제가 생깁니다. 다음 세입자에게 받을 수 있는 돈은 1억5천뿐인데 기존에 살고 있던 세입자가 나갈 때 줘야 하는 돈은 2억이 되어버리는 거죠. 여유 자금 없이 전셋값으로 갭투기를 했던 집주인에게는 그 차이를 돌려줄 여력이 없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마치 전세사기를 당했을 때와 유사한 사태가 발생해요.”

이제는 전세제도에서 탈피해서 월세와 매매라는 투트랙 주거형태로 연착륙돼야 한다는 것이 이성영 전 센터장의 생각이다. 전세제도가 사라지긴 쉽지 않겠지만 집값에 근접하는 전세주택은 사라지고 보증금이 주택가격의 절반을 넘지 않는 반전세, 보증부 월세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지금 전세 제도에 주는 금융 혜택을 월세로 전환한다면 선진국형 주거형태에 근접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기형적인 형태인 전세제도 자체가 사라진다면 전세사기의 피해자도 더 이상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투기의 고리 끊고 선한 임대인으로

“예전 전셋집에 살았을 때의 일입니다. 집에 물이 새고 문제가 생겨서 집주인한테 연락을 한 일이 있었고 다행히 잘 해결을 해주셨죠. 연락을 하며 카톡 프로필을 보게 됐는데 성경 문구를 많이 써놓으신 신실한 크리스천이셨어요. 그런데 전화 통화를 하면서 ‘나는 이 집이 매매가와 전세가가 같아서 내 돈 하나도 안 들고 샀다’고 자랑스레 말씀하시며 저에게도 권하시더군요. 쉽게 말해 무자본 갭투기를 권유해주신 거죠.”

이성영 전 센터장은 경험담을 털어놓으며 허탈하게 웃었다. 이야기 속 집주인에게 나쁜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자신도 큰 이득을 봤기에 좋은 방법을 소개해주려 한 것뿐이다. 다만 심각한 것은 크리스천조차 부의 증식을 위한 투기 행위에 일말의 문제의식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생판 모르는 저에게도 자꾸 권해주실 정도니 교회에서도 이런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이 오갔겠어요. 부동산 투기, 특히 무자본 갭투기가 얼마나 많은 청년들을 힘들게 하는지는 전혀 의식하지 못하신 채로요. 교회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을 꼽는다면 부의 축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세태에 선지자적 메시지를 던지고 의식을 전환하는 일일 겁니다.”

기독교인은 자산을 늘리면 안 된다는 주장은 결코 아니다. 다만 시세 차익으로 불로소득을 추구하는 부동산 투기라면 얘기가 다르다. 성경은 “모든 땅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분명히 선언한다.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김근주 교수는 “투기로 수익을 봤다면 그로 인해 누군가는 손해를 봤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크리스천이라면 부동산 투기에서 멀어질 것을 권면했다.

먼저 목회자부터 성경적 토지 정의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설교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교인들에게 확산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집을 소유하고 있는 크리스천의 역할도 크다. 희년함께는 “전세 집값을 가능한 동결해 공정하게 받고 의도치 않은 부동산 시세 차익이 생겼을 때는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주거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두 채 이상의 주택은 정직한 가격에 매각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고 조언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역시 ‘자발적 불편운동’의 일환으로 ‘선한 임대인 운동’을 벌이며 △임대료를 낮추고 보증금과 전세금을 올리지 말아줄 것 △임차인의 경제적 어려움을 살필 것 △가까운 이웃을 돌볼 것 등을 제안하기도 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이철빈 씨는 “교회가 대안 주거 형태에 관심을 가지고 셰어하우스나 협동조합 주택, 공동체 주택을 시작하면 어떨까 제안하고 싶다. 전세사기로 당장 생계가 어려운 청년들에게는 일시적으로 생계자금을 지원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면서 “교회에서 부동산이나 토지 정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터부시되는 경향이 있다. 크리스천일수록 조금 더 성경적 토지 정의 관점을 가지고 세입자들이 공정하게 하나님이 주신 주거권을 누리도록 노력하는 문화가 형성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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