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저녁마다 말라기 말씀을 강해하고 있다. 말라기는 구약성경의 마지막 부분이며, 예수님이 오시기 5백 년 전에 기록된 말씀이다. 말라기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는 세 가지 영적인 암흑기였다.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가 끊어졌고, 지도자들은 타락했으며, 백성들의 타락도 극에 달했다. 하나님과의 약속은 생명을 담보로 하는 언약인데, 백성은 이 언약을 일방적으로 파괴해버렸다. 그 시대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배신한 안타까운 시대이다.
시대를 뛰어넘어 어느 때든지 변치 않으며, 어떤 환경에서도 적용되는 것이 진리이다. 시대는 변해도, 예수 그리스도 생명의 복음은 변치 않는다. 우리는 변해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한결같다. 하나님은 우리와 의논하지 않으시고 일방적으로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사랑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셨다(요일 4:16).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은 사랑한다는 말이다. 진정한 사랑은 국경도 뛰어넘고, 환경도 뛰어넘는다. 십자가는 사랑의 완성이다. 수직적으로는 하나님 사랑이고, 수평적으로는 인간 사랑이다. 십자가는 생명까지 주신 조건 없는 사랑이다.
진정한 사랑은 주는 것이다. 누군가를 중심으로 사랑하면, 그 사람에게 무엇을 받을까가 아니라, 무엇을 더 줄 수 없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데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자꾸 받으려고만 하고, 자신이 원하는 만큼 받지 못한다고 불평한다면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은혜 받으면 하나님께 무엇을 더 받을까가 아니라,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까를 생각하게 된다. 몸과 마음을 드리고, 시간과 소유를 드린다. 헌신하고 충성하면서 한없이 기쁘고 행복하다.
당신은 어떠한가? 환경과 현실에 함몰되어, 하나님이 언제, 어떻게 나를 사랑했느냐고 따지고 있지는 않은가? 에베소 교회처럼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은 아닌가? 버린 것은 무의식적인 실수가 아니라, 고의적인 배신이다.
타락 중에 영적 타락이 가장 무서운 것이다. 보이지 않아도 뿌리가 병들면 나무가 병이 들듯이, 영적으로 병이 들면 신앙도, 가정도, 나라도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고 만다. 회복하지 아니하면 축복의 촛대를 옮기겠다는 주님의 경고를 들어야 한다(계 2:5).
형식적인 신앙에서 다시 일어나야 한다. 하나님을 향한 처음 사랑과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