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늘 변화와 성장을 추구한다. 그런데 대부분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모른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변화와 성장을 추구할 수 없다. 우리의 문제점을 해결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 인생에 있어 정말 중요한 사건,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될 것이다.
자신의 고질적인 문제와 단점을 개선하지 못해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이 있다. 직장에서 해고당하거나, 이혼당하거나, 금전적 손해를 입거나, 불면증에 걸리거나, 자존감을 상실하기도 한다. 이러한 불행한 경험을 하는 이유는 자신의 문제와 그것을 해결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지만, 결국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롬 7:15~16) 이 말씀처럼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만 지속적으로 행하지 못할 때가 많다. 또한 하지 말아야 할 일에는 지속적으로 행하기도 한다. 마치 두 개의 자아가 우리 안에 있는 것 같다.
바울도 여전히 죄인의 본성을 따르려는 자신의 자아로 인해 고뇌하고 있다. 우리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라고 고백하지만, 아직도 죄의 본성을 따르고자 하는 자신에게 절망한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는 죄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바울은 아담의 범죄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전염병처럼 퍼졌다고 말한다. 죄를 우리의 행동으로 인한 결과가 아닌, 우리가 악을 행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묘사하고 있다. 우리가 스스로 죄를 고치기 힘들었던 이유는 바로 우리로 하여금 악을 행하게 하는 죄의 존재를 간과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아담 안에 속한 자라고 말한다. 아담의 죄로 인해 모든 인류가 죄에 오염되었다. 이것이 우리의 문제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죄의 자녀로 태어났다. 그 누구도 우리에게 죄를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죄를 행한.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롬 5:6) 그래서 바울은 우리를 ‘경건하지 않은 자’라고 불렀다. 불완전한 존재는 불경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며 우리를 향한 초월적인 사랑, 완전한 사랑을 보여주셨다.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고, 앞으로도 할 수 있는 사람은 결단코 없을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놀라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 죄사함을 받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인해 죄의 권세는 무너져 내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죗값을 전부 지불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의인이라 여김받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본질적인 변화에 대해 무관심하고 무지해서는 안 된다. 구원과 천국만을 생각하며, 현재의 삶과 변화에 무감각해져서도 안된다. 새로운 삶,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성경의 표현은 먼 훗날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 일상의 변화에 관한 문제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이 필요하다. 우리 안에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경건하지 않은 죄인이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본질적으로 변화될 것이다.
광음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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