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좋은 이 가을, <취리히 성경해설 성경전서>(대한성서공회, 2021)를 읽고 있다. 스위스 취리히 개혁교회 총회에서 발간한 책의 번역본이다. 21세기 초까지 발전해 온 성서학의 열매를 일반 독자들이 맛볼 수 있게 해 준다. 세상에 좋아져서, 독일어와 스위스어를 몰라도, 개혁교회의 원조인 독일과 스위스 성서신학의 열매를, 여기서 풍성히 만끽하고 있으니 감격스럽다.
평소에 궁금했던 것을 새롭게 풀어주는 대목이 계속 나온다. 몇 가지만 소개한다.
1. 창세기 1장 27~28절의 해석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 구절은 생명 세계를 다스릴 권리가 사람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되어 왔고, 오늘날 자주 비판을 받는다. 사람들이 지구 환경을 파괴하게 한 책임이 이 구절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 중심주의로 치달아 자연을 함부로 해치도록 부추겼다는 비난이다.
취리히 성경해설을 보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 사람의 ‘다스림’에는 한 가지 중요한 요소가 빠져 있었다. 자신에게 딸린 것들을 마음대로 죽이고 살릴 수 있는 권리는 없었다. 동물도 사람도 서로 다른 쪽을 먹고 살 권리가 없었다. 홍수 전의 채식도 그 증거다. 각종 동물 함께 사는 것이, 하나님이 의도한 창조 세계의 원래 모습이다. 무분별한 육식이 오늘날 얼마나 지구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지 절감하는 이때, 이 해석은 의미심장하다.
2. 여자 창조(창세기 2장 21~22절)
요즘은 애완동물의 시대다. 애완견, 애완묘를 비롯해 각종 동물들을 집에서 기르면서, 동물병원이 성업 중이다. 동물 호텔에 장례식장과 추모공원도 나와 있다. 이 현상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은 배필 없이도 살 수 있는 존재인가 하는 의문을 품을 만하다. 이에 대해 취리히 성경해설은 이렇게 답한다.
“사람은 동물 세계에서 짝을 발견하지 못한다. 창조주는 사람에게서 한 부분을 꺼내어 그것으로 그의 짝을 창조하신다(2:21~22). 성경을 읽는 사람은 여기서 갑자기 전체 이야기의 요점을 이해하게 된다. 외로움으로 괴로워하는 아담은 다름 아닌 바로 남자이다. 그의 외로움을 사라지게 돕는 배필은 여자이다! 남자는 여자에게서 ‘자신과 같은 사람’을 발견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마주 보면서 사람(사람들)의 외로움은 끝이 난다.”
애완동물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명료하게 일깨워주는 해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여건 때문에, 배우자 대신 애완동물로 그 외로움을 해소하려는 시도는 가엾은 일이다.
3. 소돔 사람들의 악(창세기 19장)
소돔 사람들을 멸망으로 이끈 악은 무엇일까? 동성애일까? 이 문제에 대해, 취리히 성경해설은, 소돔 사람들의 행동이 머금고 있는 의미를 새롭게 통찰하게 한다. 동성애 이전에 사회적 약자인 나그네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임을 지적한다.
“(나그네를 후하게 대접한 아브라함이나 롯과는 달리)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점이 실제로 증명되기 시작한다. 소돔의 남자들이 롯의 집을 에워싼다. 소돔 사람들은 그들에게 온 사람들(두 천사)과 상관하리라(5절)고 하면서 그들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전통적인 풀이에 따르면 이런 것들은 대부분 동성애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어왔다. 그런데 여기서 또한 주목할 것은, 사사기 19장의 비슷한 이야기에서처럼 여자이든 남자이든 낯선 사람들을 욕보이려는 욕구이다. 어떤 사람의 아내나 딸이 성폭행당하면, 그 사람의 명예도 손상되는 것이다! 선을 넘어서는 파괴의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과학만 발전하는 게 아니라 성서신학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이 시대에 살아 그 열매를 맛보고 있으니 무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