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기 초대교회 문서들을 보면, 성도들의 이름 앞에 붙이는 별칭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 별칭이 티테디오스(Titedios)이다. 티테디오스 바울, 티테디오스 요한이라 불렀다. 티테디오스라는 말은, ‘결코 염려하지 않는 사람’이란 뜻이다.
초대교인들 이름 앞에 티테디오스를 붙인 이유가 있다. 당시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집을 빼앗기고, 직장을 잃고, 감옥에 가고, 핍박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염려에서 해방된 자’라는 것을 확실하게 고백하고 싶어서, 티테디오스를 붙였다. 성령이 충만했던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고백이다. 순교를 각오한 증인의 삶이다. 피가 모자란다고 물을 섞을 수는 없다. 진리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믿음의 고백이다. 이것은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염려하지 않는 티테디오스라는 고백이다.
그리스도인은 신앙고백이 분명해야 한다. 믿음을 고백할 때, 음부의 권세도 이기고 천국 열쇠도 주신다(마 16:18-19). 신앙은 아는 게 아니라 믿는 것이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르다. 믿고 알았다는 고백이다(요 6:69). 아는 것이 지식이라면, 믿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이다.
또한, 개혁주의자들이 고백한 신앙고백이 5대 솔라(Sola)이다.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다. 이것을 목회와 삶의 현장에 실천하는 7대 운동이 백석 교단의 정체성이요 신학사상인 개혁주의생명신학이다. 신앙의 영성과 야성을 잃고 걷잡을 수 없이 세속주의에 함몰되어 가는 안타까운 이 시대에, 생명운동은 목회의 본질이요 영성의 회복임을 고백한다.
코람 데오,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늘 고백하자. 인생을 되는 대로 살지 말고, 되도록 살아야 한다. 신앙생활 하면서도 염려와 불안이 마음을 지배하면 삶의 기초가 흔들리고 만다. 성도는 사는 방법이 다르다. 한 해의 추수를 준비하는 지금 여전히 우리 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안보 어느 것 하나 건강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은 결코 염려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티테디오스의 신앙의 고백을 드릴 수 있어야 한다.
주여!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말씀과 기도, 섬김으로 승리하는 간증의 주인공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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