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삶]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행복하게 어울리는 ‘하나님 나라’ 꿈꿔요”
상태바
[신앙과 삶]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행복하게 어울리는 ‘하나님 나라’ 꿈꿔요”
  • 김수연 기자
  • 승인 2023.09.19 18: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신앙과 삶: 밀알복지재단 장애인식개선센터장 정규태 목사
밀알복지재단 장애인식개선센터장 정규태 목사.

어느 날 갑작스러운 열차 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한 여인이 있다. 하지만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혹독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기쁘게 나아가는 그녀에게 반해 결혼, 슬하에 두 자녀를 두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 감동적인 러브스토리를 자아낸 사람이 있다. 바로 밀알복지재단 장애인식개선센터장 정규태(53·혜명교회) 목사다.

그동안 사회복지관 및 여러 기업에서 장애인식개선강사로 활동하며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해소에 일조해온 그는 지난해부터는 밀알복지재단에 새 둥지를 틀고 중증 발달장애인 예술단 브릿지온을 매니지먼트하는 일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를 잇는 다리이자 사랑의 메신저로 활약하고 있는 정 목사에게서 은혜로운 신앙고백을 들어보았다.


말씀을 실천하는 장애인 사역 
장애인을 돕는다고 하면, 보통 소진이란 단어를 떠올릴 겁니다. 그렇지만 저는 하루아침에 지체장애인이 됐음에도 감사를 잃지 않았던 아내를 만나 오랜 방황을 끝낼 수 있었고, 많은 장애인들을 접하면서 오히려 제 상처가 치유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위에 종종 목회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보면 장애인 활동 지원사를 해보라고 권합니다.”

반평생 장애인과 동고동락해온 정 목사. 그는 장애인 인권과 인식 개선을 위해 걸어온 길에 대한 소회를 이같이 밝혔다. 20대 후반 아내를 따라 여러 복지기관에서 장애인을 섬기기 시작해 2017년 장애인식개선강사가 된 데 이어 작년에는 밀알복지재단 장애인식개선센터장으로 부임하기까지. 쉼 없이 달려온 정 목사의 삶은 장애인세 글자를 빼고는 정의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가 장애인들과 인연을 맺은 계기는 언제였을까. 때는 1991년 총신대 재학 시절 장애인 봉사활동을 펼치는 밀알동아리에 가입하면서다. 그러나 정 목사가 장애인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활짝 열기 시작한 건, 지금의 아내인 주은미 사모와의 운명적 만남 덕분이었다.


사실 저는 장애인 사역은 제 길이 아닌 줄 알고, 청소년 목회를 할 작정이었어요. 그래서 부천에서 청소년 단체를 운영했는데 한번은 수련회 강사로 제 아내가 초청됐습니다. 스무 살 사고로 두 다리를 절단하고 1년간의 재활을 막 마친 상태였죠. 그런데 놀랍게도 아내가 강의 후 자신의 의족을 벗어놓고 맨살을 드러낸 채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게 아니겠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정 목사는 적잖이 당황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저도 처음에는 무섭고 낯설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아내와 가까워지면서 내면의 아름다움에 더 주목하게 되더라고요. 특히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가치관, 신실한 믿음에 도리어 제가 더 의지한 것 같아요. 정신적으로는 저보다 훨씬 더 건강한 아내를 보면서 오해와 편견이 사라진 것이죠.”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이 교제하던 90년대는 사회복지가 막 태동한 무렵으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 수준이 무척 낮았다. 따가운 시선과 차별이 난무한 까닭에 사회 활동은 꿈도 못 꾸고 시설에 수용되거나 집에서만 지내는 재가장애인이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늘 밝고 씩씩했던 주 사모와 마침내 화촉을 밝힌 정 목사는 본격적으로 장애인 사역에 뛰어들었다. 사회복지에 대한 소명을 받고 강사 일을 하던 아내를 보조하기 위해 무수한 장애인 시설 및 복지단체를 방문한 그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을 마주했다.


장애인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스트레스이고 힘에 부치기는커녕 정말 즐겁고 힐링 됐어요. 그들과 의사소통이 전혀 어렵지 않았고, 점점 친해지면서 내가 장애인들과 잘 대화할 수 있다는 은사를 깨달으며 행복해했죠. 저의 사명이 장애인 사역에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정 목사는 이 과정에서 장애를 이유로 차별 대우를 받는 열악한 현실도 목도했다. 교회에서 장애인들의 자립을 도우면서 고용 문제에도 눈을떴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 가족이 겪어야 할 남모를 고충이 눈에 들어왔다. 이중고 삼중고에 안타까움을 느끼던 그에게 급기야 아내는 누구보다 장애인과 그 가족의 삶을 공감하는 당신이 세상에 알려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들의 메시지를 가장 잘 전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아내의 조언이 가슴에 와닿았다는 정 목사는 그길로 장애인식개선강사가 되었다. 그렇게 2017년 또 하나의 책임을 짊어진 그는 지금까지 7년간 전국의 중고등학교 및 기업·기관들을 다니면서 장애인들의 인권보장 차별금지 인식 개선 직장 내 처우 개선 성교육 관련 내용을 강의했다.

그는 강사라는 멋진 직업은 내게 중요하지 않다다만 성경에 나온 예수님의 가르침을 설교 강단에서 입으로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삶의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장애인과 그 가족들을 섬기면서 말씀을 살아낼 수 있어서 좋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안정적인 자립 기반 마련되길
정 목사는 20226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밀알복지재단 브릿지온(Bridge On)에서 또 한 번 새로운 발걸음을 뗐다. 브릿지온은 밀알복지재단이 장애인들의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인식 개선을 꾀할 목적으로 창단한 장애인 예술단이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주관하는 문화체험형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지원사업의 공식 수행기관이기도 하다.

브릿지온에 소속된 중증발달장애인 12명은 음악과 미술 두 분야에서 각각 브릿지온 아르떼(Arte)’브릿지온 앙상블(Ensemble)’이란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4명의 작가로 구성된 브릿지온 아르떼는 서양화·일러스트 등 다채로운 장르의 작품을 전시로 선보인다. 8명의 단원으로 이뤄진 브릿지온 앙상블은 바이올린·첼로·피아노 등의 악기를 연주하며 공연을 펼친다.

개성과 솜씨 넘치는 이들의 작품과 연주를 보고 듣고 있노라면, 누구라도 맘속에 쌓았던 편견의 벽을 무너뜨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발달장애인들의 진솔한 강의는 진한 여운을 남기며 가슴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여기서 정 목사의 역할은 12명의 발달장애인은 물론 부모들을 세심하게 챙기고 연중 60~90회가량 치러지는 행사들을 관장하는 것이다.

정 목사는 브릿지온 발달장애이들은 매일 작업실로 출근해 창작 활동에 매진한다. 더불어 장애인식개선강사로 활약하며 스스로 자립 기반을 닦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출중한 재능이 있어도 안정된 일자리를 바라기는 하늘에 별 따기인 현실 사정에 비춰볼 때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이런 연유로 그는 장애인의 업무 능력에 대한 오해나 잘못된 선입견을 바로잡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 힘들어하는 장애인들이 너무도 많다성인 중증발달장애인들의 문화예술 활동을 서포트해 고용안정을 촉진하고 비장애인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통합을 도모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강조했다.

사역에 몰두하다 보면 보람도 찾아오곤 한다. 일단 교육에 대한 수요가 높아질 때다. 이를 방증하는 것이 올해는 이미 6월에 60회의 전시·공연이 끝났다는 사실이다. 정 목사는 심지어 유료라도 괜찮으니 꼭 와달라고 요청하는 기업들도 더러 있다고 귀띔했다.

강의 후 기업 관계자들의 피드백도 상당히 달라졌다. “예전에는 장애인도 고용해달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잘 안 듣는 분위기였죠. 혹은 취업시킬 용의는 있지만 정작 대우 방법을 몰라 망설이는 경우도 많았고요. 하지만 요즘은 장애인 고용에 관심을 보이는 기업이 많아졌을뿐더러 실제로 이를 행동으로 옮겼다는 후기들도 들려옵니다.”

정 목사의 진심이 통했을까. 장애인들은 밀알복지재단의 장애인식개선센터를 친정집처럼 드나든다. 그는 이곳을 찾는다는 건, 그들도 은연중에 존중을 느끼고 편안한 안식처로 여겼기 때문은 아닐까라며 무엇보다 12명의 단원들이 전시와 공연으로 비장애인들과 소통하고 어울리면서 변화하고 성장하는 걸 지켜볼 때 가장 뿌듯하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장애인은 마냥 부족하거나 못하는 일이 많은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에게도 충분한 교육과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멋진 일들을 해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아쉬움도 존재한다. 사회의 인식은 빠르게 바뀌는 것에 반해 교회는 제자리걸음인 것 같을 때 그러하다. 정 목사의 말에 따르면, 일부 교회는 구원에 대한 확신 여부를 따지면서 장애인들에게 세례를 주는 것을 꺼린다. 비슷한 연유로 장애인들은 제자화도 힘들 것이라고 단정하는 성도들도 많다.

장애를 결핍이 아닌 다름으로 바라보면 좋겠다는 그는 너무 특별하거나 너무 부족한 존재가 아닌 그냥 평범한 이웃으로 여겨달라는 의미라며 장애인들은 무조건 돌봄이나 배제의 대상이 아니라는 편견을 크리스천들부터 먼저 깨뜨려야 할 것이다. 종국에는 장애인식개선센터가 더 이상 필요치 않아 사라지길 바란다고 웃어 보였다.

누군가 소명은 자신의 삶의 그림자 속에 피어난다고 말하더군요. 뒤돌아보니 사람 좋아하는 제게 하나님이 가장 온전한 사람들을 붙여주신 것 같습니다. 거짓 없이 진실하게 살아가는 장애인들과 함께 걸으며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꿈꿉니다.” 

정규태 목사가 장애인식개선 교육을 하고 있다.
브렛지온 아르떼 소속 발달장애인 작가들의 모습.
브릿지온 앙상블 단원들이 연주를 하고 있다.
브릿지온 앙상블 단원들이 연주를 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