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심은 게으름처럼 현대인들이 즐겨 사용하지 않는 용어입니다. 탐심이란 용어 대신 욕심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탐심은 7대 대죄 중의 마지막이며, 십계명 중 ‘탐내지 말라’는 죄와 관련됩니다. 탐심은 욕심의 시작이며, 물질과 재물을 움켜쥐고 소유하려는 지나친 욕망입니다. 탐심은 속임수, 도둑질, 시기, 질투, 살인, 전쟁 등 이기심으로 채워집니다.
‘마이다스의 손’이란 용어는 탐욕을 경계하기 위해 만든 우화 목적과는 다르게 일부 그리스도인은 물질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야곱은 장자권을 탐냈습니다.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을 원했습니다. 유다는 은 삼십에 스승 예수를 팔았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탐욕 때문에 일찍 죽임을 당했습니다. 탐욕 때문에 더 큰 곳간을 지으려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도 있습니다.
돈을 버는 수단은 그 과정도 정당해야 합니다. 하지만 탐욕은 편법으로 돈을 축적합니다. 불법 마약을 밀매하는 범죄자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파괴하면서도 죄책감이 없습니다. 술을 파는 사람들은 음주로 인한 교통사고와 피해자를 고려하지 않습니다.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가정파괴, 폭력으로 고통당하는 가족들, 관련된 범죄들에 관심이 없습니다.
인간이 합리적으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필수적 요소들이 있습니다. 건강을 위한 음식, 몸의 보호를 위한 의복, 안식을 위한 거처, 질병으로부터 보호와 치료를 위한 의료적 돌봄은 필요합니다. 이러한 필요를 위해 사람들은 돈을 벌어 충당할 때 행복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가장 좋은 옷, 가장 좋은 집, 가장 비싼 의료 전문가를 찾는 행위는 행복하고 만족한 삶을 사는 필수는 아닙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12:15)” 설교자인 저를 포함하여 우리는 이러한 탐욕은 우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설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인은 누구라도 인공으로 만든 어떤 신의 우상이나 그 형상을 신봉하지 않고 파괴할 것입니다. 절대로 우상을 숭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탐욕은 우리의 돈과 시간, 심지어 가족을 희생하도록 명령하는 인간이 만든 형상이 보이지 않는 신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탐심을 만족하기 위해 친구, 부모, 배우자, 교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까지 포기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주일을 범하는 직업을 갖게 하여, 주일 예배를 결석하도록 허용합니다. 아버지는 잔치 비용을 벌기 위해 주일은 물론 밤낮으로 일하고, 그 결과 배우자와 자녀들을 소홀히 합니다. 아내들은 자신을 만족시킬 이기적 목표를 달성하도록 남편과 가족이 돈을 벌도록 강요할 것입니다. 예전 선지자 시대에도 있던 교묘한 우상숭배였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의 신용카드 빚은 하나님 백성들을 끝없이 회전하는 쳇바퀴에 올려놓았습니다. 교회가 빚이 너무 많아서 필요한 프로그램, 선교헌금, 복음 전도를 위한 충분한 재정을 제공할 수 없습니다.
탐심은 우리에게서 풍성한 삶을 앗아갑니다. 처음에는 죄가 선하고 풍성한 삶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를 파멸시킬 교활한 사탄의 거짓말입니다. 선하고 풍성한 삶은 오직 예수 안에서만 찾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망치는 죄로부터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선한 목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준비한 풍요롭고 충만한 삶을 누리라 합니다. 속에 숨은 탐심을 공개하고 오직 예수 안에서만 만족하기를 결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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