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총회 구호팀 지난 1~6일 튀르키예 하타이 주 방문
동남부교회재단 통해 사만다으 이재민에 운동화 전달해
바나바와 바울이 복음 전한 안디옥, 영적 메시지 찾아야
생과 사를 가른 것은 한순간이었다. 2023년 2월 6일 새벽, 튀르키예 동남부에서 발생한 지진은 10개의 도시를 붕괴시켰다. 건물이 무너져 내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10초 안팎. 땅과 하늘이 흔들리는 진동과 함께 도시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진도 7.8의 강진. 지표면에 균열이 발생하며 건물의 기초가 파괴되는 큰 피해를 입히는 수준이다.
튀르키예와 시리아 지역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최소 5만9천여명의 사망자, 12만9천여명의 부상자, 그리고 이재민 2천300만명으로 집계됐으며 총 26만4천 채의 건물이 파괴됐다. 피해 총액은 840억 달러로 한화로 110조에 달한다. 이 엄청난 재앙 앞에 한국교회는 기도와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재난 소식에 곧바로 튀르키예로 달려간 긴급구호 소식과 각 교단의 모금 활동, 그리고 지속적인 기도가 계속됐다.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총회도 지진 소식을 접한 직후 목회서신을 통해 ‘특별기도주간’을 선포하고 사순절 기간에 집중 모금운동을 전개했다.
백석총회는 지난 1~6일까지 튀르키예 동남부에 위치한 아다나와 하타이를 방문, 피해현장을 직접 돌아보고 이재민들에게 구호품을 전달하고 돌아왔다. 4박6일의 여정을 통해 대지진 3개월째를 맞이한 튀르키예의 현재 상황을 전한다. <편집자 주>
총회 구호팀에는 제2부총회장 이규환 목사를 팀장으로, 총회 서기 김동기 목사와 세계선교위원장 임인기 목사가 참여했다. 지난 5월 1일 인천공항에서 이스탄불을 거쳐 아다나공항에 도착한 것은 출국 후 꼬박 15시간이 넘게 지나서였다. 밤늦은 시간 아다나는 네온사인이 화려한 조명을 빛내고 있었다. 언제 지진이 있었냐는 듯 도시는 평온했고 일상은 바쁘게 돌아갔다.
이튿날 아침 8시, 구호팀은 현지 선교사의 인솔 아래 하타이로 향했다. 하타이 주에는 비교적 큰 피해를 입은 안타키아와 사만다으 지역이 포함되어 있었다. 총회 파송 이형곤 선교사는 아내 정윤주 선교사와 함께 일주일 전 사만다으 지역으로 미용 봉사를 다녀왔다. 사전에 지진 피해 현장을 답사하고 이재민들의 필요를 확인한 이 선교사는 “자신들도 뉴스로 보던 것보다 훨씬 참혹한 현장에 슬픔을 감출 수 없었다”고 말했다. 재난지역에 속해 있지만 평범한 일상을 공유하고 있는 아다나에서는 지진 피해를 체감할 수 없었다. 선교사가 사역하는 이스탄불은 그보다 훨씬 먼 거리에 위치해 있다. 정윤주 선교사는 “이스탄불에서는 이미 지진을 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진 피해를 입은 이재민들은 자신들이 사람들의 관심에서 잊혀질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 쌓아올린 모든 것이 무너졌다
승합차를 타고 2시간 반쯤 달리자 하타이로 들어섰다. 하타이가 시작되는 초입부터 지진 피해가 목격됐다. 거리 곳곳에 무너진 건물이 있었고 중간 중간 컨테이너 하우스와 천막촌이 눈에 띄었다.컨테이너 하우스를 싣고 들어가는 트럭과 무너진 잔해에서 철골을 골라 나오는 트럭이 교차했다.
구호팀은 먼저 성경 속 도시 안타키아로 향했다. 도시 초입부터 무너져 내린 건물이 보였다. 10층 높이의 아파트도 2~3층 높이의 빌라도 속절없이 주저앉았다. 20도쯤 기울어진 건물, 완전히 조각난 콘크리트 잔해, 한쪽 벽이 잘려나가 실내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아파트까지 지진 당시 주민들이 겪었을 충격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이 쌓아올린 것들이 대자연의 위력 앞에 얼마나 무기력한지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망연한 눈길로 피해 현장을 바라보던 김동기 목사는 “사람이 살면서 이렇게 처참한 환경을 맞이할 수 있을까 마음이 아프고 슬프다”고 말했다.
처참하다는 말 그대로 안타키아 중앙이며 외곽까지 성한 건물은 하나도 없었다. 이미 무너진 도시에는 사람도 살지 않았다. 이재민들 가운데 상당수는 고향을 떠나 친척집으로 가거나 다른 도시로 이주했고, 갈 곳 없는 가난한 이재민들은 인근 도시에 천막을 치고 자리를 잡았다. 튀르키예 정부는 재건을 약속했지만 다시 안타키아로 돌아오기란 요원해 보였다. 거대한 폐허를 다시 세우는 일이 쉽지 않게 느껴졌다.
이규환 목사는 “사도 바울의 대표적 선교지인 튀르키예와 안디옥이 이렇게 처참하게 무너진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구하게 된다”며 “이 땅에 복음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 안타깝고 첫 이방인교회가 세워진 곳이 이렇게 무너졌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집중적인 지진 피해를 입은 하타이 주 안타키아는 성경에서 ‘흩어진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 불린 바로 그 ‘안디옥’이다. 스데반 집사의 순교 이후 여러 곳으로 흩어진 성도들이 안디옥에 정착해 교회를 세웠다. 안디옥은 유서 깊은 기독교 전통을 지닌 곳으로 사도 바울이 1년 간 머물며 복음을 전한 곳이다.
사도행전 11장에 보면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19-21절),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25-26절)는 말씀으로 바나바와 바울의 안디옥 선교에 대한 기록을 전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왔던” 안디옥과 튀르키예. 그러나 이곳은 이슬람이 장악했고 복음의 명맥이 소수에 의해 힘겹게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무너진 건물 잔해를 만지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본 이규환 목사는 “영적으로 어두워진 튀르키예를 위해 더 많이 기도해야겠다”고 했다.
# 맨발로 뛰쳐나간 이들에게 새 신발을
안타키아 도시를 돌아본 후 구호팀은 하타이 주 사만다으 미식마을로 이동했다. 주방설비가 갖춰진 여러 채의 유리 건물이 있는 이곳은 각종 맛집이 모여 있던 관광지다. 하지만 지금은 선교단체가 구호활동을 위해 컨테이너 하우스를 세우고 자원봉사를 하며 주방을 빌려 쓰고 있었다.
이번 튀르키예 방문과 구호품 전달을 위한 창구는 현지 이형곤 선교사가 맡았다. 이 선교사는 정부의 허가를 통해 공식적으로 구호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동남부교회재단(Diyarbakır Protestan Kilisesi Vakfı ; 디야르바크르 교회)를 파트너로 선택했다. 동남부교회재단에는 튀르키예 현지 개신교단 10곳이 참여하고 있으며 여러 나라 선교사들이 함께 하고 있다. 현장에서 총회 구호팀을 맞이한 사람은 스페인 출신의 데보라 선교사다. 데보라 선교사는 28살의 나이에 터키로 와서 33년 동안 복음을 전해왔다. 이스탄불과 안타키아를 오가며 선교를 하던 중 지진 소식을 듣고 하타이에 구호센터를 마련하고 이재민들을 돕기 시작했다.
백석총회는 튀르키예 지진 소식을 접한 후 3개월 간 모금한 헌금 중 일부를 긴급 구호품 구입에 사용하기로 했다. 이번 방문에서는 1차 구호품으로 운동화를 선택했다. 이형곤 선교사의 사전 답사에서 운동화를 간곡히 요청했기 때문이다.
데보라 선교사는 “지진 당시 슬리퍼나 맨발로 피신한 사람들이 많았고, 아직도 천막촌에서 낡은 슬리퍼 하나로 버티고 있다”고 이재민들의 상황을 설명했다. 데보라 선교사는 한국교회에서 구호품을 보낸다는 소식에 사만다으 지역 이재민 가정을 돌며 신발 사이즈를 확인했다. 무작정 물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가는 순식간에 구호품을 빼앗길 정도로 현지 구호 상황이 녹록치 않다. 이러한 이유로 이재민 거주지역 구호활동은 가가호호 방문형태로 진행되고 있었다.
구호팀은 데보라 선교사와 인사를 나누고 현지 센터를 둘러보았다. 동남부교회재단을 통해 이루어지는 구호는 물품 전달과 매일의 급식이다. 이 급식을 위해 전 세계 자원봉사자들이 일주일 단위로 방문해 음식을 만들어 이재민들을 찾아가고 있었다.
총회가 구입한 운동화는 약속한 시간을 한 시간이나 넘겨서야 도착했다. 구호팀은 컨테이너 창고에 운동화 박스를 쌓은 후 천막촌에 전할 운동화를 가정단위로 포장했다. 검정 비닐봉투에는 이재민 가정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미 마련된 봉투에 사이즈별로 운동화를 담았다. 5살 세쌍둥이를 위한 운동화 3켤레와 아빠와 엄마의 신발이 곧 만날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가족의 신발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다. 대부분의 이재민들이 가족의 일부를 잃거나 홀로 살아남았다.
임인기 목사는 “이 선물을 받고 좋아할 튀르키예 이웃들의 얼굴이 선하다”고 했다. 먼 나라 대한민국의 교회에서 보낸 작은 선물이 그들의 고단한 삶에 위로가 되길 소망했다. 구호팀은 새 운동화를 신고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힘차게 달려갈 그들의 미래를 위해 마음을 모아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