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묵 목사 “한국의 에큐 운동·예언자적 통찰력 잃어”
창립100주년을 앞두고 ‘리더십 교체’라는 초유의 위기 앞에 놓인 NCCK와 관련해 에큐메니칼 운동가들이 해법을 모색하는 토론회가 열었다. 이런 가운데 사태의 단초를 제공한 감리회가 “우리 때문에 총무가 물러난다는 프레임은 억울하다”는 입장을 피력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달 30일 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는 ‘위기의 에큐메니칼 운동:대안을 위한 긴급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전·현직 관계자를 비롯해 학자와 회원 교단 인사, 지역 에큐메니칼 운동가 등 200여 명이 모여 토론회 주제에 대한 교회협 안팎의 높은 관심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날 토론회에서 전 NCCK정의평회위원회 위원장 남재영 목사(빈들공동체감리교회 담임)는 감리회 에큐메니칼 인사들을 대표해 입장을 전했다.
남 목사는 “감리회는 총무 사퇴 건과 관련해 억울한 감이 있다. 우리 때문에 총무가 사퇴했다는 프레임에서 빨리 벗어나면 좋겠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남 목사는 또 “감리회 총회에서 큰 논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감리회는 논란을 내부적으로 잘 정리하고 갈 역량이 있는데 총무가 오판한 것 같다”면서도 “총무가 사임 의사를 밝힌 이상, ‘유턴’은 안 된다. 실행위가 사임을 반려하면 감리회는 심각한 혼란에 빠진다. 다만 차기 총무를 내는 것에서 감리회는 빠지겠다”고 전했다.
토론회에서는 교회협 종교간대화위원회 위원장 민숙희 사제가 사회를 보는 가운데 천안살림교회 최형묵 목사가 ‘일치와 갱신을 지향하는 신학과 실천’을 주제로 발제했다. 최 목사는 “최근 NCCK 총무 사임표명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위기의 한 징후일 뿐”이라며 “위기의 실체는 그간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운동의 구심으로서 NCCK의 정체성 위기와 사회적 영향력 위축”이라고 말했다.
최 목사는 “한기총에서 한교총으로 이어지며 보수교회의 헤게모니가 강화되는 동안 NCCK는 그와 상대적으로 구별되는 교회의 위상을 확보하지 못했다”며 “1970~80년대 NCCK가 지녔던 신뢰와 권위는 교회의 양적 규모의 우위가 아닌 복음에 대한 신실성과 예언자적 통찰력에 힘입은 것이었다. 오늘날 에큐메니칼 운동이 내부에 그 정신을 발현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운동은 바닥교회들과의 접점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소수의 상층부 운동으로만 남아 있지는 않은가”라고 자조 섞인 평가를 전하면서 “에큐메니칼 운동은 반드시 바닥교회 운동을 기초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 NCCK 회원 교단들에 대해서도 “이들이 진정한 에큐메니칼 정신을 구현하고자 스스로 노력하고 있는지도 되돌아볼 일”이라며 “총무 사임에 대해서도 그야말로 에큐메니칼 정신에 충실하면서도 지혜로운 대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최 목사는 다가오는 NCCK 실행위에서 이홍정 총무가 사임할 경우 곧바로 새 총무를 세우는 대신 ‘소통과 의견수렴을 위한 비상한 기구’, 즉 비대위를 한시적으로 운용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그는 “이해관계에 따라 득실을 따지는 대처방안으로는 현재의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없다”며 “현재처럼 한교총 곁에 NCCK가 덧붙여 있는 모양으로는 더는 기대할 것이 없다”고도 했다.
토론회에서는 최 목사뿐 아니라 대구 누가교회 정금교 목사와 한국기독교청년협의회 하성웅 총무가 발제했으며 이후에는 참석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토론 시간도 마련됐다. NCCK 청년위원회 김정현 위원장은 주요 의사결정권자들의 성별과 연령 측면에서 여느 보수 연합기관과 크게 다를 바 없는 NCCK의 상황을 정면으로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지금처럼 각 교단의 대표성이 중년 남성에게 집중된 구조 속에서 청년들은 감리회가 NCCK를 탈퇴하든 말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며 “교회협이 청년들에게 의미 있는 집단이 되려면 청년들의 현장에 찾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한편 이날 토론에 앞서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을 지낸 신경하 감독이 인사말을 전했다. 신 감독은 “역사의 중심에서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해 온 NCCK가 내부의 혼란으로 흔들려서는 안 된다”며 “정의와 평화, 생명을 향한 순례는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민족의 화해와 창조질서의 보존을 위해 NCCK는 더 NCCK다워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신 감독은 또 “우리는 교회협으로서 모든 차이와 다름을 극복하고 일치와 연합을 위해 모였다”면서 “이제 100주년을 앞두고 교단의 차이와 기득권을 앞세우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