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인도 선교사로 파송 받은 A 씨. 그는 선교사로 헌신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믿음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자신의 노후 준비는 꿈도 꾸지 못했다. 비자 문제로 한국에 잠시 방문할 때에도 친인척 집이나 교회 선교관에 머물렀으며, 이마저도 어려울 때는 찜질방을 전전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엔 돌아갈 선교지가 있다는 생각에 감사했지만, 곧 닥칠 은퇴를 생각하니 막막한 마음이다.
급격한 고령화 시대 속 발생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노인문제 4가지는 ‘빈곤’, ‘질병’, ‘고독’, ‘무의’(의탁할 곳이 없음)라고 한다. 은퇴선교사들에게 이러한 문제는 더욱 크게 다가온다. 실제로 한인세계선교사지원재단과 동서선교연구개발원 한국본부가 지난 2017년 11월 27일부터 12월 23일까지 54개국 한국 선교사 34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중 62.5%가 은퇴 후 주거 대책이 없다고 응답했다.
더욱이 37.5%는 보험이나 연금에 가입돼 있지 않았고, 18.5%는 건강 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 할 수 있는 국민건강보험에도 가입돼 있지 않았다. 사명을 안고 선교지에서 일평생 젊음과 열정을 불태운 은퇴선교사들의 노후가 초라해서는 안 될 터. 향후 10년 내 1세대 한국 선교사들의 은퇴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정부와 한국교회 차원에서 선교사의 노후를 준비할 수 있는 제도와 혜택을 정리해보았다.
최소한의 생활 위해, ‘국민연금’ 가입해야
선교사들의 노후 준비를 위해서는 정부의 사회보장제도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사회보험에는 국민건강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 노인 장기요양보험이 있다. 은퇴선교사의 최소한의 생활비 마련을 위해서는 국민연금 가입이 요청된다. 국민연금은 국가가 운영해 지급하고 안전하고 이율이 높아 소득이 낮은 선교사들에게 매우 유리한 정책이다.
선교사 파송 단체에서 가입해주는 경우가 있지만, 가입되어 있지 않더라도 안식년과 같이 잠시 국내에 체류할 일이 발생할 때, 추가 납부를 하는 방식으로 가입할 수 있다. 납부한 보험료는 연금 선택 시 연령에 따라 60~65세부터 지급한다.
그러나 조기 사망할 경우 유족에게 돌아가는 연금은 당초 예정된 연금액의 40~60%로 낮게 지급되며, 정책 변경에 따라 수령액이 줄어들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때문에, 기대여명 100세 시대를 맞아 개인연금을 추가로 가입해 필요한 생활비를 충당할 필요도 있다.
소득과 재산 기준이 ‘단독가구 202만원-부부가구 323만2천원(2023년 기준)’에 못 미칠 경우엔 ‘기초연금’을 통해 최대 월 32만 3180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기초연금’은 만 65세가 되기 전, 한 달 전부터 신청이 가능하다. 국민연금처럼 해당 날짜가 되면 자동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부24 홈페이지(www.gov.kr)를 통해 직접 신청해야 받을 수 있다. 지급기준은 국민연금을 받고 있지 않은 선교사나 국민연금 월 수령액이 48만4770원 이하인 선교사로서 심사 후 금액은 변동될 수 있다.
은퇴 후 의료비 막막, ‘실손보험’도 필수
평균수명은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건강수명은 65세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1인당 연평균 진료비는 102만원이지만, 65세 이상 1인당 연평균 진료비는 332만원에 해당한다. 그렇기에 은퇴 후 질병이나 상해사고 발생 시를 대비해 최소한의 준비로 건강보험의 가입은 필수적이다.
여유자금이 없다면, 건강보험 적용 이후 본인 부담금 30%에 대해서도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단, 기초생활수급자로 의료급여에 해당되면 본인 부담금은 조금 더 낮아진다.(1급 수급권자 본인부담금 없음, 2종 수급권자 10% 부담).
국민건강보험에서 보장받지 못하는 비급여항목을 비롯해 응급상황에서 의료비를 보상받을 수 있는 ‘의료실비보험’도 별도로 가입할 필요가 있다. 비급여항목의 경우 100% 본인이 부담해야 하지만, 실비보험에 가입했을 경우 보험 청구를 통해 일부 환급받을 수 있다. 의료실비보험 가입 이후 3개월 이상 출국하고 보험금을 청구한 사실이 없는 경우엔 납입한 보험료를 대부분 환불받을 수 있어 제도의 활용이 요청된다.
정부 지원 ‘공공임대주택’ 제도 활용해야
머리 둘 곳 없는 선교사들의 주거공간 마련을 위해 정부의 지원제도를 꼼꼼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공공임대주택의 종류에는 영구임대주택, 국민임대주택, 행복주택 등 3가지가 있으며, 소득 기준에 따라 선교사들도 신청이 가능하다.
단 모든 임대주택은 전년도 1년 동안의 국세청에 신고된 총 종교인 소득이 기준이며, 해외 거주일수에 무관하게 신청이 가능하다. 전년도에 종교인 소득신고를 하지 못했을 경우 소득세 신고 후 신청하는 것을 권장한다.
한국교회가 운영하는 은퇴선교사 주거공간에 대한 정보를 파악해 활용할 수도 있다. 밀알복지재단(이사장:홍정길 목사)은 경기 가평군 설악면에 연 면적 1만9427㎡(약 5886평) 규모로 ‘생명의빛홈타운’을 조성해 은퇴선교사들이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주거공간을 마련했다. 돌봄과 주거·일자리문제 등 선교사들의 은퇴 이후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설립된 노인복지주택이며, 2021년 11월부터 입주를 시작해 현재 60세 이상 노인 36가구가 함께 생활하고 있다.
헌신한 독신 여선교사들의 은퇴관으로 (사)세빛자매회(이사장:주선애)는 지난 2021년 11월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3786㎡(1145평)의 부지에 ‘해외독신여선교사 은퇴관’을 건립했다. 은퇴관은 교단을 초월해 20년 이상 해외에서 선교한 60세 이상 독신 여선교사라면, 누구나 입주가 가능하다. 그러나 대부분 입주를 위한 목돈의 보증금과 월 임대료를 내야 이용할 수 있다.
교회별 은퇴선교사 지원 정책
“선교사 후원에는 은퇴도 포함된다”라는 말처럼 선교사의 건강한 은퇴를 위해서는 파송 단체와 교회가 함께 대책을 마련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파송 교회가 개인 선교사들이 최소한의 국민연금을 들수록 준비하고, 선교 후원금 가운데 일부를 은퇴기금으로 따로 적립할 필요가 있다.
교회 차원에서 은퇴선교사를 지원하는 긍정적 사례가 있다. 분당중앙교회(담임:최종천 목사)는 지난해 교단을 초월해 은퇴선교사 500명을 최종 선발해 매달 연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연금 재원은 지난해부터 매년 6억 원씩, 20년간 총 120억 원을 확보해 2052년부터 선교사들에게 매달 연금으로 지급한다는 계획이다. 교회 차원에서 은퇴선교사를 위해 실질적인 연금지원 대책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행보로 꼽힌다.
은퇴 선교사들의 노후 준비를 돕는 ‘선교사복지정보상담센터’도 있다. 한인세계선교사지원재단(KWMCF)은 지난 2021년 ‘선교사복지정보상담센터’(이하 센터)를 개소하고 선교사들이 은퇴 시점에 활용할 수 있는 주택이나 건강, 일자리, 교육 등 생활 전반에 대한 국가 복지정보와 맞춤형 상담을 제공한다.
최윤선 센터장은 “선교사가 노후를 대비하는 것에 대해 믿음이나 영성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은퇴는 누구나 고민해야 하는 숙제”라며, “선교사 파송 전이나 안식년 시기, 은퇴와 관련된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 특히 국가가 지원하는 여러 사회복지 지원제도를 활용한다면, 은퇴준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