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푸른 눈의 백인 입에서 터져 나온 “주여! 주여!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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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푸른 눈의 백인 입에서 터져 나온 “주여! 주여! 주여!”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3.02.09 12: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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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교회에서 한국교회의 길을 묻다(중)

주여! 주여! 주여!”

순간 한국에 온 것이 아닌가 싶은 착각마저 들었다. 새벽기도에서, 부흥회에서 익히 들어왔던 외침이다. 이제는 기도회에서 주여 삼창이 들려오지 않으면 허전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 정겨운 소리가 비행기로 14시간은 족히 날아가야 만날 수 있는 스코틀랜드, 그것도 남서쪽 작은 어촌인 스트란라에서 들려왔다. 누가 봐도 한국인의 피라고는 한 방울도 섞여있지 않은 듯한 벽안의 외국인들이 예배당이 떠나가라 주여!”를 외친다. 이게 어떻게 된 사연일까.

교회가 술집으로, 예식장으로 팔려 나가고 있는 가운데서도 기도의 영성으로 다시금 교회를 일으키고 있는 현장이 있다. 한국인은 고사하고 동양인조차도 찾아볼 수 없는 시골마을에서 홀리그라운드교회를 담임하는 김위식 선교사가 그 주인공. 김 선교사는 한국식목회로 소리 높여 주여!”를 외치며 꺼져가는 교회의 불씨를 살리고 있었다. 단 하나의 열매라도 남기고 가면 그걸로 족하다는 그의 사역 현장을 지난달 8(현지시간) 직접 눈에 담았다.

김위식 선교사는 스코틀랜드 스트란라에서 '한국식' 기도의 영성으로 교회를 일으키고 있었다.
김위식 선교사는 스코틀랜드 스트란라에서 '한국식' 기도의 영성으로 교회를 일으키고 있었다.

순탄치 않았던 첫걸음

숙소를 잡은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딘버러에서 김위식 선교사의 사역지 스트란라까지는 꽤나 먼 여정이었다. 우리나라에 빗대자면 서울에서 여수쯤이라고 할까. 주일 오전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전날인 토요일 미리 채비에 나섰다. 스트란라에 도착해 현지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다음날 일찍 교회를 둘러볼 심산이었다.

하지만 선교지 탐방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스코틀랜드 전역에 번진 기차 파업이 원인이었다. 스코틀랜드 경제의 중심지인 글래스고까진 예매한 기차를 이용할 수 있었지만 스트란라로 환승 방법을 묻자 고개를 가로 저었다. 문제는 기차 파업의 여파가 다른 운송수단에까지 번졌다는 점. 기차를 이용하지 못한 승객들이 버스에 몰려 스트란라행 버스마저 표를 구할 수가 없었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다행히 활로는 있었다. 사정을 접한 김위식 선교사가 인근 도시 에어까지 오면 데리러 오겠다는 연락을 전해줬다. 창문 너머 양옆으로 펼쳐진 광활한 북해 연안과 양떼를 바라보며 도착한 스트란라는 정감 넘치는 항구도시였다. 높은 빌딩 하나 없는 아기자기한 건물이 마을을 채웠고 옆으로는 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고성 테마의 숙소에 짐만 풀어두고 곧장 김 선교사의 사역지 홀리그라운드교회로 향했다. 술집이 될 뻔했다가 이제는 마을의 유일한 동양인이 담임하는 교회가 된 사연 많은 그 곳이 궁금했다. 자랑스레 교회 문을 열고 기자를 초대한 김위식 선교사는 의자에 걸터 앉아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놨다.

홀리그라운드교회 현판.
홀리그라운드교회 현판.

영어 세 단어 하는 제가요?”

방배동 총신에서 공부했던 시절, 성령의 뜨거운 불이 김위식 선교사를 비롯한 학우들의 마음에 임했다. 당시 그들은 그 영성과 뜨거움으로 산에 올라가 손을 잡고 밤이 새도록 기도했다. 뜨거운 영성은 김 선교사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에게 스코틀랜드로 가라는 말씀을 주셨다. 선교의 꿈은 품고 있었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나라의 이름에 당혹스러웠다.

영어를 세 단어밖에 할 줄 몰랐습니다. 그런 제가 어떻게 그곳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죠. 그랬더니 너의 가슴에 뜨거운 영성을 전하면 된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 말씀에 순종해 뜨거운 가슴 하나 안고 이곳으로 왔습니다.”

도착해서 본 스코틀랜드 교회의 상황은 생각과는 달랐다. 사실상 대부분의 국민이 신자라고도 할 수 있었던 언약도의 역사는 과거가 됐고 지금은 교회에 출석하는 비율이 한자릿수에 지나지 않았다. 3천개가 넘던 스코틀랜드장로교회는 단 700교회만이 명맥을 유지했다. 교회 간판은 떨어지고 펍으로, 장례식장으로, 례스토랑으로 팔려나가고 있었다. 그때 마침 스트란라에서 교회가 술집에 팔려나갈 위기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세시간 반을 달려 이 교회를 보게 됐습니다. 교회 문을 여는 순간 어머니 품에 안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죠. 그런데 이미 교회를 내놨고 제가 오기 12일 전 펍과 가계약을 했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이 교회는 역사가 370년이 넘는 지역의 어머니 교회(Mother's Church)입니다. 교회가 있는 거리 이름이 처치 스트리트(Church Street)일 정도로요. 그 말을 듣고 교회 문을 열어준 장로에게 제가 이 교회를 대신 사겠다고 했습니다. 수중엔 1원 한푼도 없었는데 말이죠. 하지만 그 상황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펍이 될 뻔한 370년 역사의 교회, 홀리그라운드 공동체를 사들였다. 동양인이라곤 김 선교사 부부밖에 없는 곳에서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이나 다름없었다. 처음엔 인종차별도 당하고 맘고생도 많이 겪었다. 영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던 그가 믿을 구석은 단 하나, 한국교회와 신학교에서 배운 기도의 영성뿐 이었다.

서툰 영어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만을 전했습니다. 기도로 이들을 품고 오직 하나님께서, 성령께서,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를 가르쳤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깡패가, 알콜 중독자가, 마약상이 와서 변화되고 네가 믿는 예수를 나도 믿겠다고 말해왔습니다.”

스트란라 홀리그라운드교회에 출석하는 이안 집사.
스트란라 홀리그라운드교회에 출석하는 이안 집사.

스코틀랜드에서 울려퍼진 주여 삼창

김위식 선교사의 이야기를 들으니 교회의 예배 모습이 한층 더 궁금해졌다. 주일 오전 날이 밝아오자 설렘을 안고 교회로 종종 걸음을 옮겼다. 난생 처음 드려보는 영어 예배에 긴장해 제일 뒷자리를 꿰찼다. 예배 시간이 다가오자 주로 가족단위의 성도들이 하나둘씩 교회 문을 열기 시작했다. 노인부터 어린아이까지 다채로운 연령대의 성도들은 낯선 이방인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반가운 인사를 건네줬다.

예배의 시작부터 여타 유럽교회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익숙한 멜로디의 찬양이 신나는 박수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선한 충격을 줬던 것은 통성기도 시간. 강단에 선 김위식 선교사가 주여!”를 외치자 푸른 눈의 성도들도 한국말로 주여!”를 뒤따라 외쳤다. 이어 “Lord!”, “Jesus!”를 통성으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진 설교시간, 힘 있게 말씀을 선포하는 김위식 선교사의 목소리에는 강한 믿음과 확신이 실려 있었다. 영어로 진행되는 모든 설교를 이해하진 못했지만 계속해서 반복돼 귀에 꽂히는 두 단어가 있었다. ‘God said’(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Living stone’(산 돌)이었다.

이들에게 기독교는 어려서부터 보고 자라왔던 문화의 일부입니다. 그렇기에 신앙은 그저 옛날의 전통문화일 뿐이라고 인식하는 스코틀랜드인들이 적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교인들에게 끊임없이 산 돌이 되시는 예수님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2천년 전 과거의, 부모님과 조부모 세대의 옛 전통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고 계심을 알려주죠.”

이제는 교회의 터줏대감이 된 이안 슬론 집사는 매주 가족과 함께 교회를 찾는다. 젊은 패기로 꽤나 거친 인생을 살았던 그가 이제는 가장 먼저 교회에 나와 예배당을 청소하는 성실한 일꾼이 됐다. “주여!”를 외치는 통성기도가 처음엔 낯설고 당황스러웠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목청을 높여 예수님의 이름을 부른다.

이 교회에 와서 찬송을 부르는데 성령께서 저를 만지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스코틀랜드에 많은 교회가 있지만 이 교회는 달랐어요. 성령이 살아 역사하고 계셨습니다. 이제는 교회에 와서 예수님의 이름을 외칠 때마다 힘이 넘칩니다.”

홀리그라운드교회에서 뜨거운 영성을 경험한 이안 집사는 조국의 교회를 바라보면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그럴 때마다 그는 다시금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의 무릎을 꿇는다.

스코틀랜드에 알콜 중독자와 마약 중독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살려야 할 교회는 오히려 죽어가고 있죠. 홀리그라운드교회에서 시작된 역동적인 예배 운동이 스코틀랜드 전역에 확산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스코틀랜드의 모든 이들이 예수 이름을 외치며 찬양하고 예배하는 그날을 기대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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